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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29일 Facebook 이야기
김안토니오
2013. 6. 2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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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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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을 생각히며....간결하고 단호하게! 예수님처럼
2013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 묵상
민주주의를 원합니까? 정의로워야 합니다.
정의를 원합니까? 불법 불의를 저지른 자들에게 항의하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원합니까? 하느님 나라를 알리십시오.
하느님 나라를 알리고자 합니까?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십시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를 알려라.” 예수님 명입니다. 간결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도 하십니다. 단호하십니다.
박근혜가 자신의 선거대책위 핵심들이 실행해온 각종 부정과 공작을 몰랐다면, 그리고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면, 결국 자신은 그들의 꼭두각시나 허수아비라고 자백하는 셈입니다. 둘 중 하나, 범죄자 아니면 허깨비가 이 나라 대통령 노릇 하고 있는 겁니다.
3.15 부정선거는 민주주의 태동기 시절에 생긴, 아날로그 수동식 선거쿠데타 시도였습니다.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과 조작 사건은 디지털 시대에 조작된 21세기형 선거쿠데타입니다. 국정원만 문제가 아닙니다. 방송, 검찰, 경찰 등 민주주의를 지키고 책임져야 할 기관들이 도리어 민주주의 파괴집단, 기득권과 탐욕에 절은 마피아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가 21세기 대한민국 맞는가? 수많은 이들이 희생과 헌신으로 세워진 민주주의 사회 맞는가? 슬프고 절망스럽습니다. ‘국정원 쿠데타’ ‘국정원 대선 개입’ 등으로 대변되는 이 범죄가 제대로 단죄되지 않으면 앞으로 이 나라에는 어떤 공정함도 정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표현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자 한다면, 낡은 세력 낡은 언어들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의를 보고도 마치 중립인척 팔짱끼고, 심판관인척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뒤돌아보지 말고, 예수님 따라 앞으로만 가야 합니다. 새날을 위해서는, 미래를 위해서는 그리 해야 합니다. 간결하고 단호해야 합니다.
금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민대회’에서 스무 살 대학생이 말했답니다.
"NLL만 청년의 피로 지킨 게 아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도 청년의 피로 이뤘다!"
- 문규현 신부 드림어서 모두들 일어나십시오.
2012년 12월 2일 대림 제1주일
예레미야33,14-16 / 테살로니카 1서3,12─4,2 / 루카복음21,25-28.34-36
저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합니다. 그분께 제 마음, 제 한 표 드립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한 사람이 10표, 5표, 2표, 단 1표라도 더 만들어주십시오. 남은 시간 정성과 열정을 좀 더 보태주십시오. 절체절명, 시간이 없습니다. 두 번 기회도 없습니다. 내 한 표 주는 것에 만족하지 마시고 동네 가게들, 친구들, 지인들, 저 멀리 시골 촌부들까지 다 헤아려보고, 단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하십시오.
박정희 때나 전두환 노태우 때는 이 기나긴 터널 뒤, 저만치에 반드시 끝이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느낌입니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마저 정권을 잡는다면, 그간 정성스럽게 키우고 애써 붙잡아온 모든 희망의 싹들이 그마저도 다 밟히고 말라죽을 것 같은 처연함과 절박함이 밀려듭니다.
문재인 후보가 성에 차지 않고 민주당이 못내 밉고 싫어도,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는 대한민국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제발 망설이지 말아주십시오. 대통령 임기 5년은 새로운 시대를 구축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지만, 온 나라를 엉망진창 수렁으로 빠트리기엔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란 걸, 이명박 정권을 통해 뼈저리고 뼈저리게, 참혹하고 진절머리 나게 겪었습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그리고 이들 지지세력에는 친일파들, 유신망령과 5공 6공 세력, 재벌과 부패세력, 기득권자들이 총단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권의 동역자였고 계승자라는 것입니다. 이명박근혜입니다. 반드시 심판해야 합니다.
박근혜는 지금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 후보인 그가 지금 보여주는 행태는 무섭고 소름끼칩니다. 보십시오. 언론 탄압을 철저하게 방조하고 조종하며 본인의 권력욕에 종속시키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원칙과 신뢰를 말하면서도 새누리당의 해군기지 예산안 날치기 처리에도 침묵합니다. 경제 민주화를 말하면서 실현 법안들은 뭉개고, 서민경제를 말하면서 최저임금 법안이나 대형마트 진입 제한법 등은 부결시킵니다. 대선후보 간 토론은 극구 피하면서, 박정희 육영수 향수만 자극해서 표몰이하고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후보 토론방식을 박근혜의 약점을 감추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많은 대학들이 기말고사를 대선 투표일 전후로 잡은 것 등등을 보면, 관권선거 부정선거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악인은 악착같이 악을 행하고 집요하게 붙잡고 있으려 하지만, 선한 이들은 선한 세상 만드는 일을 그저 선선하고 만만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절대 바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문재인 후보 당선을 기원하는 제 개인적 소망은 이렇습니다. 형님 문정현 신부를 따뜻하고 평온한 곳에서 쉬시게 하고 싶습니다. 강우일 주교님 얼굴에서 이제 환한 웃음만 보고 싶습니다. 수녀님들, 신부님들 거리의 찬바람 그만 맞게 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이, 평화의 일꾼들이 경찰 군홧발 앞이 아닌 창조와 변화의 한복판에서 노니는 걸 보고 싶습니다. 구럼비와 강정마을이 평화를 노래하고 그곳에서 시가 낭송되며 아이들이 신나는 걸 보고 싶습니다. 저도 제 몸 좀 챙기면서 주치의 선생님한테 그만 야단맞고 싶습니다.
새누리당의 해군기지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식노숙을 했습니다. 어제 서울은 너무도 추웠습니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으로 간신히 밤을 지새우고 맞이한 아침 햇살, 참으로 눈부시고 좋았습니다. 정말로 따뜻했고 감격스러웠습니다. 12월 19일, 바로 그날이 이러하길 기도합니다.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따뜻한 세상을 열망하는 여러분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그리되게 해주십시오.
대림 첫 주일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은 간절함입니다. 소망하고 기도하고 움직이며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목이 터져라 하느님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주일 첫 독서에서 예언자는 짧은 선"완전한 정의를 찾기보다 명백한 불의를 막자." 제주감옥에 계신 예수회 이영찬 신부님 말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더 많은 신부들이 감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정권교체 위해 애써봅시다.의로운 평화, 거룩한 영광
2012년 12월 9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바룩 5,1-9 / 필리피 1,4-6.8-11 / 루카복음 3,1-6
대림 2주간입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 새로운 관계를 세우실 진짜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의로운 나라, 의로운 질서, 의로운 관계를 증거해보이실 분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절절하게 외치며 세례를 선포합니다. “회개하라.”
세례자 요한은 ‘광야의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광야’는 무엇일까요. 팍팍하고 막막하고 불의와 사탄의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 그곳이 광야입니다. 탐욕과 이기심, 사리사욕과 승자독식으로 가득한 아수라장. 그곳이 광야입니다. 생명력이 시름시름 소멸되고 좌절과 낙담으로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송전탑 위에, 산 속 움막에, 길거리 천막들에 내몰린 사람들이 있는 사회,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세례는 회개의 징표요 회개 의식입니다. 회개는 새 시대, 미래와 변화를 향한 책무요 의무입니다. 회개는 반드시! 말이 아닌 행동이고 삶이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성과 참회, 회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세례의식을 치르고 ‘내 탓이오’를 고백해도 모두가 회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천하지 않고 입으로만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에게 회개란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에게 회개는 대선에서 반드시 당선되어 자신이 공언한 바를 집행하는 것입니다. 참여정부의 아픔을 절대 되풀이 하지 말고 새 시대의 진짜 맏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시대적 역사적 회개’의 대전환점에 들어서 있습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 있는 우리는 특별한 은총을 부여받은 겁니다. 이토록 결정적이고 위대한 역사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 선물이고 멋진 특권입니까.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요청되는 회개란 우리 각자가 세례자 요한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시대의 외로운 독립군이요 의병이셨습니다. 진짜 메시아 예수님을 기다리는 지상의 베이스 캠프이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이 시대 세례자 요한이 되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독립군처럼, 의병처럼, 예언자처럼 나서는 것, 그게 바로 회개 증명서입니다. 두려움이 지배하고 희망을 잃은 마음, 그곳이 광야입니다. 두려움을 걷어내고 그래도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윤봉길
독립운동가. 1908년 6월 21일(충남 예산군) ~ 1932년 12월 19일 (향년 24세)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일본 대판 위수형무소에서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선 투표일인 12월 19일, 그날은 공교롭게도 윤봉길 의사 서거 80주기 되는 날입니다. 우리가 윤봉길 의사의 심경으로, 또 세례자 요한의 영과 함께 준비하는 폭탄은 바로 투표! 투표장으로 향하는 오늘의 의병들, 의인들이 투척하는 한 표 한 표가 이 사회, 이 나라에 대한 세례의식이요 의병운동이 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여 바로 ‘시대와 역사의 회개’라는 어마어마한 대사건을 만들 것입니다. 첫 독서 바룩의 표현을 빌면 바로 이렇습니다. ‘의로운 평화, 거룩한 영광’!
그 아름다운 날을 준비하느라 오늘도 더 큰 용기로 나서는 모든 분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 있으시길!
- 문규현 신부 드림.어이구 신난다! 어이구 고맙습니다!
맘 편한 수면 시간이 늘어갑니다.
굉장한 사건, 대단한 미래가 와 있습니다!
탈핵후보 초록후보에게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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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2월 13일) 오후 2시에 밀양, 청도, 울산, 경주, 삼척 등지의 탈원전 관련 현안지역 분들이 문재인 시민캠프를 방문해서 문재인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생태환경에너지특별위원회 이미경 위원장과 탈원전 정책 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각 지역에서 신규원전 저지, 송전탑 저지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주민들은 현장의 상황과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통해서 지역 현안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고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밀양에서 참석하신 아주머니는 주변에 열심히 전화를 걸어서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고 있는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희망적인 기대를 전했다.
이미경 위원장은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관련 약속사항이 꼭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시민사회와 지역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협력을 당부했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탈원전 정책협약]
우리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사고를 통해 원자력발전이 안전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계획하는 각국의 정부들은 이미 원자력발전으로부터 벗어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도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통해 현 세대는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18대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생태환경에너지위원회는 각 지역 탈원전 단체들과 상호 공조를 위해 다음과 같이 협약 합니다.
1. 모든 원전의 수명연장을 금지한다. 이미 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 ․ 월성1호기 등은 가동을 중단하고, 즉각적인 폐로절차에 돌입한다.
1. 현재 계획 중인 신규원전(신고리5,6,7,8호기, 신울진3,4호기)의 건설을 전면 백지화한다.
1. 삼척과 영덕의 신규원전부지 지정고시를 전면 백지화한다.
1. 위의 신규원전 건설계획으로 인해 밀양 ․ 청도 등에 추진하고 있는 초고압송전탑 건설을 전면 재검토 한다.
1. 원전을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수요관리 중심의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한다.
1. 최근 원전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부품 검증서 위조사건 등의 심각성을 인식해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원전 안전조사를 하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 원전은 조기 폐쇄를 검토한다.
2012년 12월 13일
경주핵안전연대·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반핵울산시민행동·삼척핵발전소(핵단지)유치백지화위원회·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청도송전탑 반대대책위·핵으로부터안전하게살고싶은울진사람들
민주통합당 18대 대통령 후보 문재인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생태환경에너지특별위원장 이 미 경부산 경남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지혜로운 한 표가 부산 경남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원전 공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논 평]
문재인 박근혜 후보 TV 3차 토론에 대한 논평
박근혜 후보, 수명다한 불량원전을 왜 또 조사하나.
재생가능에너지 현재의 기술적 잠재량으로도 충분
문제는 정책과 예산 우선순위
어제(12월 16일) 오후 8시부터 진행된 대선후보 TV 3차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주제를 들고 나왔다. 사회안전 차원에서 수명다한 원전을 폐쇄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이 늘 안전하다고 했지만 설계수명 이후에는 안전담보 못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안전성 조사를 하겠다는 답을 했다. 또한, 과학기술정책 차원에서 원전보다 일자리 창출 많이 하는 신재생에너지 확대하고 원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문재인 후보의 주장에 대해서 박근혜 후보는 신재생에너지는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문재인 후보가 이번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사라진 ‘환경’의제 중에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원전’문제를 사회안전 차원에서 또한 과학기술정책 차원에서 제기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노후원전 폐쇄와 탈원전의 방향을 TV토론에서 재차 확인한 것도 환영한다.
반면에, 이미 수명이 다한 원전에 대한 폐쇄 여부를 안전성 조사로 결정하겠다고 한 박근혜 후보의 입장은 노후 원전을 재가동하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과 차이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노후원전 안전성 조사하겠다는 것은 당장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발언이다. 원자력산업의 지지세력인 현재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노후원전의 문제점을 인지했지만 재가동을 승인했다. 이런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어떤 안전성 조사도 재가동 결과가 내려지는 뻔한 절차이다.
고리원전 1호기는 전체 원전 고장사고의 20%를 차지하고 원자로가 유리처럼 매우 취약해져 있는 상태임에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규제를 완화해서 재가동했다. 월성 원전 1호기는 체르노빌처럼 폭발할 수 있는 국제적 안전기준에도 맞지 않은 중수로 원전이다. 이런 불량원전은 다시 조사할 필요없이 폐로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의 재생가능에너지 ‘현실 불가능론’은 원자력 마피아들이 늘 들고 나오는 주장이다. 원전에 의존하다 보면 재생가능에너지는 정책 우선 순위에서 항상 밀린다. 원전 폐쇄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세계적으로 풍력은 20% 이상, 태양광은 70% 씩 성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제자리 걸음인 이유는 잘 나가던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을 폐지하고,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재생가능에너지 잠재량이 높아서 현재 태양광 기술잠재량만으로도 2030년 최종에너지 예상 소비량의 세 배에 육박한다. 하지만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G20 국가 중 인도네시아 보다 못한 15위이다.
박근혜 후보는 우리사회의 4대악 중의 하나로 ‘불량식품’을 꼽았다. ‘불량식품’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지만 ‘불량원전’은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에게는 ‘불량식품’이 수명이 다한 ‘불량원전’ 보다 심각한가 보다. 박근혜 후보의 원전에 대한 현재의 인식수준이다. 국민의 절반의 지지를 받는 후보의 인식수준이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절망스럽다. 오늘 TV토론은 국민들이 이 나라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제공했다고 본다.
2012. 12. 17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잔치상을 혼자 누리면 되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혼자 알면 되겠습니까.
새 하늘 새 땅 만세를 혼자 외치면 뭔 재미겠습니까.
좋은 일은 같이 하고 같이 나눕시다.
동네방네 투표 투표 투표 투표 투표 투표 투표 투표!
오늘 하루도 신나게 독려하고, 내일은 길목마다 투표의병들로 꽉 채웁시다.
어제 열린 '정권교체-새정치 선언 대회'.드디어 역사적인 날, 2012년 12월 19일입니다.
오늘은 바로 윤봉길 의사 순국 80주기입니다.
일제는 윤 의사를 단 한발의 총알로 절명시켰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투표권도 단 한 발, 단 한 장.
전국 방방곡곡 투표의병들이여, 마지막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합시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산다." 윤봉길 의사의 말씀입니다.
따뜻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상을 위해, 오늘 새 역사의 과녘을 제대로 명중시킵시다.
윤봉길 의사의 거룩한 순국에 위대한 국민 승리로 응답합시다.이것은 시한폭탄. 6시 넘기면 불발탄 됩니다.
윤봉길 의사께서 우리에게 넘겨주신 도시락폭탄, 어서 빠짐없이 남김없이 투척하시라!
째깍째깍째깍 투표 투표 투표 투표투표 투표 투표 투표... 투표!다들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재인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여러분 모두 혼신을 다하셨습니다. 날선 비판과 자학보다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 줘야 할 때입니다.
저는 곧 제주 강정으로 출발합니다. 솔직히 형님 문정현 신부와 다른 신부님들, 주민들을 어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일과 27일, 강정 관련 재판 두 건이 저를 기다립니다. 더 가혹하고 기세등등해진 검찰과 재판부를 만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여러분이 잊지말고 계속 응원부탁드립니다. 그것만이 끝까지 버티고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마음 추스리려 이것저것 뒤적이다 만난 시 하나, 여러분과 나눕니다. 함께 가는 여정, 그래도 희망이고, 그대가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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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 가는 길1] - 민 영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해야 한다.
가까운 길이 있고 먼뎃길이 있다.
어디로 가든
처마끝에 등불 달린 주막은 하나지만
가는 사람에 따라서
길은 다른 경관을 보여준다.
보아라 길손이여,
길은 고달프고 골짜기보다 험하다.
눈덮인 산정에는 안개속에 벼랑이
어둠이 깔린 숲에서는
성깔 거친 짐승들이 울고 있다.
길은 어느 곳이나 위험 천만
길 잃은 그대여
어디로 가려 하느냐?
그럼에도 나는 권한다.
두다리에 힘 주고 걸어가라고
두눈 똑바로 뜨고 찾아가라고
길은 두려움 모르는 자를
두려워한다고
가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고.
...... 한데, 어디에 있지?
지도에도 없는 꽃밭
무릉(武陵)제주 강정에서 평화의 왕 예수성탄을 축하드리며.
함께 가는 여정. 그래도, 그래도 희망입니다. 그대가, 또 그대가 희망입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어둠 속 빛으로, 새 희망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축하, 또 축하드립니다. 제주 강정에서 구럼비의 이름으로 성탄 인사 올립니다.
'그래도 희망입니다.’ 5년 전 출판했던 제 책 이름입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즈음이어서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희망의 길을 가자며 이름 붙였던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라니 하나 더 붙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희망입니다. 녹색당+ 처럼 ‘그래도+ 희망’ 할까요.
많이들 우셨습니까. 충분히 아파하셨습니까. ‘네’라고 쉽게 답하지 마세요. 상실감이 그리 쉽게 사라지겠나요. 너무 애써 이기려하지 마시고 천천히 회복하세요.
저는 대선결과에 아파할 겨를도 없이 강정으로 달려온 덕분에 정신줄 붙잡고 있습니다. 여기 몇 안 되는 지킴이들과 예수회 김성환 신부님, 넋이 나간 주민들은 선거를 놓고 갑론을박할 기력도 시간도 없습니다.
‘강정에 평화, 구럼비야 사랑해.’
이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걸 외치다 울고, 미사 강론 하다가 울고, 들으며 울고, 애써 우스운 얘기 하다 울고, 울다가 웃으려고 버둥거리다 또 울고. 서로 붙잡고 우는 게 일입니다. 그러다 다시 공사장 앞에 가서 통나무들을 끌어다 펼쳐놓곤 1분 1초라도 공사가 지연되길 소망하며 고착당하고 끌려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한진중공업, 현대중공업의 노동자들 죽음 소식을 듣습니다. 정말로 큰 충격입니다. 정리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후들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봅니다만,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정권교체’가 가장 절실하고 절박했던 이유, 박근혜가 당선될 경우 가장 우려하던 그 일들, ‘죽음의 번호표’를 받아든 이들의 절망감이 바로 현실로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또 다시 박근혜 5년을 견디기 힘들다.’ 망자들의 유언은 그대로 지금 강정의 비명입니다. 도무지 남의 일이 아닐 지경으로 이곳은 지금 막막하고 외롭고 괴롭습니다. 그토록 흔들리지 않던 강동균 마을회장이 밤새도록 공사장 앞에서 절 붙잡고 뒹굴며 대성통곡, 절규했습니다. 나는 신자가 아니지만,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리도 가혹하실 수 있느냐고요. 어째야 합니까. 여러분이 이분에게, 또 여기 주민들에게 무슨 말이든 좀 해주세요.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역사는 우리 인간의 기대와는 다르게 작동합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절감합니다. 하느님의 공의로움과 평화 실현의 여정은 분명 직선길도 아니고, 정해진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도 아닙니다. 오로지 그 길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자각과 의지 정도에 의해서만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결과와 결실은 우리 몫이 아니며 하느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오한 또 다른 뜻이 이 역사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린 희망해야 하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강동균 마을회장의 ‘무사함’을 확인한 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분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조심스레 “많이 상심되시죠.” 했더니 “그래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죠.”라고 조용히 답하십니다.
강 회장 5살이던 29세에 남편 사별하고 3남매를 키우며, 오직 그 아들 하나에 평생 희망 두고 살아온 어머니. 그 어머니 속이야 더 타들어갈 것도 없는 시커먼 숯덩이일 텐데, 지금은 얼마나 더 힘드시겠습니까. 그래도 절망의 안색 내비치지 않으시며 오던 길에서 내려서지 말자고, 가고자 하던 길 계속 가자고 하십니다. 그 대범함과 올곧음에 제가 오히려 위로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평온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고 힐링과 미래를 논합니다. 저도 힘이 납니다. 그러나 당장에 길이 막혀버린 사람들에겐 매순간이 절벽이고 죽음입니다. 저도 달리 위로할 말이 변변찮아 그냥 여기 같이 있을 뿐입니다.
초라한 마구간을 조산원 삼기까지 마리아 요셉 부부의 초조함과 절박함, 실망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출산 임박한 만삭의 임신부를 외건강하고 튼튼한 성가정을 위해
2012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누구는 어수선한 마음에 위로가 된다 하고, 누구는 불의마저 없는 척 덮어버린 세상처럼 보여서 밉다 합니다. 하여간에 대선 후유증이 간단하게 봉합될 것 같진 않습니다. 여전한 분노와 상처, 무거운 침묵을 곳곳에서 마주합니다.
절망사. 대한민국 역사에 새로운 단어가 생겼습니다. 결코 등장하지 말았어야 할 말입니다. 박근혜 당선 일주일 만에 다섯 생명이 절망 속에 생명줄을 놓았습니다. 정치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역사학자 등등은 이 사태를 무겁고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인, 종교인, 시민사회, 노동운동 모두가 이 사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 좋은 날, 이토록 외롭고 힘겹게 세상 떠난 영혼들과 가족들을 기억하며 봉헌하는 미사는 참으로 아픕니다. ‘여성’과 ‘어머니 마음’을 강조하며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선 립 서비스 위로 한마디조차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국가란, 밥 먹여주면 그걸로 모든 걸 고마워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식의 군주적, 가부장적 가족관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서조차 삶이 파탄 난 이 고단한 벼랑 끝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거두고 돌볼 필요 없이 아예 내놓은 식구인가 봅니다. 안 그래도 추운 날에 마음이 더욱 서늘하게 얼어붙습니다.
성가정이란 혈연공동체를 넘어선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성경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으며, 아버지 요셉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관한 듯한 인연들이 서로 섬기고 성장을 지지하며, 동행자가 되어 주는 것이 성가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건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 종교지도자들에게 기대고 그들에게 하소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명확하게 그들이 버리고 거두지 않던 백성들 곁이었습니다. 낙담과 좌절로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 소외당하고 외로운 사람들 속으로 아주 낮게, 낮게 오셨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울고 웃으며 애환을 같이 하셨습니다. 그들 얘기를 들어주고, 가르치고, 먹이고, 격려하고 연대하셨습니다.
우리 가족들 중 어떤 이들은 무지하기도 하고, 몰역사적이며 이기적입니다. 어떤 가족들은 고통스럽고 처절한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가족들은 불의를 저지르고 묵인하는 일에 가담합니다. 반면에 또 어떤 가족들은 정의롭고 공정한 공동체를 위해 분투합니다.
개개인을 위한 참된 치유는 사회적 치유, 공동체적 치유와 함께 가야 합니다. 개인의 존엄과 안전은 사회적 수준이 받쳐주어야 튼튼하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힐링 된 분들은 어려움에 처해있는 다른 이들을 응원하고 돌보는데 힘써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힘내라! 힘든 사람을 향해 흔히 건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이미 없는 힘까지 짜내며 가까스로 버티고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또다시 ‘힘내라’는 소리는 ‘알아서 살라’는 얘기처럼 때로 냉정하고 가혹합니다.
물론 ‘힘내라’는 말 속에는 대체로 ‘나도 힘내겠다’는 의미도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들자고, ‘힘내라’는 말보다는 '이제 내가 힘내겠다’고 말할 때, ‘우리 같이 힘내자’라고 말할 때 진짜 모두 힘나는 법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2013년도 예산 삭감 여부가 코앞입니다. 구럼비마저 ‘절망사’ 했다는 소식은 결코 듣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떤 경우가 닥치든 우리는 미약함 속에서도 더 강해지도록 끈기 있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대선 평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무엇이든 결론은, 우리가 부족했음을 고백하고 나부터 새롭게 변화하겠노라 다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정의가 강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가정을 진정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2013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묵상
교황님의 '2013년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와 함께 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제46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13년 1월 1일)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이 시대는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측면을 지닌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며, 끊임없이 계속되는 유혈 분쟁과 전쟁의 위협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과 한 인간의 온전한 발전과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헌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평화를 이루려는 수많은 노력들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평화에 대한 인류의 타고난 소명을 보여 줍니다. 모든 사람 안에 깃들어 있는 평화에 대한 갈망은 어떤 면에서 충만하고 행복하며 성공적인 인간 생활에 대한 갈망과 일치하는 본질적인 열망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평화에 대한 갈망은 기본적인 도덕 원칙, 곧 사회와 공동체의 온전한 발전에 대한 의무와 권리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를 위한 하느님 계획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인 평화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평화는 꿈이나 이상향이 아닙니다. 평화는 실현 가능합니다."
담화문 전문 보기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09368&page=1&key=&keyword=&cat=
사진: 강정의 새해맞이 http://cafe.daum.net/peacekj/GdUL/279밀양 김준한 신부님이 전하는 소식입니다.
이치우 어르신께서 분신 사망하신지 1주기.
밀양 촌로들의 거룩하고 따뜻한, 어버이 품 같은 아름다운 희망순례 속에서 여러분도 큰 힘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희망에너지입니다. 진짜 강력한 치유 에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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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남았다면 아마도 한 이틀을 내리 잠만 잤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고, 너무나 아픈 사연이 넘쳐나기에
어르신들과 함께 또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번 울산 송전탑 농성장 방문 때 보였던 할매들의 눈물, 그리고 부족하지만 나누려했던 연대의 열정이
방문하는 우리 자신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밀양 송전탑 투쟁 어르신들의 ‘희망순례단’
... ○ 제안 배경
• 대통령 선거 이후, 벌써 다섯 분의 아까운 목숨이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기대를 걸고 있던 여러 장기 투쟁 단위(쌍용차, 현대차 비정규직,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유성기업 등)에서도 좌절감으로 향후 어려운 싸움이 예상됨.
•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함께 하는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서로 연대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희망순례를 통해 쌍용차, 유성 기업, 한진중공업.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등 장기 / 고공 투쟁 단위들을 함께 방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 계획
- 일시 ; 2012년 1월 14일(월)~15일(화)
- 일정 ;
<1일차> 1월 14일(월) *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농성장은 이미 다녀옴
밀양 출발(08:30)
-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10:00)
- 한국전력 서울 본사(16:00)
- 저녁식사(18:00)
- 대한문 ‘함께 살자 농성촌’ 미사 및 문화제(19:00 ~ ) - 숙박
<2일차> 1월 15일(화)
서울 출발(09:00)
- 평택 쌍용차 농성장(10:30)
- 점심식사(12:00)
- 아산 유성기업 농성장(14:00)
- 밀양 도착 (18:00)
• 인원구성 : 총 40명
• 1월 14일 대한문앞 농성촌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문화제’우리부터 새롭게!
2013년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
정치는 초라해도 우리는 희망차게 살 것입니다. 이 겨울이 아무리 추웠어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 법원에서 지난주에 통보받은 ‘벌금 10만원’, 항소 안하고 ‘노역’ 하려 합니다. 게다가 코앞에 있는 제 선고 공판만 3건, 소환장은 다섯 건. 이것들은 꽤 크게 두드려 맞을 것 같으니, 올해를 사법 탄압을 잘 이기는 해로 선포해봅니다. 새해 개인 전망치고는 좀 고약하지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본당을 떠나 있으니 세례 줄 일도 없습니다. 해마다 꼬박꼬박 세례를 주고 새 신자를 만들어냈던 그 시간들이 새롭습니다.
종교의식인 세례는 형식적으로는 신앙입문 절차이지만 본래의 내적 의미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가운데 선이 아닌 것, 하느님 뜻이 아닌 것은 모두 씻어내고 새로운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겠노라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참회와 단절, 철저한 쇄신과 변화가 세례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공적 생활 첫 걸음을 세례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나름대로 세례의식을 갖습니다. 인생에 새로 눈 뜨고 새로 살게 해주는 큰 사건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줍니다. 대체로 좋은 일보다는 아픈 일들 속에서 새로운 통찰과 성장의 계기를 갖습니다. 상처의 시간들이 세례식인 것입니다.
이번 대선 패배가 진실로 아프고 고통스러웠다면 우린 집단적으로 세례의식을 치른 것입니다. 새로운 안목과 각오, 거듭남과 새로남의 결정적 계기가 될 테니까요.
대선 패배 속에서 누구보다도 좌절했을 밀양 촌로들. 다들 눈물 뿌리고 힐링제를 찾아 방황하던 그 시간에 그분들은 그랬답니다. 괘안타, 훌훌 털고 다시 싸우면 된다, 7년은 더 싸울 수 있다! 그리고 이제 ‘희망 순례단’의 이름으로 고통 속에 있는 젊은 노동자들을 찾아 위로방문을 한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밀양 찾아준 사람들 고마우니까 답례 방문해야 하고, 가진 놈들은 없는 놈들 생각 안 하니까 없는 사람들끼리, 피해보는 사람들이 서로 알아줘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저래 힘들어하니 늙은이들이 가서 힘내라 안 해야겠나, 이겁니다. 정작 자신들도 힘든 분들이 이렇게 민중의 어버이요 치유자가 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이리 살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밀양 촌로들을 통해 역시 선은 위대하다는 것을, 그 역사는 반드시 전진한다는 것을 가슴 벅차게 확인합니다. 이분들이 이 시대 세례자 요한이 되시어 우리를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송전철탑 농성 노동자들, 강정, 용산, 쌍차 해고노동자들도 변함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이다’ 2012년 생명평화대행진의 구호는 계속 됩니다. 희망의 길,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오던 길을 계속 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직접 요르단 강으로 가셔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공적 생활을 완전히 바닥에서부터 시작하고, 기초부터 튼튼히 하셨으며, 군중과 더불어 군중들 눈높이로 사셨습니다.
우리도 밑바닥부터, 기초부터 다시 튼튼히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치인들만 변화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5년 10년보다 더 멀리, 내 지역보다 더 넓게, 지금 꿈보다 더 크게 삶과 관계, 활동을 재구성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통찰력과 지혜, 시야와 역량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십사, 쇄신과 창조로 이끄시는 성령께 간구합니다.
1주기를 맞은 밀양 고 이치우 어르신을 비롯한 주민들. 나아가 오늘도 변함없이 생명과 평화, 정의의 여정을 함께 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이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드리며 큰 절 올립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예수님 술독은 무한리필
2013년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행하신 이야기를 묵상함.
어느 무신론자인 술꾼이 그러더군요. 자기는 예수님 존재도, 기적이란 것도 안 믿지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다는 이 기적이야기는 참 맘에 든다고요.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가나 혼인잔치 기적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오직 요한복음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첫 번째 기적사건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서 전체의 방향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짐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가셨습니다.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당시에는 혼인잔치를 며칠 씩 했습니다. 그런데 잔치 집 술독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술 떨어지니 흥도 떨어집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신명과 접대의 상징이 초라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웅성대고 속으로 혼주를 욕하며 돌아가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이렇게 탄식하는 사람들에서 우리 모습을 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손에 없으면, 내 만족을 채울 수 없으면, 분명하게 얻을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없다” “안 된다” “끝났다”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잔치판 사람들이 ‘인간이 정한 시간’과 ‘인간이 만든 표징’을 말하며 시들해하던 그 순간, 예수님께서 “저의 때는 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자기들 경험과 능력, 판단으로 다 끝났다고 시들해하던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정작 구원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에 있는 비어버린 술독이 아니라, 정결례에 쓰는 다른 물독들에 물을 채워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여간에 예수님도 참으로 사서 고생하는 분입니다. 이미 있는 큰 독 하나만 채워주었어도 사람들은 좋아했을 텐데, 굳이 애써서 새로운 독 여섯 개를 새 포도주로 채워주십니다. 예수님도 주당이셨을까요? 하객들은 이거 웬 떡, 웬 술이냐 신나했겠지요.
예수님께서 가득가득 채워주신 것은 술이 아닙니다. 새로남과 신명입니다. 생명력과 풍성함, 돌봄과 나눔입니다. 한계를 넘어서고 계속 꿈꾸고 소망하는 것이며, 잔치판이 계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자기 경험과 상상력으로선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걸 말할 때 씁니다. 질서와 순리, 이성적 사고 범위를 초월하는 굉장히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을 일컬을 때 씁니다. 관심사가 소소하고 자신이 정한 울타리 안에 머물고자 하는 이들이 기적을 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오직 “비참한 처지에 빠졌을 때만이 기적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리어왕] 2막 2장에 나오는 표현).
예수님께선 결코 당신이 메시아라는 걸 입증하거나 행세하려고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사람들을 혹하게 하고, 추종하게 하려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아주 가끔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들을 살리고 먹이기 위한 연민과 연대, 굳건한 믿음에 응답하기 위한 것으로만 행해지셨습니다.
이제 많이들 회복됐지만, 우리도 ‘인간이 정한 시점, 가시적 기대와 성과의 패배’라는 대선 후유증을 훌쩍 넘어섭시다. 초상난 것 마냥 술들 많이 드셨잖아요.
이제 예수님께서 퍼부어주시는 새로운 의미의 술로 진짜 잔치판이 계속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 술독은 무한리필입니다. 걱정 마세요. 이 술을 드시면 몸에 좋고 마음에 좋고, 보람찬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에서 중요한 건,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께서 기적의 통로요 메신저 역할을 하신다는 겁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일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아들이 하는 말이나 행위를 이해할 순 없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아들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함을 어머니 마리아는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니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시대 우리들이 이 시대 예수님 기적의 통로요 메신저여야 합니다.
예레 미제라블 in 강정....
주님 한없이 미약한 저희에게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 하루 김성환 신부님 트윗 소식.예수님 꿈, 킹 목사 꿈, 우리들 꿈
2013년 1월 27일 연중 제3주일 묵상
“때가 왔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차별받고 모욕 받고 억압의 잔인한 발차기를 당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저항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놀랄 만큼 대단한 인내를 보여 왔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백인형제들에게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대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밤 이곳에서 그 인내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정의를 찾으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영광 중 하나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저항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과 품위를 지닌 채 용감하게 저항한다면 미래의 세대를 위한 역사책에는 이렇게 기록될 것입니다. ‘한 때 문명이라는 혈관에 새로운 의미와 위엄을 불어넣은 위대한 흑인들이 살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도전이며 진정한 의무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민권운동에 나서며 최초로 한 연설입니다. 저는 이 연설이 참 좋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킹 목사 연설은 아래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자녀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 연설은 지금도 여전히 국경을 초월해 수많은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영감과 혼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참으로 가당찮은 꿈, 허튼 꿈, 두렵고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미국은 킹 목사를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날을 보냈습니다. 그날 우리도 우리 꿈을 지키기 위해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선 ‘예수님의 꿈’ 선포식이 열립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은혜로운 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은혜’는 자선이나 적선이 아닙니다. 불의와 탐욕으로 망가져버린 이 세상. 그런 세상을 하느님 창조질서의 근원적 의미로 회심시키고 회복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연민과 연대, 해방과 자유의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은혜’를 돈푼쯤 집어주는 적선이나 자선쯤으로 격하시키고 왜소하게 만드는 행위야말로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는 언제나 ‘은혜로운 해’를 꿈꾸는 이들의 도전과 전진, 그리고 이를 한사코 가로막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악을 쓰는 무리들 사이에서 출렁입니다. 결론은 언제나 하나, 전자가 이깁니다. 언제든 어떻게든 꼭 이깁니다. 아무리 아프고 슬퍼도, 숱한 상처와 곡절을 겪어도 반드시 이깁니다. 우리들 상식과 양심은 이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 꿈꾸고 함께 나아가는 것을 진정한 도전과 의무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사랑과 품위로 문명이라는 혈관에 새로운 의미와 위엄을 불어넣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오늘 선포하신 이 기쁘고 은혜로운 소식이 그 자체로 희망이요 큰 힘 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초고압 송전탑과 원전 건설 중지시켜 내 고향 지키고 자식들에게 좋은 나라 물려주겠다는 밀양 농부들의 꿈, 제주와 강정을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평화인들의 꿈, 안정되고 공정한 일터에서 일하겠다는 노동자들의 꿈, 생명력과 의로움 넘치는 마을, 지역과 사회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 주님께서 그 모든 ‘가당찮고 허튼 꿈들’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어떤 이들의 꿈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 문규현 신부 드림뚝심쟁이 예수님, 뚝심쟁이 그리스도인들, 뚝심쟁이 평화의 사도들!
2013년 2월 3일 연중 제4주일 묵상
예레미야서 1,4-5.17-19/코린토 1서 12,31─13,13/루카복음4,21-30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소음과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며, 숱한 유혹과 허구들 속에서도 진실과 진리를 알아내고 붙잡는다는 게 쉬운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헷갈릴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가르침, 그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의미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기 때문입니다.
뚝심쟁이 예수님! 그분만을 보세요. 불신하고 회의하고, 자기 입맛에 맞추다 안 되니, 거짓말쟁이, 혼란을 부추기는 자, 군중선동가, 혁명가, 가짜 메시아, 분열주의자, 고향 욕 먹이는 놈 등등 온갖 낙인찍기를 일삼다 마침내 살해하려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로 가로질러 가셨습니다. 그들을 그냥 뒤에 내려두고 떠나가셨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시는 믿음과 희망,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전부, 다 내려두고 다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두려워할 것도, 에돌아갈 것도 없습니다. 그분처럼 우리도 당당하고 용감하게 이기심과 탐욕, 온갖 유혹과 협박의 소용돌이를 가로질러 갑시다.
사랑, 믿음, 소망을 부추기고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 허튼소리고 가짜요 위선입니다. 소음과 소용돌이 중심부에는 오롯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만을 놓아두어야 합니다.
남북분단 70년 가까이 분단과 안보를 그토록 우려먹었으면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30여년만 더하면 남북분단과 전쟁이 백년 됩니다. 적들을 계속 만들고 두려움에 떨어야 하며, 살상무기와 군사기지를 들어서 대비해야 한다고 하는 자들. 그런 안보장사치들의 끊임없는 협박과 공포마케팅에 굴복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평화는 없습니다.
우리 미래를 계속 왜소한 과거에 붙잡아두는 자들, 생태적 사회와 평화공동체를 선포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강정 밀양 쌍차 한진의 줄 잇는 죽음과 피눈물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책임질 줄도 모르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그런 야당 정치인들에게 이제 단호히 미련과 기대 그만 거두시길 바랍니다. 그냥 뒤에 두고 자신만의 길을 가세요. 그런 정치 부랑자들보다, 나누고 연대하는 나 한 사람이 더 힘 있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밀양 할매들이 바로 정답을 선포하셨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누구든, 바람이 어디로 불든,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
“8년을 싸웠는데 80년인들 못 싸우겠나!”
“반성의 여지가 없다.”고 양윤모 선생이 법정구속 됐습니다. 자기 생일날 4번째 구속된 양 선생은 이제 살아서 감옥을 나오지 않겠다며 최후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우린 반성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미약하고 부족해도 맨몸뚱이와 믿음 희망 사랑만을 무기로 썼기 때문입니다. 끌려나오고 연행당하고 벌금 내고 구속당해도, 다시 평화의 자리, 원래 마음의 중심으로 돌아가기만을 반복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야말로 저들을 향해 끝까지 반성과 회심을 촉구해야 합니다. 8년이든 80년이든, 우리 인생을 살고 우리 길을 가는 것으로, 우리를 철저하게 짓밟으려는 자들 한가운데를 예수님처럼 가로질러 떠나가는 것으로 말입니다.
뚝심쟁이 예수님, 뚝심쟁이 그리스도인들, 뚝심쟁이 평화의 사도들!
여러분이 오늘 뒤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한가운데로 가로질러 가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 문규현 신부 드림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2013년 2월 10일 연중 제5주일, 설날 묵상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예수님께서 우리 복주머니에 꽉꽉 채워주시는 설날 세뱃돈이요 덕담입니다. 조상님들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이렇겠지요. 그렇듯이 설 명절, 모두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참된 행복 가르침인 진복팔단은 마태복음(5,3-10)에 나옵니다. 오늘 ‘행복하여라’는 루가복음 버전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행복합니까? 여기 루가복음에서는 간명하니, 예수님 당부는 이렇습니다.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깨어있어라.
준비하고 있어라.
"바로 이런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신줄 꽉 붙잡고 살라는 것, ‘넋 빠진 놈’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오실 시간, 예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 나라 때문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 그런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 가르침대로 살 수 없다고 아우성칩니다. 깨어있고 준비하며 기다릴 수 “없는” 구실들 변명들이 저마다 무수히 많습니다. 형편 어려운 사람들은 버티고 살기에도 벅차서 그렇게 살 여유가 없다고 ‘생존론’을 펼치고, 잘사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특권과 성역 속에 갇혀 단절과 고립을 자처하기 일쑤입니다.
국가폭력, 자본폭력, 권력폭력 등등의 피해자, 희생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내가 직접 당하기 전에는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이 말은 그이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자기고백입니다. 내 문제로 닥쳐야 비로소 타인에게 눈 돌릴 힘이 생긴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그러나 희생자들이라고 모두 문제의 본질을 자각하게 된다든가, 당당한 문제 해결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문제를 해결했다고 사안이 다른 타인들 아픔까지 공감하고 연대하며 힘주는 존재로 거듭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직접적인 피해당사자가 되지는 않기에, 그저 무디고 무관심하게 살아갑니다.
등불을 밝히고 늘 깨어 있으며 준비한다는 것은,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든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민을 나누고, 우리가 서로 강력하게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야 희생자가 되기 전에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설사 희생자가 되더라도 혼자 아프지 않게 이겨나갈 수 있으며, 더 크고 의롭고 강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넋이 살고 정신줄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습니다. 참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그날 그 시간을 맞이하는 우리의 진짜 자세입니다.
행복한 기운과 덕담들로 가득한 설 명절입니다. 서로서로 기운주고 힘 되는 시간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게 제일 크고 값진 명절선물입니다. 더불어 이 혹한 속에 몸과 마음이 더 꽁꽁 얼어붙은 집 바깥 이웃들도 기억하시고, 안부와 인사 건네실 수 있기 바랍니다.
행복하시라. 행복하시라. 행복하시라....
- 문규현 신부 드림.내 힘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2013년 2월 17일 사순 제1주일 묵상
'힘.' 그 힘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예수님과 악마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는 바로 이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악마는 예수님이 가진 권능을 예수님 자신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위해 쓰라고 유혹합니다. 자기에게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라고 큰소리칩니다. 참으로 혹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권력과 부와 영광을 다 물리치십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종이요 민중의 벗으로만 살 것이며, 하느님 말씀과 사랑으로만 사람들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부여하신 권능은 오직 타인을 위해서만 쓰일 것임을,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서만 바칠 것임을 굳건하게 보여주십니다.
이 시대 악마도 같은 모습, 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내가 가진 힘을 오직 나를 위해서만 쓰라고 유혹합니다. 돈을 위해 살아라, 권력을 차지하고 군림하라, 너만 성공하면 된다, 타인을 짓밟고서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져라, 과시하라, 제압하라... 그렇게 이 시대 악마는 힘을 가진 자들에겐 힘을 더 가지고 더 쓰라 유혹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가냘픈 힘조차 다 털어가는 데 악착같습니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으면 이 사회에선 비참한 존재입니다. 악마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너는 별 볼일 없는 존재다’라고 끊임없이 부추깁니다. 스스로 규정하던 세상이 규정하던, 이렇게 미약하고 힘없는 이들은 우리 주변과 온 나라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히나 밀양 노인들을 보면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이란 말은 더 이상 맞지 않습니다.
무지막지한 국가폭력과 돈지랄도 맨몸뚱이 맨 정신으로만 버티는 시골노인들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움 짧고 가진 것 없는 시골노인네들이 막강 한전을 상대로 거듭 지혜를 모으고 진화하며 똘똘 뭉쳐 싸워나가는 걸 보면, 멘붕이니 좌절이니 하는 말들은 참으로 가볍고 사치스럽습니다. 그래서 젊은 노동자들도 강정마을 사람들도 이 노인들의 투혼 앞에 겸손해지고 큰 배움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힘없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자기 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선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쓰이는 힘이거나 타락과 탐욕에 절은 힘이 있을 뿐입니다. 이타적이고 의미 있는 힘 아니면 이기적이고 몰가치 한 힘이 있을 뿐입니다. 생명과 평화를 낳는 힘 아니면 파괴와 죽음을 낳는 힘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선 성령의 이끄심에 순응하여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인도를 따라가고 있을까요? 성령이 아닌 악마의 유혹에 우리 자신을 내맡겨 스스로 황폐화된 세계에 들어서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봐야 합니다. 악마의 유혹인지, 성령의 이끄심인지를 분별하며, 끊을 것은 끊고 택할 것은 택하는 것이 사순시기에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들이 선한 일에 침묵하고 무관심할 때, 악마는 춤을 춥니다.
감옥 속에서 3주 째 단식 중인 양윤모 선생과 혜화동 성당 종탑 위 노동자들, 한진과 쌍차, 콜트콜텍 노동자들, 강원도 골프장 저지를 위해 싸우는 분들도 기억합니다. 시대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고 계심에, 함께 아파하고 마음 나눕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쓰고 있습니까?
- 문규현 신부 드림침 묵 / 토마스 머튼
마음이 상했지만 답변하지 않을 때
내 명예에 대한 방어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길 때
침묵은 양선함입니다.
형제들의 탓을 드러내지 않을 때
지난 과거를 들추지 않고 용서할 때
판단하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용서해줄 때
침묵은 자비입니다.
불평 없이 고통을 당할 때
인간의 위로를 찾지 않을 때
서두르지 않고 씨가 천천히 싹트는 것을 기다릴 때
침묵은 인내입니다.
형제들이 유명해지도록 입을 다물고
하느님 능력의 선물이 감춰졌을 때도
내 행동이 나쁘게 평가되더라도
타인에게 영광이 돌려지도록 내버려둘 때
침묵은 겸손입니다.
그분이 행하시도록 침묵할 때
주님의 현존에 있기 위해 세상 소리와 소음을 피할 때
침묵은 신앙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고 십자가를 포옹할 때
침묵은 바로 흠숭입니다.죄 짓고 있는 현재를 회개하라.
2013년 3월 3일 사순 제3주일 묵상.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죄 지은 과거가 아니라, 죄 짓고 있는 현재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류는 특히 핵발전소 핵무기를 안고 자멸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재앙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이들을 포함해 국내외 다른 원전들도 계속 공포스런 사건사고를 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편리와 소비 중독, 탐욕과 이권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에너지 중독, 핵 중독에 절어 사리분별을 못하는 우리가 바로 죄로 물든 인간 군상입니다. 하느님의 사랑하는 피조물들을 ‘피로’ 물들이면서도 속죄할 줄 모르는 죄인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선 포도원지기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는 삼년 째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아예 없애자는 주인 말에, 한 해 더 기다려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다.”고 합니다.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는 가망 없는 일에도 희망을 거는 것, 죽어가는 것들 속에서도 생명을 보는 것입니다. 다들 끝났다고 포기하고 거두지 않는 일조차 끈기 있게 돌보고 살려보는 것입니다.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살리겠다." "살리자."고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포도원지기처럼 우리도 죽음을 방조하는 이기심과 악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과 삶에 둘레를 치고, 오직 선함을 돌보는 일에만 거름주기를 해야 합니다. 거름주기는 생명의 행위로 미래와 자식들 세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다짐은 회개가 아닙니다. 공멸하지 않으려면, 자멸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당장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 있게 그 길을 가면서 열매를 얻고자 해야 합니다.
특히 후쿠시마 2주기를 맞는 이즈음, 우리는 그 같은 원전 재앙이 이 나라 이 땅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당장 회개하지 않으면, 당장 생명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처럼 엄청난 고통과 환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커서 뭐가 될까를 꿈꾸지 못하고, 자기가 언제 죽을까를 생각한다던 체르노빌 아이들. 우리도 커서 결혼할 수 있냐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냐고 울먹이며 묻는 후쿠시마 아이들의 슬픔에 우리들이 진실로 통곡하고 참회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 어른도 인간도 아닌 것입니다. 밀양 청도 촌로들이 초고압 송전탑 건설문제로 겪는 고통의 근원에도 핵발전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탈핵은 책임을 넘어 의무입니다.
죽어가는 무화과나무에 둘레를 치고 거름을 주며 더 기다려 보자는 포도원지기. 그래도 나라 곳곳에, 세계 곳곳에 있는 이런 포도원지기들 때문에 하느님께선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에 들이십니다.
여러분이 거름을 주며 돌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살리며 어떤 희망을 일구고 계십니까?
- 문규현 신부 드림.
* 3월 9일에는 서울 시청광장에서 2시부터 후쿠시마 원전재앙 2주기 탈핵대회가 있습니다. 그 자리서 뵐 수 있기 바랍니다. 함께 탈핵의 둘레를 치고 생명 거름을 줍시다.고급 방탕과 회개
2013년 3월 10일 사순 제4주일 묵상
방탕에도 급이 있어 보입니다. 크게는 저급 방탕과 고급 방탕, 두급으로 나눠보죠.
저급 방탕은 일차원적 방탕, 개인적 방탕입니다. 흥청망청 돈을 쓰고 쾌락으로 밤낮을 보내는 따위입니다.
종종 가족들과 주변사람들마저 고통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분수 모르고 분별력 없이 산 대가로 결국에는 자기 인생 전체가 피폐해지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고급 방탕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욕과 탐욕을 부려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방탕입니다.
이들은 전문성이나 시스템을 동원, 공유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까지 착취하고 파괴하며 자기 배를 채웁니다. 특히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자연자원과 희망까지 탕진해버리니, 저급 방탕하고는 그 수준이 비교가 안 됩니다.
사실 ‘고급’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성도 지성도 감성도 없는 자들로, 가장 하급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걸 ‘성공한 인생’이라 칭하며 부러운 눈으로 우러릅니다.
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 돌아온 탕자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나눠받은 돈을 다 탕진한 방탕한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아버지가 다시 사랑과 자비로 반기며 기뻐하신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밀려듭니다. 이렇게 지구를 핵으로 오염시키고선 회개할 염치가 있을까? 신의 영역을 넘보며 하느님 창조 역사와 섭리마저 공격하고 결정적 위험에 빠트리고선, 더 이상 어찌할 도리 없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도쿄전력회사가 주는 각종 지원과 혜택에 취해 원전 위험성에 눈감고 있다가 이렇게 당했습니다. 우리도 죄인입니다.” 한국에 왔던 한 후쿠시마 농민의 고백입니다.
체르노빌 주민의 고백도 같습니다. “체르노빌은 농부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에요.... 그 때는 몰랐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 모두가 그 범죄에 가담했다는 걸 깨달았어요.”-[체르노빌의 목소리].
분별력 없음과 절제하지 않는 생활, 무관심과 과소비는 그 자체로 고급 방탕에 연결되어 있고 자동으로 ‘범죄’에 가담하게 됩니다. 이렇게 방탕하게 살아도 회개만 잘하면 나중에 하느님께서 받아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모를 일이고 우리가 판단할 영역도 아닙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겐 매 순간 회개의 삶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야 할 ‘새사람’다운 의무만이 있을 뿐입니다.
후쿠시마 2주기. 도시 어린 학생부터 시골 농부들까지 어우러져 곳곳에서 탈핵을 외쳤습니다. 이는 방탕이 넘쳐나는 현 사회에서 그 자체로 회개의식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고, 또 어제 광장에서 그 희망을 다시금 벅차고 기쁘게 확인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돌아온 탕자’같은 모습이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 문규현 신부 드림어젯밤 시사기획 창에서 한국 원전의 안전 상태를 보여줬습니다. 안전불감증에 깊은 한숨만 계속 나오더군요. 원전이 핵무기. 이 좁고 작은 나라에서 핵발전소 사고 나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핵 물질 피해자들이 말하는 비극적인 교훈을 잊으면 안됩니다.
모리즈미 다카시 선생 사진들 온라인 전시.
구소련 핵실험 피해자들과 후쿠시마 원전 재앙 주민들...
http://shiva1020.cafe24.com/ncl_gallery교황 프란치스코 1세
2013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묵상
율법학자들은 단죄해야 한다고 시끌시끌한데, 예수님께선 말없이 땅바닥에 뭘 쓰십니다. 그러더니 "나는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너도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시며 간음죄로 잡혀온 여자를 그냥 보내주십니다.
단죄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 문을 닫아걸지 말고, 활짝 열라는 것입니다. 다른 가능성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고 포옹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에 최대한 우리를 내맡기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조차도 두려워말고, 내 마음 문 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지혜와 성령의 움직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단죄하지 말라는 것은 또한 드러난 행위 뒤의 배경이나 구조적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근원과 뿌리도 함께 살피라는 것입니다.
새 교황님이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했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환호하고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교회가 중세 이래 가장 타락하고 가장 둔감한 시기에 처해있음을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사랑과 우애, 겸손과 섬김, 단순함과 소박함, 자연과의 친밀함.., 이런 것들을 교도권에서도 느껴볼 수 있기를 참으로 갈망해왔기 때문 아닐까요.
프란치스코 1세 교황님의 첫 미사 강론의 한 대목입니다.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는 새 교황님의 이끄심 속에서 우리 교회가 다시금, 교회의 근본인 겸손과 청빈 영성을 회복하는 기회의 배에 과감하게 올라서길 바랍니다. 단지 마음만이 아니라 행위와 구조로서도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갈수록 잊고 있는 십자가 영성이고, 삶으로 증거 해야 할 구원 영성입니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남미 브라질의 저명한 신학자요 영성가입니다. 그는 가톨릭 교회를 지극히 사랑한 사제였으나, 그 교회로부터 단죄 받고 결국 교회를 떠난 분입니다. 프란치스코회 소속 사제이던 시절에 쓴 저서에서 보프는, 교회가 그리스도교의 예언적 전통과 역사를 열린 자세로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예언적 운동으로 "청빈과 봉사와 모든 영예와 사치를 거부하는 복음주의적 차원, 그리고 소외받은 사람들 가운데로의 투신을 다시 받아들여 온 운동"입니다.
예수회 소속 남미 대륙 추기경님께서 교황에 선출되셨다는 소식에, 강정 마을 우리 예수회 신부님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 편에 서서, 또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예수회 수도자들, 특히 강정의 우리 신부님들에게 새 교황님은 더 큰 용기와 지지, 연대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강정 예수회 신부님들은 기운 빠지고 포기하게 될까요?
새 교황님에 대한 기대가 열렬합니다. 속단도 지나친 기대도 금물입니다. 이는 실망과 좌절을 예비하고, 단죄와 심판을 준비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단죄는 내 뜻과 욕심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기대하기를 중단해야 합니다. 내 기대치에 안 미친다고 쉽게 비난하고 화내며 심판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틀에 들어오게 만들기를 단념하고,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사순시기에 묵상주제로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다만 감사하고 축하할 때입니다. 하느님께서 결정적 시기마다 우리를 더 선하고 더 괜찮은 지점으로 새롭게 인도하고 계심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수난의 원 뜻과 그 현장 한 가운데로, 우리를 끊임없이 불러들이고 계심을 지금 기쁘게 목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새 교황께서 선출되셨다는 소식보다 더 감동적인 사건은, 역사상 최초로 군종사제직을 거부당한 우리 세 명 신부님들 이야기였음을 고백합니다.
생명과 평화, 겸손과 섬김의 교회.
프란치스코 1세 교황님과 함께 이 여정을 감사히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허나,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결코 실망하거나 단죄하지꼭 봐야할 4.3 영화, 지슬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68396대구에 사시는 페친 조준연님...
서울 북쪽 구석까지 찾아주셨네요... ^^*
꿈틀교실은 종강이고... 마을극장은 어제 작품전시 철수하고... 보여드릴게 변변찮네요... ㅜ.ㅡ;
어제 만든 '영혼의 닭백숙'을 대접하는데... 강쥐들의 따가운? 시선에 잘 드셨는지...? ~.~;ㅋ
조준연님~
먼곳에서 찾아 주셔서 넘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바쁜 마을살이라 대접이 소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오랜만의 상경에 많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 만드시고 귀향하시길 바랍니다~^^*"와서 아침을 들라."
2013년 4월 14일 부활 제3주일 묵상
"와서 아침을 들라."
예수님의 부활 초대입니다. 그분의 부활 메시지입니다. 빵을 들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구워 주십니다. 평온하고 따뜻합니다. 먹이고 품고 살리고 함께 하는 것이, 평화요 부활입니다. 주님께선 이렇게 참으로 평범한 일상을 부활 징표로 삼으셨습니다. 좌절과 공포, 스승을 배신했다는 수치심과 분노, 상처로 가득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잔잔하고 온화한 밥상초대에 주님을 알아봅니다. 그분이 부활하셨음을 확신합니다.
"와서 무기를 들라."
또다시 사방에서 악쓰는 소리에 예수님의 ‘아침 초대’는 왜소하고 한가해보입니다. 남북분단과 정전 칠십여 년. 이 기나긴 세월에도 대결과 증오, 외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 민족이 상이군인이요 전쟁 증후군에 시달려왔건만, 이제 제발 이 고통과 공포의 악순환을 끝내자고, 그만하자고 외치는 목소리는 여전히 미약합니다.
"와서 아침을 들라."
예수님의 초대는 "와서 평화를 들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죽음과 두려움은 내려놓고 화해와 치유, 살림과 생명의 시공간으로 들어서라는 말씀입니다. 총칼을 들고 아침상을 받을 순 없으며, 사랑하는 이들을 전쟁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습니다.
"아시아,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대립을 극복하고 새로운 화해의 정신이 자라나길 바랍니다." 교황님의 부활대축일 메시지 중 일부입니다. 감사하게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새로 즉위하신 교황 프란치스코의 육성으로 직접 들었습니다. 세계 순례문화 교류 탐방길에서 받은 또 다른 선물이었습니다.
머나먼 타지에서 매일 듣는 조국의 전쟁 분위기, 변함없이 외롭고 눈물겨운 강정과 노동자들의 현장 소식으로 무거운 마음 끌고 다니던 차에 교황님의 평화 메시지, 평화의 인사는 참 따뜻한 위로요 희망이었습니다.
교황께서는 "죽음을 생명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앙갚음을 용서로, 전쟁을 평화로 바꾸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평화를 구하자."고 전 세계에 호소하셨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가, "와서 아침을 들라."는 예수님의 초대가 이제 이 시대 교황 프란치스코를 통해 더욱 새롭고 강력하게 퍼져나가길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강우일 주교님께서 애타는 마음을 담아 한반도 평화를 간구하는 기도문을 내셨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와서 평화를 들라."는 예수님의 아침초대에 응답합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평화를 구하는 기도]
주님, 이 어리석은 민족을 용서하소서!
수백 만 백성이 배를 곯고 있는데,
쌀밥 한 공기, 고깃국 한 그릇도 배불리 못 먹이면서,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핵무기를 실험하며 허공에 돈을
뿌리는 어리석은 무리를 용서하소서!
주님, 이 무심한 민족을 용서하소서!
한 핏줄, 한 민족 백성이 굶주림에 허덕이다 못해 철조망을
뛰어넘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먼 나라 산하를 헤매다가
가진 것 다 팔고 몸까지 팔고 영혼이 산산조각 나는데
지척에서 소 닭 보듯, 나 몰라라 하는 이 무정한 무리를 용서하소서!
아벨을 죽인 카인을 용서하셨듯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야곱을 용서하셨듯이, 저희를 용서하소서!
당신이 베푸신 끊임없는 은총을 망각하고,
돌아서면 불평하고, 밥 먹듯 배신을 반복한 이스라엘을
눈감아 주시고 참아주시고 용서하셨듯이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우매한 백성은 불과 60년 전에 수백만 동족 목숨을 짓밟은
어리석은 전쟁을 치르고 부모 형제들의 비명과 신음 소리 들으며
그 많은 시신을 땅에 묻고도 벌써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당신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형과 아우들, 누이와 친구들 목숨
끊으려고 또 다시 총을 닦고 포대를 세우고 핵폭탄까지 터뜨리며
당신 앞에 오만과 협박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형제 집안보다 40배나 많은 재산을 벌어 하늘에 닿는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살 뺄 걱정들만 하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형제를 업신여기고 손 내미는 아우 앞에
매정하게 문고리를 닫아걸고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골든타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 묵상
'골든타임.'
의사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를 살려낼 수 있는 최후의 제한된 시간을 이렇게 말한답니다. 한겨레 토요판에 격주로 이 골든타임과 싸우는 환자와 의사들 얘기가 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저하고도 연관 있는 심장 수술 얘기여서 더 관심있게 봤습니다.
이번 주일 복음묵상은 서울 병실에서 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적어도 한 10여일 병원에 있게 될 거라 예상하고 바리바리 짐 싸들고 올라갔다가, 주치의와 긴 의논 끝에 더 지켜보기로 결정하고는 전주로 돌아왔습니다.
전주로 돌아오기 전 대한문 미사에 갔습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시키지 말라는 주치의의 신신당부지만, 힘들다고 그냥 돌아올 순 없으니까요.
슬프고 추악한 화단이 생겼습니다. 봄날, 봄꽃, 봄 화단인데 아름답지 않습니다. 생기도 없습니다. 꽃들에게도 못된 짓입니다. 위로와 기쁨 그 자체가 되어야 할 존재들이 사람을 몰아내고 피눈물 흘리게 만드는 억압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수없이 쫓겨나고 외면당하고 버려진 사람들, 절망 속에 세상과 인연을 끊은 이들의 외마디 피눈물과 애끓는 소리조차 잔인하게 묵살해버리는, 가냘픈 한 뼘 땅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가진 자들, 권력자들의 패륜과 지배욕이 하늘을 찌릅니다. 탈탈 다 털고 다 차지하고, 자기들 맘에 안 드는 건 한 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뻔뻔함과 오만함은 언제나 놀랍습니다. 인간의 귀함을 인정하지 않고, 약자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에 뭔 놈의 국민행복이 있고 창조경제의 기운이 흐르겠습니까. 참으로 가당찮습니다. 극소수행복과 약탈경제만 창궐할 뿐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앙인에게 골든타임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응답하며 주님 안에 머무는 시간,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시간입니다. 바로 한 뼘 땅 작은 자리에서 올리는 대한문 미사가 ‘골든타임’입니다. 너무 힘들고 아파서 신음소리조차 내기 힘겨운 이들의 애절함. 그것이 주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짓밟히고 죽어가는 사람들, 절망과 막장으로 몰리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고자 혼신을 다하려는 봉헌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주님 목소리를 잘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그분 음성을 다시 세상에 명징하게 전하려는 의지로 충만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어제 지인 한 분이 정호승 시인의 '봄길'을 들려주었습니다. 잘 알려진 시이지만, '골든타임' 안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저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사진 http://blog.daum.net/sajedan21/2002주님의 절대 유산, 평화
2013년 5월 5일 부활 제6주일 묵상
이번 주일,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구두 유언'을 남기시는 중입니다. 성령이신 '보호자' 그리고 '평화', 이 두 가지가 예수님의 약속이고 유언이요 유산입니다.
예수님 유산의 특징은 추상적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 자산입니다. 돈도 금붙이도 부동산도 아닙니다. 누구는 뭘 가지고, 누구에겐 뭘 남기고, 그런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 유산의 또 다른 특징은 만인의 것이요, 만인을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독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모두에게 속한 것이고 모두가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누가 혼자 차지할 수 있고, 평화를 누가 독식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한 세대 또는 자기 울타리만 염두에 둔 이기적인 이익이나 안목이 아니라 영원무궁한 미래를 바라보고 그걸 가능케 하는 유산이라는 겁니다. 그게 평화!인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의 평화는 탐욕과 야욕의 흥정거리요, 선호도 순위로는 밑바닥이며, 기껏해야 내 자식 세대까지나 안전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한결 같으니, 이건가 저건가 마음이 산란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평화, 그것만 보고, 그것만 생각하고 가면 되는 겁니다. 평화, 그것은 예수님의 절대계명인 사랑의 물질적 구현이고 심리적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개성공단은 매일매일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던 곳.” 개성공단은 갈등과 긴장을 풀고 통일을 배우는 용광로였다는 통찰에, 제 가슴은 내내 뜨끈했습니다. 분단과 적대, 긴장과 증오의 땅 위에 이것이 기적이요 축복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곳이야말로 실체 있고 실감나는 화해와 평화의 배움터였고, 지금여기에서 누리는 미래, 남북통일의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개성공단 '완전 폐쇄' 소식이 날라들었습니다. 용광로 불이 꺼졌습니다. 아프고 또 아프고, 괴롭습니다. 평화를 일구는 데는 수많은 이들의 기나긴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나, 그걸 무너뜨리는 데는 그릇된 한 사람의 한 순간 못난 결정이면 된다는 현실이 참으로 슬픕니다.
올해는 정전 60년 되는 해입니다. 남북이 휴전 상태로 환갑나이 됐습니다. 환갑 때면 대개 그동안 잘 살았음에 감사하며 기념으로 수건 돌립니다. 온전한 정신 박힌 국가지도자라면 긴장과 공포에 시달리는 이즈음에라도 종전선언하고 평화협정 체결해서 국민들에게 선물해야 하는 겁니다. 만인에게 좋고, 나라의 미래를 지속가능케 하는 평화협정 말입니다.
그런데 '한미동맹60주년' 선포 얘기만 나옵니다. 안보장사, 적대와 증오의 영구화를 위한 동맹 강화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남기신 평화와는 명백히 대척점에 있습니다.
안보장사와 군비확장 때문에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 대가는 누가 감당하고 있는가? 누가 희생되고 있으며, 또 희생될 것인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아이들 학원 학교 잘 고르는 것보다 중요하고, 아이들 미래가 소중하다면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날, 생명의 달에 절대 필요한 사색입니다.
예쁜 손주를 품에 안고 티비를 보며 “나는 다 살았으니 전쟁 나도 돼. 다 쓸어버려!”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전쟁세대의 맹목적이고 협소한 말들이나,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말하면서도 현실의 평화에는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것이나, 전쟁체제를 지속시키고 협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유산, 평화만 오직 외칩시다.
외롭지 말라고, 두려워말라고, 의지하라고 주님의 대리자요 보호자인 성령도 보내주시지 않았습니까.
- 문규현 신부 드림
5월 3일 강정 해군기지"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2013년 5월 12일 주님 승천 대축일 묵상
주님 승천.
이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의미가 비로소 완전해짐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뿌리신 사랑과 평화. 이것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승천과 함께 모든 피조물에게 내재된 신성, 즉 존재의 고귀함과 존엄성 또한 완성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 믿음의 방향은 재삼 확인됩니다. 신앙인에겐 한 방향, 일방통행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지상의 일은 저희 몫입니다. 저희는 주님의 증인입니다. 그 모든 의혹과 비난, 모욕과 조롱, 배신, 불신, 법정, 사형수, 죽음.... 다 겪으셨고, 다 이기셨습니다. 주님 승천은 그 어떤 악행과 억압도, 무지막지한 권력과 폭력도 사랑을 막지 못하고 희망을 꺾지 못함을 증명합니다.
형님 문정현 신부가 테트라포트로 떨어졌다가 기적처럼 소생하신 지 일 년 여, 다시 강정 주민이 경찰에 떠밀려 추락 중상을 입었습니다. 목에 쇠줄을 걸고 항거하던 강동균 마을회장은 다시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겪는 일처럼 눈물겹고 가슴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오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생생하고 활기찬 희망을 일깨우는데 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자는 고난도 기꺼이 감수한다. 이것은 단지 특별한 성직자들만의 임무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임무이다.” - 위르겐 몰트만
희망의 목격자, 희망의 증거자, 희망의 선포자, 그게 바로 우리입니다. 지난 정권은 ‘운하 숭배’로 거짓과 폭력을 위장하더니, 이번 정권은 ‘화단 숭배’로 뿌리 깊은 불통과 독재근성을 위장합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폭력적인 정권이어도 한 시절이요, 주님 승천이라는 대사건 앞에선 초라하고 무력합니다.
힘냅시다. 매일 눈물겨워도, 매일 더 희망합시다. 우리에겐 일방통행, 오직 한 길뿐입니다. 눈물과 아픔 다 씻고 모든 생명의 존엄이 본래대로 회복되도록, 온 세상을 그래도 그래도 희망으로 감염시키는 것! 그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정말로 특별한 특권입니다. ‘윤창중 성추문’ 정국 속에 더 외롭고 더 고립되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 지금 이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5월 11일 강정의 고통, 눈물 http://cafe.daum.net/peacekj/GdUL/305슈퍼 울트라 갑! 성령
2013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묵상
티모르 필리아리스timor filialis, 티모르 세르빌리스timor servilis.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는 두려움을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전자는 '아이의 두려움'을, 후자는 '노예의 두려움'을 뜻합니다.
아이의 두려움이란 부모의 사랑과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해 호기심과 설레임 가득한 두려움, 부모를 더욱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두려움과 같은 것입니다. 설령 두려운 마음이 있다 해도,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는 아이는 성장하고 도전하며 세상과 관계 맺기를 즐겨합니다.
노예의 두려움은 사랑이 아닌 처벌을 기준 삼습니다. 벌 받을까 안 받을까, 얼마나 받을까로 전전긍긍 합니다. 그렇기에 무슨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걸 허용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감옥 속에 들어가 그저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 최선의 삶인 양 살아갑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노예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아이의 두려움'을 선물 받은 날입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한 가운데로 들어서셨습니다. 두려움의 문은 완전히 허물어지고,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그분의 축복만이 가득합니다.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안에는 더 이상 '갑질'이나 '노예 을' 따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를 비롯한 사도들, 제자들은 감격스럽게 고백합니다. 성령으로 인해 민족이나 인종, 문화나 계급, 언어 등등의 온갖 차별과 장벽이 녹아 내렸다!고 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하게 가르치고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공동선! 성령은 바로 '공동선'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은 서로를 하나로 만들고 섬기게 하는 초강력 접착제요, 사랑의 불꽃이며 평화의 숨결입니다.
'노예의 두려움'은 이를 외면하고 부정하며 거부합니다. '아이의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들은 두려움을 넘어서며, 기꺼이 수용하고 자기 삶으로 만들고자 헌신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바로 '아이의 두려움'이 '노예의 두려움'을 감싸고 극복하며 넘어서온 역사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은 '슈퍼 울트라 갑'입니다. 나머지는 그 누구든, 모두 예외 없이 그냥 을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비뚤어지고 폭력적인 '갑질쟁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감히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자들입니다. 사실 이들이 '노예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갑질쟁이'들을 향해 더 이상 '노예 을'로 살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든 작든, 드러나던 드러나지 않던 그런 행동들은 죄다 고귀합니다. 선하고 의롭습니다. 여러분도 그 중 한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해 고통 속에 있습니다. 특히 극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전국의 노동자들과 제주 강정주민들, 폭풍 전야의 밀양주민들을 기억하고 연대해주십사, 여러분께 청합니다. 5월 광주민주항쟁은 이 시대 민중의 삶 속에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한전사장 "밀양송전탑 공사 재개해야. 횃불 밝혀서라도 공사" 성명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0518182006955
사진. 밀양 할머니의 탄원서이 천벌을 받을 놈들!
이게 나라냐. 이게 정부냐. 이게 경찰이 할짓이고 공기업이란 놈들이 할짓이냐.
생목숨 죽이고 피눈물 흘리게 하는 전기 따위 필요없다 이놈들아. 제발 좀 그만하라 제발...
http://www.vop.co.kr/A00000636197.html
22일 오전부터 한전은 공사를 시도했고, 외부와 차단된 밀양시 부북면 127번 송전탑 공사현장에서는 칠팔순 노인들이 알몸으로 저항하다 제압을 당하고 실신한 채 끌려나오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졌다. ...삼위일체, 호모 유니버살리스
2013년 5월 26일 삼위일체 대축일 묵상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호모 유니버살리스(Homo universalis)로. 지혜로운 존재에서 우주적 존재로!
이 시대 우리는 이렇게 더욱 절절한 의식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생각할 줄 알고 지혜로운 인간에서 나아가, 더 거대하고 위대한 우주적 여정의 일부라는 분명한 자각과 책임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태적 위기, 사회적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때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첫 독서 잠언에서 '하느님의 지혜'는 "한 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움직이고 자신을 빚으신 창조주를 장엄하게 표현합니다. 우주만물, 모든 피조물의 탯줄도 예외 없이 저 영원의 시간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디 카나토는 <경이로움>에서 "모든 것은 신성하며, 모든 것은 신의 표현이고, 모든 것에 신성이 드러나 있다. 모든 것이 창조 그 자체인 사랑의 단일성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찬미하며 경축합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대축일은 바로, 온 피조물의 우주적 일체성을 드러내며 그 신비를 묵상하고 경축하는 날입니다.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나 다양하고 다채로우며, 저마다 독특하고 개별적이지만 또한 일체로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호모 유니버살리스, 즉 '우주적 인간'이고, 그래야 합니다. 바버라 허버드는 '우주적 인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 전체와 가슴으로 연결되어 자연의 더 깊고 내밀한 지능에까지 파장이 맞춰진, 스스로와 세상의 진화 발전을 위해 자기 재능을 창의적으로 발휘하라는 영의 부름에 이끌려 나온 이들."
밀양 할매 할배들, 강정 주민들이 삼위일체를 알 리 없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니 호모 유니버살리스니 하는 것들도 얼척 없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줄 알며 옳은 것을 지키는데 강직하다는 점에서 그분들은 진짜 지혜로운 인간, 진짜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또한 고향 땅을 지키겠노라 선조들에게 약속한 것에 대해,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숲과 나무, 바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식들 후손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분들은 진짜 '우주적 인간'의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성부께서는 우주 만물을 사랑으로 영원에서부터 영원으로 창조하시고, 성자께서는 온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으며,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사랑의 열정을 불어넣어 세계를 사랑으로 재창조하도록 북돋우십니다. 삼위일체 신비 속에 참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서 5,5)
우리는 호모 유니버살리스 '우주적 인간'의 길을 선택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부족한 인간에게도 희망이 있구나!, 위기의 지구에도, 야만적 사회에도 희망이 있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서 시작되어, 사랑으로 빚어지고, 사랑의 행위에 참여하도록 초대된 우리, 우리는 참으로 복됩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웃는구나. 고맙다 좋다! 참 잘들 생겼다.
살자. 사는 것이다, 지독하게. 죽은 이들조차 이젠 편안히 웃을 수 있도록.
쌍차 해고노동자들. 이들은 기계도 부품도 아니다. 사람이다 생명이다, 인간이다. 노동하고 창조하고 건설하는 이들의 존엄성이 온전히 인정받고 대접받을 날 오리라 믿으며, 오늘을 함께 기뻐합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만든 차 H-20000 베일 벗다
"조각난 해고자들의 삶을 끝마쳐주는 시간"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0564울지 마라.... 일어나라.... 다 돌려주마
2013년 6월 9일 연중 제10주일 묵상
울지 마라....
외아들을 잃은 과부의 애끓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과부를 위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울지 마라” 하심이 “눈물 뚝!” 하는 호통일리 없습니다. ‘내가 네 마음을 안다, 너와 함께 나도 운다.’... 하시는 거죠. 표현할 길 없는 깊은 상실감과 고통을 주님은 아십니다. 함께 아파하십니다.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과부의 죽은 아들에게 명하십니다. 불쌍한 젊은 생명이요, 과부 어미의 존재 자체요 존재 전부인 아들아, 일어나라 살아나라고 말입니다.
돌려주시다....
예수님께서는 살아난 젊은이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고 합니다. 과부 어미에게는 가장 귀하고 귀한 것,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물단지인 외아들. 그를 살리시고 어미 품으로 돌려주셨습니다.
재벌가 회장 장모상은 마치 '국상'이라도 난 것 같습니다. 정재계 인사들이 줄지어 조문합니다. 허나 애끓는 생목숨이 스물넷이나 세상을 뜬 쌍차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빈소는 아예 세상에 없는 듯 무시합니다. 참으로 빈약한 정신, 부끄러운 나라 수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더 분노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억울하고 힘겨운 이들의 설움과 눈물을 무엇보다 가엾이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고 애통한 이들과 함께 울어주시고, 일어나라 손 꽉 잡아주시고, 결국에는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웃음도 기쁨도 말입니다.
지난 6월 2일,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참으로 '역사적'인 전 세계 동시 성체조배를 청하셨습니다. “울지 마라”며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위로하시고, “일어나라”고 죽은 아들에게 말씀하시고, 살아난 아들을 어미에게 ‘돌려주신’ 예수님을 우리 신앙인들이 이 시대 이 세상에 증거하자고 청하신 겁니다.
교황님의 성체조배 기도지향 첫 번 째는 전 세계 교회의 일치였고, 두 번째 기도지향은 아래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실행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세상에서 아직도 종살이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 전쟁과 인신 매매, 마약 밀매, 강제 노동의 희생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또한 온갖 폭력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가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폭력에 휘둘리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실업자들과 노인들, 이주민들과 노숙자, 감옥에 갇힌 이,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교회가 기도하면서 그들 곁에 함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이 위로와 도움을 받아 희망을 얻고, 힘과 용기를 내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이번 주일 연중 제11주일 묵상은 쉬어갑니다. 6월 14일에 열린 '강정 평화의 책마을 만들기 십만대권 프로젝트 콘서트'에서 행한 짧은 격려사로 대신합니다.
<강정 책마을 십만대권 콘서트 격려사 > / 2013년 6월 14일
고맙습니다. 이렇게 다시 함께 해줘서.
슬픈 강정, 외로운 평화... 맞습니다.
강정에 십만 권 책 보내기 운동을 추진하면서 더 실감하셨다지요.
강정은 부담스럽고, 얽히기 싫고...
그러나 슬픈 것은 강정이 아니지요.
이 사회의 수준이, 사회구성원들의 수준이 슬픈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평화운동가, 영성가였던 (故) 스캇 펙 박사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이 영성이나 정신과적인 주제로 강연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군축, 무기경쟁 등을 주제로 하면 참석자가 확 떨어졌다는 거죠. 종교지도자들도 무관심하긴 마찬가지였다는 겁니다.
무기경쟁, 전쟁의 구조나 안보문제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압도당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주제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할뿐더러, 빈틈없이 고착화된 거대한 구조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뭔가 부당한 것 같지만, 결국 두려움 속에 안전한 침묵을 택하는 겁니다. 스캇 펙은 모든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침묵이라고 했어요. 특히 지식인들의 죄는 중죄이고 범죄겠지요.
그러니 여기 계신 여러분은 참으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 모든 불편하고 불온한 장벽들을 다 넘어 왔잖습니까.
'무기가 아닌 책을 들자!' '전쟁기지가 아닌 평화의 책 마을을!'
이것은 아주 놀랍고 위대한 비전입니다. 책 읽고, 사색하고, 자신과 사회를 창조, 재창조하는 것. 이것은 인간이 다른 생물종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이고, 가장 고차원의 의식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발명품 중 제일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것입니다. 그런 전쟁기지가 세워지는 마을을 책으로 도배하고, 책 마을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최고로 고결한 인간적 행위이고 꿈인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의식을 단계별로 연구한 데이빗 호킨스 박사의 분류에 따르면 폭력, 불안, 적개심, 두려움을 먹고사는 전쟁은 저차원 의식에 속합니다.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돌보고, 나누고 연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고차원입니다. 사랑과 평화는 제일 높은 의식수준을 드러냅니다.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일구고, 헌신해야 하는 의식 수준의 방향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진실로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십만대권은 십만대군으로 들립니다.
인간의 힘은 두 가지로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파워(power)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force)입니다.
파워는 긍정적 힘이고, 포스는 무력적, 강압적 힘입니다.
책은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파워입니다.
책은 시인을 만들고, 경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치유하고, 꿈꾸고, 영속하게 합니다. 책은 다양성과 창조를 춤추게 합니다.
시대가 어지러울 때, 시대를 일으키고자 할 때
현인들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읽고, 더 사색하도록 격려했습니다.
강정은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가 잡은 손 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정은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정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 세상의 평화를 이루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인내심이 좀 더 필요할 뿐입니다.
지난해부터 문인들이 강정에 책을 보냈고, 마침내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은 해군기지 찬반을 떠나 강정 아이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평화의 책 보내기는 계속될 것이고, 평화의 마을도 결국 이뤄질 것입니다.
'한 번 잘 뿌린 것은 영원히 잘 뿌린 것,' 이것이 우주의 질서입니다.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민족 비극 6.25 전쟁 발발일인 오늘,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에 문을 여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성당 제대 위 둥근 천장의 모자이크화는 북한 만수대 창작사 벽화창작단 7명의 작품이라는군요.
안보 장사꾼들 눈에는 이것이 신앙의 포기와 이적행위로 보일까요? 참회와 속죄는 화해와 일치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뤄집니다. 어떡허든 상생과 평화로 나아가야죠. 성당 세우느라 고생하셨을 신부님들과 신자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Wide Shot] 북한 인민화가가 제작 참여한 ‘참회와 속죄의 성당’ 모자이크 벽화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0594간결하고 단호하게! 예수님처럼
2013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 묵상
민주주의를 원합니까? 정의로워야 합니다.
정의를 원합니까? 불법 불의를 저지른 자들에게 항의하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원합니까? 하느님 나라를 알리십시오.
하느님 나라를 알리고자 합니까?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십시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를 알려라.” 예수님 명입니다. 간결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도 하십니다. 단호하십니다.
박근혜가 자신의 선거대책위 핵심들이 실행해온 각종 부정과 공작을 몰랐다면, 그리고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면, 결국 자신은 그들의 꼭두각시나 허수아비라고 자백하는 셈입니다. 둘 중 하나, 범죄자 아니면 허깨비가 이 나라 대통령 노릇 하고 있는 겁니다.
3.15 부정선거는 민주주의 태동기 시절에 생긴, 아날로그 수동식 선거쿠데타 시도였습니다.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과 조작 사건은 디지털 시대에 조작된 21세기형 선거쿠데타입니다. 국정원만 문제가 아닙니다. 방송, 검찰, 경찰 등 민주주의를 지키고 책임져야 할 기관들이 도리어 민주주의 파괴집단, 기득권과 탐욕에 절은 마피아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가 21세기 대한민국 맞는가? 수많은 이들이 희생과 헌신으로 세워진 민주주의 사회 맞는가? 슬프고 절망스럽습니다. ‘국정원 쿠데타’ ‘국정원 대선 개입’ 등으로 대변되는 이 범죄가 제대로 단죄되지 않으면 앞으로 이 나라에는 어떤 공정함도 정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표현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자 한다면, 낡은 세력 낡은 언어들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의를 보고도 마치 중립인척 팔짱끼고, 심판관인척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뒤돌아보지 말고, 예수님 따라 앞으로만 가야 합니다. 새날을 위해서는, 미래를 위해서는 그리 해야 합니다. 간결하고 단호해야 합니다.
금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민대회’에서 스무 살 대학생이 말했답니다.
"NLL만 청년의 피로 지킨 게 아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도 청년의 피로 이뤘다!"
- 문규현 신부 드림안녕하세요 미래에셋생명 페친 여러분~ 페북지기 인사 드립니다~ 이제 조금씩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콩닥콩닥~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네~ 바로 나무를 심는 식목일입니다! 식목일은 조선시대부터 밭을 갈고 나무를 심기에 아주 좋은 시기라고 여겨져서 1949년부터 나무심는 날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공휴일이 아니라 무척 아쉽습니다만 >_< 나무를 심는데 그치지 말고 나무를 아끼고 가꾸는데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무가 아플 때 치료를 도와주는 나무 보험도 출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D
사진 속 처럼 높은 나무 아래 산림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짠한 쩍벌남 -
→ 김정태 신부님......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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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안 믿겠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안 믿겠다"는 주장은 범죄자들이 오리발 내밀 때 쓰는 방법입니다. 재벌-언론 마저 공범입니다. 증거에는 말랑말랑한 증거(soft fact)와 딱딱한 증거(hard fact)가 있습니다. 박근혜가 "민주당은 오늘 안으로 증거 제출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랑말랑한 증거입니다. 이런 주장도 사실(fact)지만 말이기 때문에 말랑말랑한 증거라고 합니다. 물증(material evidence)은 딱딱한 증거입니다. 박근혜는 무식하거나, 무식한 척하면서 국민을 속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박근혜는 정신병자(인격파탄자)에 가깝습니다.
박정희는 정인숙, 김형욱, 장준하를 죽였습니다. 박정희는 수사받은 적도 없고, 재판 받은 적도 없습니다. 박정희가 무죄(acquittal)라면 공정한 수사를 받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형사 소송(criminal case)에서는 물증(material evidence)을 증거로 채택합니다. 형사 소송에서는 묵비권 행사가 가능합니다. 민사 소송에서는 말(증언)이나 생각도 증거로 채택합니다.
윤리 위원회는 형법, 민법 뿐 아니라 헌법과 상식까지 널리 도덕성을 따집니다. 양심을 속였느냐가 중요한 판단의 대상이 됩니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안 믿겠다"는 주장의 위험성을 알면서 고의적으로 한다면 도덕적 태만(laziness)입니다. 이중잣대(double standard)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