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앙부처 기자실 통폐합 문제를 두고 언론사들과 정치권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언론사들의 논조나 정치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나라가 다시 박정희와 전두환의 암흑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시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왠지 그런 호들갑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원래 권력이란 게 그 속성상 언론을 싫어한다. ‘언론의 자유’가 어쩌고 하는 정치가들의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정치가들이 ‘언론의 자유’라고 말할 때 그 언론의 자유는 바로 제 입맛에 맞는 언론인이나 언론사의 자유만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느 권력자이든 앞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지만 뒤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못해 안달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다고 소위 언론사들이 부르짖는 ‘언론의 자유’라는 말도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언론사들이 일제히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을 때 그 자유는 솔직히 말해서 ‘언론인의 자유’ 내지 ‘언론사의 자유’이지 언론 그 자체의 자유는 아니다. ‘언론’이 정말 자유로워지면 기존의 언론인 내지 언론사의 독과점적 지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또 ‘언론인’으로서의 그들의 위선적인 권위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거대 매체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그들의 그 얄팍한 능력이 언제 탄로날지 모르잖은가?
특히 거대 언론사는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언론기관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 기존의 언론 질서가 바뀌는 것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잘 나가는 언론사들은 신문공동배달제도에 대해 삐딱하게 바라볼 뿐만 아니라 약소 언론사들에게 정부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마저 노골적으로 불편해 하며 비판한다. 그것은 그들의 독과점 체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때도 ‘언론의 자유’로 포장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아무리 엉망진창의 정권-우리의 수구 언론들은 워낙 그렇게들 바라본다-이지만 그래도 잘한 것 하나만 들라면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언론의 자유’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60년 역사상 언론사들과 언론인들이 노무현 정권에서 만큼 ‘언론의 자유’를 만끽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마 노무현에 대해 아무리 악감정을 지닌 언론인이라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이 점은 인정할 것이다.
사실 지난 4년 우리의 언론, 특히 수구언론은 ‘언론의 자유’를 넘어 위험할 정도의 방종에 빠졌다. 그들에게 대통령은 옆집 강아지보다 못했다. 아마 그들은 길게는 90여년 만에 처음 맞은 언론의 자유를 주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다 못해 쉽게 방종으로 빠져들었다 해도 당연하다. 그들이 ‘언론의 방종’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정권이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했는지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지독한 억압체제 속에서 살던 사람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것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흔히 자유와 방종을 혼동하며 방종을 자유라 생각하고 방종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또한 과거 억압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퇴행심리마저 보인다. 우리의 언론사들이 지난 4년 동안 딱 그랬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이 정권을 신물이 날 정도로 씹어댔다. 그러면서 예전 독재시절에 대한 향수병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방종은 참된 자유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방종을 대가로 치르지 않고 억압에서 자유로 바로 이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수구언론의 오늘의 무절제한 방종은 참된 자유를 위한 필연적 통과의례로 치부하면 된다.
오늘날 이 땅에서 언론의 자유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바로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언론사 사주로부터의 자유, 더 나가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언론인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런데 우리의 언론인들은 자본과 사주와 자신으로부터의 억압에는 귀와 눈과 입을 틀어막은 채 여전히 앵무새처럼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부르짖는다. 그것은 위선이고 나약한 자신에 대한 어슬픈 변명에 불과하다. 무릇 참된 언론인이라면 자본과 사주와 자신에게 예속되어 있는 자신을 돌이켜보며 그 억압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언론인은 사이비 언론인이며, 그들이 부르짖는 언론의 자유는 사이비 ‘언론의 자유’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이제 기껏 9개월여의 임기를 남겨놓고 그 동안 충실했던 언론의 자유를 때늦게 억압하려고, 아니면 지난 임기동안 당한 언론의 비판에 분풀이하기 위해 새삼 기자실을 통폐합하려 한다고 우긴다면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정말 비판 언론을 탄압하려 했으면 벌써 했지 뭐 할 일이 없어 임기가 끝나는 마당에 그런 보람 없는 일을 하겠는가? 그러니 기자실 통폐합을 언론탄압으로 몰고 가는 언론사들의 보도행태는 또 다른 ‘언론의 방종’의 일면일 뿐이다. 더욱이 그런 ‘방종’에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휩쓸려 들고 있다는 게 오히려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