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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이해~/믿는이의 편지(교리백과)

분도출판사 김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

김정태님께

안녕하십니까? 분도출판사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입니다.

이제 구세주 탄생도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성탄을 잘 맞이하기 위하여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지난 3주간 동안 “임하소서 임마누엘이여” 하며 목청을 소리를 높였고, 또 고해성사로 묵은 마음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성당 마당에는, 장식을 끝낸 구유와 성탄 트리가 주님의 탄생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만 오시면 될 듯 싶습니다.

그런데 성탄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막상 성탄이 와도 우리의 마음은 기대만큼 확 달아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탄’, ‘성탄’, 하도 들어서 우리 속이 이미 꽉 차 있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에, 성탄 잔치는 분명 ‘소문난 잔치’요, ‘먹을 것도 제법 있는 잔치’인데, 잔치에 임하는 우리의 준비가 어딘가 부족한 면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성탄에 앞서 예고편이 있는데, 이를 잘 들여다보면 ‘왜? 하고많은 사람들 가운데 목동들만이 성탄의 기쁨을 누렸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 예고편이란 무어냐? 바로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장면입니다.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루카13,24-32)

늘그막에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진 사촌 엘리사벳 출산일이 서서히 다가오자 성모님이 일을 도우러 왔습니다. 성모님이 도착하여 엘리사벳에게 인사를 하자,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성모님이 회임 중이며, 성모님 태중의 아기가 온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구세주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모든 여인들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내가 참으로 엘리사벳처럼 남을 진심으로 축복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늘 남이 잘 되도록 기도하고 살지만, 그것은 나와 비교되지 않는 사람, 곧 그사람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낮아질 필요가 없는 경우에만 간절해지는 기도였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분은 친척간이었고, 두 분 모두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주님을 잉태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할 세례자 요한을 잉태했습니다.
두 분 모두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았음은 틀림없습니다마는 인간적으로 봐서 엘리사벳 안에 시기심이 생겼다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부른 배를 만지며 “내가 늘그막에 이게 무슨 짓이고?, 내가 주님의 어머니가 되었더라면...”, “이 놈의 자식, 주님의 들러리나 설 팔자가 뭐가 좋다고 발길질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탁월해야 주님의 도구가 된다는 오해입니다. 무엇이든 최고가 되어야 주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탁월하고 최고가 되어야만 주님의 도구로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사벳을 보십시오. 그는 늙은 몸으로 아이를 가졌고, 동생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모셨으며, 동생의 아이가 갈 길을 잘 준비하도록 자기 아이를 키워야 했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시기와 질투가 생겨났을 그 자리에,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축복을 쏟아부었습니다. “모든 여인들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주님의 탄생을 알리는 화려한 예고편. 이것이 엘리사벳의 역할이었습니다.
은총을 너무 크게 받아서 그저 어리둥절할 뿐 아직 기뻐하지 못하고 있던 성모 마리아. 그 때 엘리사벳의 다음과 같은 말,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바로 이 말을 듣고, 성모님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은총을 주셨는지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로 시작하는 마니피캇 노래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축복하는 사람이 그리워지는 세상입니다. 성모님은 성모님의 길이 있고, 엘리사벳은 엘리사벳의 길이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복음의 위대한 증거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엘리사벳처럼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남을 축복하는 것 분명 주님의 축복을 받을만한 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들이 더 명성을 얻고 더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오늘 나실 아기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을 축복하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에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때에 우리의 겉모습은 짐승들의 먹이통 같을지 모르겠으나, 분명 속모습은 아기 예수님의 구유가 될 것입니다.

김정태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성탄,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성탄 축하드립니다.

분도출판사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