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5월3일
성 필립보와 알패오의 아들 성 야고보 사도
Saint Philip & James, Apostles
Sts. Philppus et Jacobus, Ap
San Filippo Apostolo
San Giacomo il Minore Apostolo
필립보는 베싸이다에서 태어났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후에 그리스도를 따라갔다.
알패오의 아들이며 주님이 친척이었던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를 다스렸고 한 편의 서간을 썼다.
보속과 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유다인들을 신앙에로 귀의시켰다.
62년에 순교의 팔마를 얻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에 뎔두 사도 대성전을 봉헌할 때 제대 및에
필립보 성인과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565년5월1일?)고 한다.
이러한 전승 때문에 서방 교회는 두 사도의 축일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필립보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마찬가지로 베싸이다에서 태어났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요한 1,43-44 참조).
필립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
예수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는 몇몇 그리스 사람들을 위하여 중개를 맡는다(요한 12,20-22).
그리고 필립보는 무엇보다도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의 청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예수님과 필립보의 이 대화는 오늘 교회가 바치는 기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본기도, 복음 환호성,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
우리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를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주님의 형제"(♣62)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알패오의 아들과 주님의 형제를 같은 인물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야고보가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할 것이다(마르 3,18).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1고린 15,7)는 사실과,
야고보 사도가 후에 신약성서의 정경이 된 서간(야고보서)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뿐이다.
(가톨릭홈에서)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503San%20Filippo%20Apostolo%205.jpg)
Crucifixion of St Philip - LIPPI, Filippino
1502. Fresco. Strozzi Chapel,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테르툴리아누스 사제의 저서 [이단자들에 대한 규정]에서
(Cap. 20, 1-9; 21,3; 22,8-10: CCL 1,201-204)
사도들의 복음 선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이 어떤 분이며 또 과거에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려 주셨고,
당신께서 실현하시고자 오신 성부의 뜻은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때 백성들 앞에서 드러나게 전해 주셨고 또 어떤 때에는 당신 제자들에게만 따로 전해 주셨습니다.
이 제자들 중에 열두 명의 으뜸들을 뽑으시어 민족들의 스승으로 삼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성부께로 돌아가실 때 제자 중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열한 명의 제자들을 민족들에게 파견하시어
그들을 가르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도록 하셨습니다.
사도(이 명칭은 "파견된 자"를 뜻합니다.)들은 즉시 주사위를 던져
다윗의 시편에 있는 예언의 귄위에 의거하여 열두 번째 사도로 유다 대신 마티아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에 따라 기적을 행하고 담대히 말할 힘을 주시겠다는 성령의 은총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먼저 유다에서 선포했고,
그 다음 유다인들이 거부할 때 그 동일한 신앙의 가르침을 온 세계에 나아가 선포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도시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른 교회들은 신앙의 새싹과 가르침의 씨앗을 받았고 또 끊임없이 받아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 교회들은 사도들의 교회의 후예로서 사도적 교회라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물들은 그들의 기원에 종속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 교회는 수적으로 많다 해도 그들이 유래한 시원적 사도 교회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므로 모두가 시원적이고 모두가 사도입니다.
이 교회들이 서로 보여 주는 평화와 형제애와 환대가 이 일치를 표시해 줍니다.
이와 같은 것들의 기초는 동일한 신비의 유일한 전승입니다.
사도들이 가르친 것, 즉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려면
사도들이 세운 이 교회의 신앙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이 교회에서 생생한 목소리로 직접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훗날 편지를 통해서 그 신앙을 선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느날 "아직도 나는 할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더하여 "그러나 진리의 성령의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진리의 영을 통하여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기에
그들은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의 성령 강림 기사가 증명해 주듯이 주님은 이 약속을 분명히 성취하셨습니다.
(가톨릭홈에서)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19line.gif)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503Saint%20Philip.jpg)
알패오의 아들 성 야고보 사도와 성 필립보 사도
우리는 야고보에 대하여 그의 이름 외에 아는 것이 없다.
물론 예수님이 그를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의 열두 기둥 가운데 하나로 뽑으셨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야고보,
즉 클레오파의 아들이며 예수의 형제로서 나중에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고 전통적으로 야고보서의 저자라고 알려진 그 야고보는 아니다.
필립보는 베드로나 안드레아와 같이 갈릴래아의 베싸이다 출신이다.
예수님은 그를 직접 부르셨으며 이로 인해 그는 나타니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모세가 말한 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필립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는 데에 오랜 시일이 걸렸다.
한번은 예수님의 수많은 군중이 당신을 따라 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필립보에게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에 가서 사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이것은 단지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하신 말씀이었고 예수께서는 하실 일을 이미 마음 속에 작정하고 계셨다."고 요한복음 사가는 말한다.
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하고 말했다.
요한의 이야기는 필립보를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교회의 초석이 되어야 할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떠나서는 인간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과
하느님의 선물로 천상 능력의 힘을 가득히 받은 사람들의 엄청난 능력 사이에는 뚜렷한 구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경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화가 난 것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토마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른다고 불평하자 예수님은
"나는 길이다.
만약 너희가 참으로 나를 안다면 나의 아버지도 알 것이다.
너희는 이미 그분을 뵈었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필립보가 "주여,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만족하겠습니다." 하고 청하자,
예수님은 "필립보야,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필립보가 희랍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가 예수님과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몇몇 이방인 개종자들은 그에게 와서 자신들을 예수께 소개시켜 달라고 청했다.
요한 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대답은 간접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위하여 똑같이 나의 생명을 바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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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stle St Philip, Apostle St James the Less -GRECO, El
1606 Oil on canvas, 97 x 77 cm Museo del Greco, Toledo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두 사도의 기념은 옛날부터 같은 날 지내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날 천국으로 개선한 것도 아니며, 주님의 승천 후 같이 일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 갈라져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의 유골은 똑같이 지금도 로마에 안치되어 있다.
성 필립보는 성 베드로와 성 안드레아와 같이 겐네사렛 호숫가 부근에 있는 베싸이다에서 태어났다.
베드로가 주님께 부름을 받은 다음날의 일이다.
도중에서 주님을 만나 ’나를 따르라!"는 고마운 말씀을 들은 필립보는 즉시 그대로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곧 나타나엘이란 친구를 찾아가서 "우리는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 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요"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신통치 않게 말하자,
필립보는 "와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며 그를 주님께로 인도했다.
그 결과 나타나엘도 주님께 몇 마디 말씀을 듣고 즉각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믿어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성서에는 또한 필립보에 대한 기록이 두세 군데 실려져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베싸이다에서 예수께서 빵을 많게 만드신 기적을 행하시려고 할 때
주님을 다라온 수많은 군중을 보고 "이 사람들이 먹을만한 빵을 어디서 샀으면 좋을 것인가?"하고 시험하신데 대해서
그는 "2백 데나리오의 빵을 사서 조금씩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도저히 당할 수 없습니다"(요한 6, 1-15)하고 대답해 드린 것으로 보아
필립보는 세상 물정에 능란한 이였던 것을 짐작할 수 도 있고,
또 두번째로는 다음해 주님과 더불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동무 둘 셋이 찾아와서 주님을 뵙고자 했는데,
그는 혼자서 주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안드레아와 더불어 그들의 소원을 말씀드렸다는 이야기(요한 12, 20-26)이고,
최후로는 저 최후 만찬 때 성체 성사를 세운 예식이 있은 후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요한 14, 7)하신 말씀에 대해
필립보는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시면 더 바랄것이 없겠습니다";하고 말씀 드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때에 필립보는 다른 사도들과 똑같이 주님의 말씀을 납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자로이 나무라듯이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하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성 필립보 사도의 그 후의 생애와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점이 극히 적다.
전설에 따르면, 사도들이 각각 사방으로 전교를 떠났을 때 그는 그리스를 무대로 설교했고,
도미시아노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히에라 폴리스에서 대략 78년겅에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503San%20Filippo%20Apostolo%201.jpg)
The Apostle Philip - DURER, Albrecht
1516.Tempera on canvas,46 x 37 cm.Galleria degli Uffizi,Florence
또한 같이 축일로 지내는 성 야고보는 7월 25일에 지내는 야고보와는 다른 인물이다.
아버지는 알패오라 하고,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와 친척관계에 있었으므로 그도 예수와 혈통의 인연이 있었던 셈이다.
복음서에는 그에게 대해서 다만 12사도 중의 한 사람으로만 기록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전설이 있기 때문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도들보다는 비교적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져 있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생활을 해 육식과 음주를 하지 않고,
머리털이나 수염도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고, 맨발로 걸으며 긴 겉옷과 망토만 걸칠 뿐이었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기도에 몰두했으나, 유다인처럼 서서하지 않고 반드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하니다.
성서의 정신에 철저했던 그는 신전의 예식이나 그 외의 유다인의 선량한 습관을 몹시 존중하며 또한 극히 경건했으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의인 혹은 민중의 편을 드는 자로서 공경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주 예수 보다 두세 살 위였으나, 시초에 그의 제자가 된 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신임이 두터웠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친히 예루살렘의 전교를 위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에루살렘 최초의 주교가 되어 그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주예수의 말씀을 자기 스스로도 알뜰히 지키며 남에게도 올바르게 가르쳐 왔으나,
구약의 율법에 제정된 것도 동시에 준수할 필요를 느끼던 논자(論者)로서, 이교에서 개조안 이들에게도 이를 요구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첫 번째의 공의회가 열려 교황 베들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것이 필요없다는 단정을 선언하자 그는 기쁜 마음으로 이에 복종했던 것이다.
그는 언젠가 이교도들 사이에 생활하고 있는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인 사람들에게 한 통의 서한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성서에 야고보서라는 명칭으로 전해지고있다.
그 안에는 주로 선덕의 필요와 병자 성사의 제정에 관해 역설되어 있다.
성스러운 생활을 보낸 야고보는 물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으나, 한편에서 또한 그를 미워하는 원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주 예수를 박해하고 십작가에 못박은 바리사이들은 그 충실한 제자인 야고보에게도 박해를 가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 당시의 예루살렘 시장이었던 한나는 그를 돌로 쳐죽일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처형에 앞서 부활 대축일에 그는 우선 신전의 꼭대기에 끌려나와 감언이설로써 배교하기를 강요당했다.
그러나물론 그런 꾀임에 빠질 그가 아니었으므로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그를 꼭대기에서 떨어뜨리고 돌로 쳐서 참살했다.
그때 그는 고상하게도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일을 알지 못하오니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하고 원수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그를 사형에 처한 한나는 곧 시장직에서 파면되고 그의 피로 젖어진 예루살렘은 2,3년후 로마의 대군대에게 점령되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것도 야고보와 같은 의인을 박해한 이들에 대한 천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19line.gif)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503Apostle%20St%20Philip%201606%20GRECO,El%20Tloledo.jpg)
Apostle St Philip - GRECO, El
1606.Oil on canvas, 97 x 77 cm. Museo del Greco, Toledo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문장-필립보사도.0503.베사이다출신의사도.프리기아지방에서순교.bmp)
축일:5월3일
성 필립보 사도
St.PHILIP the Apostle
San Filippo Apostolo
Born:at Bethsaida, Palestine
Died:martyred c.80 at Hierapolis, Phrygia
Canonized:Pre-Congregation
Patronage:hatters, Luxembourg, pastry chefs, Uruguay
Filippo = che ama i cavalli, dal greco = that it loves the horses, from the Greek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503iconSt.%20Philip%20the%20Apostle.jpg)
필립보는 ’말(馬)의 친구’란 뜻이다.
갈릴래아의 베사이다 출신인 필립보는 아마도 세례자 요한으 제자인듯 하며, 사도들 명단에도 등재되었다.
이외에 그가 언급된 곳은 요한 복음서이다.
그는 예수로부터 직접 제자로 간택되었고, 나타나엘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중에도 그가 참석했고, 예수를 찾아온 이방인들을 예수께 소개도 하였다.
예수의 수난 직전에 그는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도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를 무대로 설교하였다고 하였고,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때 히에라폴리스에서 십자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62년에 순교의 팔마를 얻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503San%20Filippo%20Apostolo.jpg)
예수님의 첫번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요한 1,43).
베사이다 출신인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그리스식 이름과 그가 가졌던 이방인들과의 관계(요한 12,20-30)를 볼 때 헬레니즘화된 사회에 속해 있었음이 틀림없다.
4복음서중 필립보와 관련된 세 가지 사건은(요한 1,45; 6,5-7; 14,8) 여러가지로 구약의 사건을 연상케 해준다.
그는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 속에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를 목격하고자 하는 자신의 희망을 표현한다.
그는 빵과 고기의 기적(요한 6,1-15 :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참조)을
출애굽 때 광야에서의 사건(민수 11,21-23)을 통하여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또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요한 14,8) 하는 그의 소망은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주십시오"(출애 33,18)하던 모세의 소망의 재현이다.
필립보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를 당한 장소가 터어키라는 전설은 확실하지는 않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743/0503filippo.jpg)
실 언
좋은 인상을 주고 올바른 말을 하려고 애를 쓰다가 오히려 더 바보처럼 행동해서 난처해졌던 경우가 있었는가?
당신이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성 필립보를 이해할 것이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과 최후 만찬을 나누시면서 당신이 먼저 가셔서 제자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토마스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 다음 상황을 상상해 보자. 토마스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어리벙벙했을 것이다.
그래서 필립보가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해 보려고 이렇게 청한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망을 감추시지 못하고 이렇게 책망하신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필립보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경망스러운 말로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일 때가 있다.
그때는 깊은 숨을 내쉬고 자신이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자신을 용서하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자.
성 필립보도 예수님 앞에서 공공연하게 곤혹스러움을 당하였지만
성령강림 후 곳곳에 그분의 가르침을 전파함으로써 영광스럽게 되지 않았는가?
실언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졌던 적은 없는가? 버릇처럼 실언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