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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우리문화엿보기

[스크랩] 희극적 장면과 희극정신의 문제-[수전노]관극후기

부산에서 서구 고전극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많지 않다. 그런 중에도 부산시립극

단에서는 정기공연으로 서구 고전극을 많이 올리는 편이다. 부산극단의 맏형으로서 타 극단

이 선뜻 올리기 힘든 이런 작품들을 자주 공연한다는 취지는 좋아 보인다. 이번에도 28회

정기공연으로 몰리에르 작 [수전노]를 올리게 되었다. 전에 이 극단에서 한 [십이야]를 본

적이 있는 나는 이번에도 그 비슷한 성격의 극을 접하게 되었다.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공연인데, 나는 16일 공연으로 찾았다. 부산문화관 중강당 오후 4시.


3시 40분경되어 공연장으로 가보니, 관객들이 상당히 많다.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라 그런가 보다. 좌석 1층 D구역 50번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치기는 했지만 보

기에 불편한 자리는 아니다. 17-8세기 풍의 고풍스러운 문이 세 짝이 있는 상당히 호화로

운 정경. 그곳에서 엘리즈(김은희분)와 발레르(유성주분)가 애정행각을 벌인다. 배우들의 화

려하고 요란스러운 의상이 인상적이다. 연기는 다소 과장되어 있다. 희극이라 그렇겠지. 그

화려무비한 의상을 하고서 무대위를 뒹구는 모습은 상당히 아이러니컬한 즐거움을 관중들에

게 선사한다. 여기에 엘리즈의 오빠인 클레앙트(이혁우분)가 등장하는데, 그는 마리안(염지

선분)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수전노인 자기 아버지로부터 허락을 받아 낼 방안에 골몰한다.


그런데 수전노인 아르빠공(황창기분)이 등장하면서 사건이 복잡하게 엉킨다. 아르빠공은

그의 배역답게 우스꽝스러운 복색으로 등장하는데, 하필 마리안을 마음에 두고 있고, 자기

딸인 엘리즈는 돈 많은 늙은이인 앙셀므(박찬영분)와 결혼을 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러니 클레앙트는 황당해질 수 밖에.... 황당함을 겪어야 하는 남녀배우들의 연기는 그럭저럭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게다가 수전노인 자기 아버지는 돈 상자를 땅에 파묻어 놓고 그것을 지키느라고 눈에 불

을 화등잔만큼 켜고 온 집안 사람들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본다. 하인인 라플래쉬(이현주분)

는 그 와중에 곤욕을 치른다. 아마도 그의 아들인 클레앙트도 씀씀이가 대단한 모양이다.

그에 비한다면 무슨 부정한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은 아르빠공이 돈에 대해 애착을 하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그런데 연극의 각 디테일을 통해 정말 아르빠공

이 얼마만큼 수전노인지는 잘 잡히지 않는다. 단지 그가 인간을 믿지 못하고 지독한 인간

혐오증에 걸려 있음만 드러난다. 나중에 그런 아르빠공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라플래쉬는

땅에 묻어 둔 돈상자를 찾아내어 그것을 클레앙트가 받아 들고는 아르빠공 모르게 감추어

둔다. 잃어버린 돈 상자 때문에 눈이 뒤짚힌 아르빠공. 그 아르빠공에게 돈 상자를 돌려 줄

테니, 결혼허락을 해 달라고 조르는 클레앙트. 할 수 없이 결혼을 허락하면서 아르빠공은

다시 찾아낸 돈 상자를 끌어안고 “돈이 사람보다 더 정직하다”고 부르짖는 가운데 막이 내

린다.


마지막 장면에 아르빠공이 “돈이 사람보다 더 정직하다”고 부르짖는 장면은 이 연극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암시한다. 도대체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돈이 인간보다 우선인 물신주의에 대한 조롱이다. 의외로 단순해 보이는 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의 안출이 이 연극 공연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럼 그것은 어떤 식으로

드러난 것일까?


전반적으로 보아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히 과장적으로 코믹하다. 극이 희극이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같은 고전극을 하더라도 대체로 희극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 그게 시립극단

의 하나의 기질인 것 같이도 여겨진다. 사실 관객들도 어린이부터 중고생들, 성인층으로 다

양화되어 있으니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 그러는 수도 있겠다. 배우의 연기 뿐 아니라 대사

내용이 서로 상대에게 잘못 받아들여져서 서로 낭패를 당하는 것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

다. 몰리에르는 순간순간 대사의 내용이 서로 잘못 전달되고, 또 속셈은 따로 두고 겉으로

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기막힌 상황을 정말 절묘하게 잘 표현해 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

다. 예를 들어 아르빠공에게 무조건 아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발레르가 엘르즈 앞에서

아르빠공의 편을 들어야 하는 장면이라든지, 하인인 쟈크(이돈희분)가 농간을 부려 아르빠

공과 클레앙트가 서로 딴 소리를 하고 있는 장면이라든지, 아르빠공이 돈 상자를 훔쳐갔다

고 의심하는 발레르가 엘리즈를 달라고 아르빠공에게 호소하는 장면등은 인물들을 상황적

아이러니의 상태로 몰아넣고 관객들이 비실거리며 웃게 만드는 면이 아주 강했다.


그 외에 클레앙트 때문에 엉뚱하게도 마리안에게 반지를 빼앗기고는 허둥대는 아르빠공

의 모습도 코믹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한번은 마부가 되었다 또 어떤 때는 요리사가 되기

도 해야 하는 쟈크의 과장된 코믹 연기에서 아르빠공이 얼마나 지독한 수전노인지 보여주면

서 관객의 웃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이 연극의 코믹한 면은 아르빠공이 돈상자를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면서 발악을 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황창기는 관객석 뒤편에서 뛰어

들어와 온 객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거의 발광 지경에 이른다. 관객들 사이에 드러눕기도 하

고, 관객들을 보고 “웃음이 나오냐? 웃음이 나와? 너희들이 이 지경이 되어 봐라. 피똥을

싼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때는 관중들로 이것 참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는 어

정쩡한 상태에서 연신 키들거린다. 그리고 관중들을 보면서 “어이! 2층에 문 전부 닫아!! 오

늘 돈 상자 찾기 전에 여기 있는 사람들 한 사람도 집에 못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

다가 관중 한 사람을 보고 핸드폰을 빌어 달래서 경찰서를 불러 여기 문화회관에 조사를 좀

나와 달라고 떠벌이고 하는 것이 정말 관중들은 저 사람 저렇게 나오면 우리 집에 못 가는

거 아닌가고 키들기리며 생각할 정도로 리얼했다. 종국에는 돈상자를 다시 찾고는 마치 잃

어버린 자식이나 찾은 듯이 돈상자를 껴 안고 울면서, 관중들을 보고 “이제 너희들도 집에

가도 돼!”라고 울먹이며 말할 때는 또다시 관중들의 폭소가 터진다. 나중에 극이 끝나고 나

오는 자리에 관객들이 여기저기에서 “재미있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연극은 시종일관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희극적 요소로 가득했다. 그것은 마지막에 무대의 막이 내려 올 때

막 아래로 관중을 바라보려고 고개를 밑으로 빼어내고 있는 이돈희의 장난스러운 동작으로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아무리 희극이라고 하지만 정말 웃찾사처럼 관중들에게 푸짐한 웃음 보따리만 던

져주면 되는 것일까? 몰리에르의 의도가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연출자의 의도는 무

엇이었을까? 이 지점에서 나의 문제 제기가 시작된다. 그것은 이 연극이 마지막에 아르빠공

이 “돈이 인간보다 정직하다”고 부르짖으면 돈궤를 꼭 끌어안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연민에 찬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 그 희극적인 장면을 위하여 연극이 어떤 준비를

해 왔으며, 그 장면의 최종적인 의의가 무엇인지 되물어보는 작업으로 시작해야 한다. 과연

이 연극은 이 기상천외한 가치전도 현상에 대한 얼마만큼의 깊이있는 천착을 보여주는 것일

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리 큰 점수를 주지 못할 것 같다.


한 인간이 결국은 교환가치밖에 없는 금전을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자식들의

혼사도, 자신의 혼사도 전부 그런 방향으로 몰고가려고 하고, 돈 때문에 인간 모두를 의심

하게 되는 불행한 사태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불행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과연 그것을 웃어넘기고 말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차라리 우리는 저 다른 배역들이 하는 것처럼 그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차라리 아르빠공에 의해서 자행되는 인간혐오의 경향이 우리 모

두에게 있음을 우리 스스로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연극은 우리들 속에 존재하는 금전

만능주의의 그 음험한 성향을 낱낱이 까발길 수 있는 저력이 있어야 한다. 몰리에르는 신흥

부르조아지 계층 사이에서 팽배하고 있는 금전 만능주의에 대한 싸늘한 비소를 던지면서 그

러한 태도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연극은 배우들의 과장된 코믹연기와 끊임없이 드러나는 상황적 아이러니의 현

장(인물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고, 아주 우월한 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비웃는 관중의 정

황을 상상해 보라) 때문에 정작 작품이 깊숙한 상태에서 견인해야 하는 역설적 진정성을 획

득하기에는 실패한 것 같다. 작품이 마지막으로 가면서 발레르와 마리안을 앙셀므의 자식으

로 만들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연출함에 의하여 그것은 더더욱 악화된다. 이 무슨

신파조 멜로 드라마란 말인가? 도대체 전체적 극의 흐름과 별로 관계 있어 보이지 않은 이

런 장면이 들어간 이유를 모르겟다.


사실 연극적으로 보아 이 연극에 다른 문제도 많다. 나는 먼저 그 조악한 음향효과 때문

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중강당의 음향설비가 별로라는 것을 이해하기는 하겠는데, 그렇더라

도 저 우악스럽기만 한 음향을 어떻게 좀 세련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중간에 라플래쉬

가 나와 립싱크를 하는 부분도 립싱크라는 것을 그냥 대놓고 바로 하고 있어서 너무 어색했

다. 사실 조명도 그렇고, 배경음악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도무지 매끄럽지가 않다. 이런 극단

이 아닌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극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면 우리는 극의 콘텐츠를

지탱하는 모든 연극적 장치에 대해서는 과연 그게 인위적으로 존재했었는지 모를 정도로 자

연스럽고 부드럽게 연결된다. 그럴 때면 우리는 그냥 사건이 술술 풀려가는 느낌을 받게 되

고 그만큼 연극의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중간 코믹한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만 지나치게 악센트가 주어지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된 흐름으로 무엇

인가가 이어지다가 그것이 마지막에 하나의 완결된 의미로 와 닿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차

라리 아르빠공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가 그렇게 된 배경과 그의 진정한 심정, 그리고 그가

현재 얼마나 지독한 구두쇠이며, 그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빚어내고 있

는지가 좀더 철저하게 규명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이런 면은 최근에 시립극단의 연극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을 대변하는 말이다. 각 극단

은 극단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게 마련인데, 나는 사실 시립극단의 고유한 칼러가 어떤 것

인지 잘 모르겠다. 어쩐지 극의 성격이 천편일률적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무색무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너무 안일하게만 처리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게 된다. 우

리가 TV의 코메디극을 보는 것처럼 바보가 되어 멍하니 그냥 시간만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연극은 연극 나름대로의 무슨 알갱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연극을 보고 나서 그

냥 신나게 웃다 말았다라는 생각만 든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것은 없다. 극 자체의 고유한

컬러가 희미해지다 보면 희극의 경우 부분부분 희극적인 특성만 지나치게 강조되지, 총체적

인 희극정신을 극 속에서 구현하기가 불가능해진다. 부분부분으로 보아 배우들의 연기는 비

교적 좋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 전체에서 무언가 의의있는 실체를 잡아내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도 여전하다.


[십이야]를 보고 난 뒤 시립극단에서 보게 된 연극인데, [십이야]를 볼 당시에도 내 느

낌은 그러했다. 그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후기 쓰기를 포기했었는데, 이

번에는 무식하나마 내 감상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후기를 작성했다. 부산을 대표하

는 극단으로서 시립극단이 자기 고유의 컬러를 지니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이 후기를 닫

는다.

우리 부산의 시립극단을 사랑하는 부산시민 김형민
출처 : [뮤클 부산] 뮤지컬 클래식 공연
글쓴이 : 외로운 봉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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