~가톨릭의 이해~/성모신심자료

<성모발현:1>바뇌의 성모

김안토니오 2008. 2. 4. 11:40

배   경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던 1933년, 벨기에 동쪽 국경지대의 마을 바뇌.
 
 목격자
 12세의 비그리스도인 소녀 마리에뜨.
 
 메시지
 모든 은총의 보편적 중재자로서, 특히 가난한 자의 동정녀로서 "나는 구세주의 모친, 하느님의 모친이다. 사랑하는 딸아, 기도 많이 하여라"하셨다.
 
 특   징
 발까지 내려오는 흰 옷에 푸른 띠를 둘렀고 머리에는 흰 수건을 썼다. 오른팔에 흰 묵주를 쥐었는데 태양같이 빛나는 후광에 둘러싸여 있다.
 
 * 생활성서 1995년 10월호

바뇌의 가난한 동정녀 발현 이야기

▶ 바뇌 : 벨기에의 리에즈 행정관할 구역

바뇌(Banneux Notre-Dame)는 루베네의 관할 구역에 소속된 작은 마을이며, 아르덴느 고원의 한 부분으로 해발 325m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주위는 아르덴느 지방의 아름다운 앙블레브, 베스드르, 에녀의 골짜기들로 둘러싸여 있고, 대 공업도시인 리에즈에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바뇌는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주위에 소규모의 경작을 할 수 있을 뿐 아주 가난한 마을이었다.

교회로부터 1km 떨어진 빼뺑스테로 가는 길에는 베코(Beco) 가족의 집이 홀로 서있다. 이 지대는 매우 축축하고 질퍽질퍽하여 '진창(la Fange)'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도로 맞은편은, 벨기에 동부 지역에 뒤덮여 있고 독일 아이펠(Eifel) 숲지대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전나무 숲이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집 앞의 작은 정원에는 조그마한 야채밭이 있다.

1933년 발현 당시 베코씨의 가족은 아버지 베코씨와 어머니 루이즈, 그리고 7명의 자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곱 형제 중에서 가장 맏이인 마리에뜨(Mariette)는 성모 영보 축일이었던 1921년 3월 25일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날은 또한 십자가가 엄숙히 공경되는 날인 성금요일이었다. 그러나 베코씨네 집에는 십자가조차도 없었다... 약간 투박한 이 가정 안에는 종교는 거의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족들은 모든 종교적인 의식이나 사회적인 인습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마리에뜨 역시 가족들의 이러한 무관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바뇌의 주민 수는 325명. 아직 본당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곳 사제는 '주임 신부'가 아니라 '지도 신부' 자격이었다.

▶ 발현 이후

삼매화 : 발현 소성당의 삼매화는 마리에트의 설명에 따라 루이-마리 자맹 신부의 숙부인 레옹 자맹(Leon Jamin)에 의해 실현 되었다.

이 삼매화는 강한 요구에 따라 예술가로 하여금 5번씩이나 다시 시작하게 함으로써 고충을 겪게 했다. 초벌을 보았던 마리에트는 "오! 흉해요! 너무 할머니 같아요! 나를 혼동시키려고 일부러 그러신거죠? 내가 본 부인의 발은 저렇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세 번째 작품을 본 소녀는 "좀 괜찮아졌네요!" 하면서 연필을 가지고 손들이랑 너무 목이 팬 블라우스, 너무 긴 벨트 등 몇몇 부분을 수정했다.
"이런 푸른색도 아니고 이런 흰색도 아니었어요!"
네 번째 작품을 보면서 소녀는 그 귀여운 손으로 눈을 비볐다.
"네, 저런 눈을 보았더랬어요! 긴 원피스의 그림자!" (화가나 사제 모두 동정녀가 외부의 조명을 받지 않고 내부에서 발산하는 조명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조카를 기쁘게 해주려고 그 작업에 착수했던 화가는그 즉시 꼬마가 그처럼 상세하고도 즉흥적으로, 전혀 아무 망설임 없이 묘사했던 실상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고, 데생과 색채를 통해 환시 장면을 온 정성을 다해 완성했다. 1933년 4월 13일, 드디어 '놀라운 선물'을 관람하도록 초대받은 마리에트는 눈을 아래로 뜬 채 "흉해요! 정말 흉해요! 라고 중얼거리며 사제관으로들어갔다. 작품 앞에 이르러 눈을 크게 뜬 그녀는 한 순간 잠자코 있다가 "오! 아름다워요... 네, 정말 예뻐요!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그리셨어요? 라고 말했다. 몇 달 후, 그녀는 한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화가라도... 그보다 잘 그리지는 못했을 거야!" ▶ L.Wuillaume S.J. Banneux, "Message pour notre temps" 중에서

▶ 확인

이미 1942년, 그리고 1947년에 리에즈 교구 주교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께 대한 공경을 인정했다. 1949년 8월 22일, 리에즈 주교는 여덟 차례 발현의 실상을 망설이지 않고 인정했다. 그 같은 주교의 뒷받침은 그 사실을 온 세계에 널리 알리고 발현에서 유래되는 은총을 전파하며, 이곳 성지순례에 좀더 활기를 불어 넣어 불 목적으로 자발적인 운동을 촉진시켜 주었다. 신학위원회가 결성되었고, 3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현재 4개의 잡지들이 대중을 목표로 출판된 서적들을 홍보하고 있다. 아울러 성지 순례와 환자들의 숙박소들에 대한 안내를 돕고 있고, 멀리 있는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소식들, 종종 놀라운 소식들을 전달하고 있다.

많은 벨기에 주교들과 외국 주교들이 소속 교구의 신자들을 대동하고 바뇌를 찾아 순례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1985년 5월 21일 바뇌를 친히 방문해 주셨다. 그 동안 이곳을 찾아왔던 수백만의 다른 순례객들처럼 교황도 발현 소성당에서 기도하셨고, 소성당에서 샘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셨고, 샘물에 두 손을 담그셨다.

그날 교황님이 집전하신 미사에는 만명 이상의 신자들이 참석했다. 교황님은 환자들과 장애자들, 집시들을 접견하셨다.

▶ 출처 : 바뇌,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 오귀스트 뢸 지음, 김정옥 옮김. 성바오로수도회/ 바뇌 현지에서 입수한 성지안내 인쇄물.

http://blog.empas.com/hm521018/13867839에서 발췌

 

[마리아수녀회의 주보성인: 바뇌의 성모]

▶ 발현 배경과 시기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의 1월은 대단히 추운 계절이다. 천주교회가 정식 인정한
성모님의 발현지인 '바뇌' 또한 나자렛과 같은 매우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마을일 뿐이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가" 라고 한 것처럼 이렇듯
작고 천한 마을 바뇌에서 성모님은 1933년 1월 15일 가난하고 천한 마리아 백호에게
발현 하신 것이다. 보랭에서 성모님의 발현이 끝난지 12일 만 이었다.또한 1월 12일은루르드 성모 발현 75주년 기념일로 많은 순례단이 루르드를 향하여 설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거룩한 시기에 발현 하신 것이다.

▶ 나자렛 마리아와 마리아 벡호

성모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마다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중대한 임무를 맡기신다. 마리아 벡호는 매우 가난한 집의 11남매 중 맏이로써 저녁 7시 어두운 밤에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벨기에는 4시에 어두워 지기 시작함) 또한 그는 거짓말 할 줄 모르는 매우 솔직하고 단순한 성격으로 정결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겸손하고 용기 또한 나자렛 마리아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성모님은 매우 솔직하고 정결한 마음을 지닌 마리아 벡호 에게 발현 하신 것이다.

▶ 바뇌의 성모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가난한 자들의 동정녀'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신 것처럼 병든자와 가난한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러 오신 어머니 다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바뇌의 성모님은 발현 하신 모습부터 매우 소박하고 겸손한 많은 자녀를 둔 어머니
의 모습이다.

성모 마리아는 대단히 젊고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소를 띄며 친절하게 벡호에게 나타나셨다.그리스도의 사랑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친절도 있다. 벡호 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바라보며 돌보듯 양손을 벌려 벡호를 바라보고 뒷걸음질 쳐가며 어머니답게 인격존중하며 샘물로 인도하셨다.

부랑아와 같은 매우 보잘 것 없는 아이를 존중하고 그에게 존경심을 드러내는 사랑많으신 어머니, 가난한 자의 동정녀이며 병든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러 오신 바뇌의 성모님께 고통받는 많은 이들은 영원히 위안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은 뜻으로 마리아수녀회 사도직의 목적은 가난한 이들의 현실적인 의식주 뿐 아니라 그들의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뇌에 발현하신 마리아는 늘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현하시고 벡호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이로써 냉담중이던 마리아 벡호는 묵주를 찾아 기도를 드리고 성당에도 다시 나가 교리를 배우고 첫 영성체를 받았다. 마리아는 하느님과 멀어진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하신 것이다.

마리아수녀회 사도직 또한 하느님을 모르고 떠돌아 다니며 부랑아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하느님을 알게 하고 성모님과 그리스도께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료로 입원, 치료하게 함으로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왔다" 고하신 성모님의 표양을 본받아 온 세상에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고자 한다.

1933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 까지 벨기에 바뇌의 소성당에는 성모님께서 마리아 벡호에게 말씀하신 '병든 이들을 위하여 보존되어 온 샘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완케되는 기적이 매일 매일 기적 처럼 일어나고 있다. 마리아수녀회 봉사의목적은 바뇌 성모님의 목적과 같은 것이다.

▶ 바뇌의 성모 마리아의 가르침

바뇌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마리아는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 발현하셨다. 8번 발현하신 중에 5섯번을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므로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또한 작은 성당을 원한다고 하심으로 성모님은 예수님을 중심해서 말씀하심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이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가르치고 그의 인격을 존중함으로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 가난한 이들을 업신 여기지 않도록 하셨다.

마리아벡호는 가난한 집의 11남매 중 맏이이며 지금도 수도자나 동정녀가 아닌 많은 자녀를 둔 어머니이다. 그는 여러가지 고통 중에도 순례객 들을 위하여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바뇌의 성모님은 마리아 벡호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어머니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

http://www.maryboystown.or.kr/sis/sis-sg/sis05.htm에서 발췌

 

바뇌의 성모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바뇌에 사는 마리에트(12세)에게 8번 나타나셨다. 가난을 내세우시는 성모님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 위주의 사상에서 하느님의 신앙을 져버리고 있는 위기를 일깨워 주셨다. 당신을 철저히 신뢰할것을 바라시며 루르드처럼 샘터를 지적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치유와 회개의 기적을 일으키는 루베네의 아르덴 고원의 바뇌도 1949년 성지로 공식 발표되었다.

파티마나 루르드의 성모 발현을 본 어린이들은 모두 수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뇌의 성모님을 뵈온 마리에뜨는 결혼하여 가정 주부가 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마리에뜨는 어느 가정보다도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는 가정주부라는 점에 있어서 오늘의 시대적인 특징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마리에뜨는 지금도 바뇌의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그 곳 한 식당에서 헌신적으로 봉사 생활을 하고 있다.

▶ 바뇌라는 시골마을

바뇌는 벨기에의 고원지대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바뇌의 주민들은 지금도 가난하지만 옛날에도 가난하였다. 산림지대이기도 한 이 산골 촌락이 1차대전 이후부터 '우리의 모후 바뇌'라고 불리어 졌다. 바뇌 근처 저지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전쟁이 터지자 산으로 피난하였고, 이 산골에서 전쟁 중 살아 남는다면 이 마을을 '우리의 모후 바뇌(Notre-Dame Banneux)'라고 부르겠다는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바뇌에서 2km 밖에 되지 않는 이웃 마을 루베네는 군인들에 의해 젯더미가 되었지만 이 마을만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1933년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 당시 바뇌의 주민은 325명 뿐이었다. 그들은 평화롭고 부지런한 산골 생활을 하였는데 한 마디로 전형적인 시골 생활이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19세기에 건축된 아담한 성당이 있었고, 성당 중심으로 가난한 집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었다. 그 성당에서 약 1km 내려와 전나무로 무성한 숲이 있었는데, 그 숲 왼쪽에 베코베지몽씨의 초라한 집이 있었다. 아무런 꾸밈도 없는 뜰이 있고 주위가 자연 그대로 펼쳐있는 산골 집이었다. 단도직입적인 말투와 투박한 성격을 가진 가장은 늘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갔고, 신문이나 종교 문제나 더더욱 오락에까지도 관심이 없었다. 한가정을 이끌어나가는 성실과 정직과 용기만 있을 뿐 초라한 촌부에 불과했다. 부드럽거나 친절한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지만 겸손한 면은 있었다.

▶ 마리에뜨

베코씨 자녀들 중 장녀인 마리에뜨(Mariette)는 1921년 3월 25일에 태어났다. 이 날은 그해의 전례상 성 금요일이었고 동시에 성모영보 축일이었다. 마리에뜨는 종교적 의식이나 사회적인 인습이 없는 황량한 숲 주위에서 자라났다. 야생화처럼 자라난 마리에뜨는 육체적으로 건강하였지만 마음의 양식은 부족하였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마음은 단순하고 겸손하였다. 마리에뜨의 일과는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책이나 신문도 읽지않았고 오락도 즐길줄 몰랐다. 한가하고 조용한 때는 집 밖으로 뛰어나가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겉꾸밈이나 남의 눈에 두드러짐이 없는 순진하고 솔직 담백한 마리에뜨였다.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동생들의 놀이에 응하여 주는 유순한 성격을 가졌다. 두뇌 발달은 다른 아이와 뒤떨어졌지만 침착하고 사리를 분별하는 것은 부모에게 배웠다. 성당의 교리반에 나가면서도 결석하기를 잘 하였고 주일 미사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교리 지식은 거의 없었고 첫영성채를 하지 못할 줄 알았지만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에뜨에게 너무나 귀하시고 놀라운 분이 찾아 왔던 것이다.

▶ 바뇌의 성모발현

첫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5일 주일

주위가 깜깜하고 추웠던 밤 7시경, 마리에뜨는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갑자기 광채가 나타나더니 정원에 아름다운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아싸ㄷ. 그 부인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갸우뚱하면서 합장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다.

너무 멋진 부인이 나타났다고 어머니께 말했지만 어머니는 허튼소리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 감격한 마리에뜨는 성모 마리아이심을 느기고는 모든 행동이 급작스럽게 변했다. 교리반에도 열심히 나갔다. 오로지 성모님 마음에 들기를 원하였다.

첫번째 나타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도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마리에뜨에게 미소만 지으셨다.

두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8일 수요일

저녁 7시경이었다. 영하 12도가 되는 강추위에서도 마리에드는 집 근처 큰 길 옆, 3일 전에 성모님을 보았다고 하던 그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성모님께서 하늘 저 멀리에서 점점 가까이 오시면서 전나무 사이를 통하여 내려오셨다. 마리에뜨 앞 약 1m50cm 정면에 서 계셨다. 마리에뜨는 미소짓는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뒷걸을질로 가시는 성모님을 따라가다가 성모님께서 멈추시자 무릎을 꿇었다.

작은 샘이 있는 길 옆에 서신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네 손을 물에 담가라"
"이 샘은 나를 위하여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는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세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9일 목요일

저녁 7시쯤에 매우 나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에뜨는 로사리오 기도를 하였다.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마리에뜨가 '아름다운 부인이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쭈었다.
"나는 가나난 이들의 동정녀이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밝히셨다. 마리에뜨가 묻는 말에 성모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샘물은 모든 백성들과 병자들을 위해서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네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20일 금요일

마리에뜨는 피곤한 몸은 일으켜 저녁 7시 45분경에 정원으로 나갔다.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 또 오셨다.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여쭙는 마리에뜨에게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작은 성당을 하나 원한단다"

다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1일 토요일

이 날은 성교회가 성모님께서 루르드에 발현하신지 75주년 기념하는 행사를 거행하였지만 산골 소녀 마리에뜨는 이런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밤7시경 마리에뜨는 밖에 나가 로사리오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여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5일 수요일

저녁 7시에 마리에뜨는 다른 때와 같이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본당 신부가 증거를 요청한다고 말씀 드리니까 성모님께서는 아무 말씀 하시지 않다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는 떠나셨다.
"나를 믿어라. 나도 너희를 믿겠다."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일곱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20일 월요일

이날 밤에는 눈바람이 불었다. 마리에뜨는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마지막 나타나심-1933년 3월 2일 목요일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구세주의 어머니이다."
"기도 많이 하여라"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잘 있거라(Adieu)"하시면서 마리에뜨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호를 그어 축복을 하신 다음 떠나가셨다.

http://catholic.netouch.co.kr/rosario/banneux.htm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