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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방~/사진과 함께...

(펌)왕의남자..영화가 줄 수 있는 미덕과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이시대 최고의 영화

<또제 님의 글>

 

내게 있어 영화는 꿈을 꾸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혹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든, 아님 이미 포기 해 버린 꿈이라 할 지라도 말입니다..

2005년 겨울 만난 이 낯선 이름의 영화는 제목 부터 나를 꿈꾸게 하였으며

이제 놓아 버린 소중한 것들을 새삼 돌아 보게 하는 영화가 가진 몇가지 미덕을 고스란히 살려준 참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이미 1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짚어 본다는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것입니다..

지금도 눈 감으면 고스란히 펼쳐지는 영상들은 그 절제의 아름다움과 너무 아름다와서 오히려 슬픈

인간에 대한 끊임 없는 이해와 소통의 장으로 나를 다시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장면만 꼽으라는 건 너무 힘든 일이기에 많은 장면 중에서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장면들을

추려 보았습니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꼭두쇠의 횡포에 도망을 친 장생과 공길.

앞길 모르는 장래와 사람을 죽였다는 최책감에 괴로워 하는 공길을 위해

장생이 한 것은 소경 놀이.

잘 될거야 라는 뜬금 없는 위로보다.

그 놀이 속의 대사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라는 말처럼 위로가 되는 말이 또 있을까요.

어디엘 가더라도 나를 알아 주는 너.그런 두 사람이 함께 하기에

어떤 길을 가도 두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

 

<공길과 연산. 그 비극의 시작>

 

궁궐에서 목숨을 담보로 광대 놀이를 하게 된 공길과 장생.

왕을 웃기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싸늘한 왕을 웃게 한건 공길의 기지였습니다.

한참을 공길을 바라 보던 왕은 이내 광대들을 궁에 들이기로 결정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목숨을 건지게 된 둘의 첫 만남이 결국 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시작이 되었으리라곤 이때만큼은 몰랐을 것입니다.

 

<놀자!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연산..그리고 그런 연산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공길>

 

몇개인가의 문을 지나 연산의 처소로 부름은 받은 공길.

이 장면은 영화 마지막 연회를 열자고 처선을 부르는 연산의 공허한 울림과 연결지어지는 듯한 모습이어서 더 여운이 남습니다....

연산은 공길에게 다짜고짜 놀자고 하고 공길은 그런 연산에게 인형 놀이를 보여 줍니다.

공길의 미소와 마음을 연듯한 연산의 투박한 미소가 참 잘 어우러지는 따뜻한 장면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왕..그 눈물을 닦아주던 공길의 손>

 

아마도 공길이 보호를 받던 입장에서 누군가를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된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왕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 공길이 그 옆을 쉽게 떠나지 못하리라는 암시와도 같은 장면.

결국 연산.공길,장생.세 사람의 운명적인 얽힘이 쉽게 풀리지 못하리라는 장면일것입니다.

왕의 눈물과 그 눈물을 닦아주던 공길의 표정이 참 고와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극중극.화려한 비극의 시작>

 

영화는 화려함과 장엄함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경극을 마지막으로 궁을 떠나려던 장생과 공길.

그러나 이 공연은 그들의 앞길도 파란으로 몰아가게 되고....

무엇보다 화려한 의상과. 광기어린 연산의 연기가 잠시도 눈을 뗄수 없게 만들던 장면이었습니다.

 

<어느 잡놈이 그 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이미 공길에게도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 걸 알게 된 장생이 그 마음 떠남을 안타까워하며 흘러내린 공길의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 주는 장면은 많은 말보다 장생의 마음이 어떠한지 잘 드러낸 장면입니다.

또한 그 곁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공길..

두 사람의 갈등이 드러나지 않게 보여지던 서러운 밤..

 

<시위를 떠난 활..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연산의 허탈함과 분노>

 

영화는 걷 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파국으로 치닫고 설마 자신을 겨누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공길의

활이 시위를 떠난 순간.

이젠 그들도 팽팽하게 이어져 오던 인간적인 관계마저 끊어진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마음 둘데 없는 연산의 허탈함과 분노.

영화를 통해 마치 줄위를 걷는 듯  긴박하고 아슬아슬 했던 공길의 분노인 듯 연민인 듯 알 수 없던

눈물이 가득차 떨리던... 활쏘기..그리고 연산의 입맞춤.

 

<가지마!>

 

 

줄로 대변되는 그들의 인연을 끊으려고 하는 자와 말리려는 자.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연을 끊을 순 없었습니다. 장생 자신조차도..

 

<내가썼소!>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었습니다.

영화의 전반부에 기가 막힌 복선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공길에게 글을 배운 장생.그러다 보니 필체까지 같아지고....

한 눈에 봐도 누명을 쓰고 극형을 받을 상황.

호탕하게 웃어제낀 장생이 내뱉은 말

내가 썼소!

자신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주저 없이 내뱉은 그의 말과 붓을 쥔 손의 작은 떨림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공길을 지킬수 없을까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요....

 

<난 잃을게 아무것도 없다...차라리 저를 베십시오..>

 

죽음을 앞에 둔 장생은 왕보다 더한 위엄으로 장담을 하고 그런 그를 위해 대신 죽고자 하는 공길.

이미 자신은 공길을 가질 수 없는데 대한 분노였을까.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왕 같은 광대 장생의 눈을 빼앗아 버립니다.

 

<미안해..그 금붙이 내가 훔쳤어... 아래를 보지마...줄 위는 허공이야...반 허공>

 

감옥에서 매일 소경놀이를 했는데 막상 장님이 됐는데 소경 놀이를 못 하는게 억울하다며

잘 할 수 있었는데 말이요..라고 자조 섞인 웃음을 웃던 장생을 쳐다 보던 공길은 연산 앞에서 마지막

인형 놀이를 합니다.

결국 자신을 알아주던 단 한 사람을 잃는 슬픔을 가눌 수 없는 공길은 자해를 하고

그 앞에서 연산은 "왜~~~~~~~"라는 외마디 외침을 지를 뿐입니다.

이 장면에서 공길은 섬뜩하만치 모든 걸 다 잃고 살아 갈 의지마저 없는 슬픈 인형같은 모습에 감정 없는

대사가 정말 반 허공에 있는 사람 처럼.위태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어 감탄할 따름입니다.

어쩜 우리 모두 반 허공에 있는 건 아닐까요.....

 

<허무하고 쓸쓸해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왕의 뒷 모습>

 

모든 걸 다 가진 무소불위 의 왕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천한 광대는 가졌습니다.

그건 이미 사랑을 떠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서로를 알아주는 소통의미학.

그리고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사람...

그 ..사람 ..당신도 가졌는가......

 

공길의 처소를 나와 다시 녹수에게로 가는 연산이 문 창살을 훑고 가는 장면은

그야 말로 전율이 일 정도의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야! 이 잡놈아!>

 

눈을 잃고 공길마저 잃었다 생각하는 장생에게 그들의 언어인 잡놈을 부르짖으며 공길이 달려 나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생.줄 위에 올라서 나 여기 있다고 줄을 퉁겨 울림을 전달해 주는 공길.

희미하게 미소 짓던 장생.

아마 이렇게 아름답고 처연한 장면은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은 줄 위에서 다시 서로의 잡놈이 되어 다시 소중한 끈을 맞잡았으니..

 

<나야,두 말 할 것 없이 광대 광대지! /그래,징한 놈의 세상 한 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광대로 태어나 제대로 한번 맞춰보자!>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겠다는 공길과 한판 신나게 놀다가는 인생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장생.

그들은 그렇게 하늘로 날아 오르고 그런 그들을 하염없이 쳐다 보는 연산.

영화는 그렇게 정지 화면으로 끝이 납니다.

영화가 줄 수 있는 여운과 함축적인 이야기를 담고서....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영화가 끝나도 한참 자리를 뜰 수 없던 이유는 이 에필로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이는 광대들..

그것이 저승길이라 하더라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하는 말들이 그저 말이 아닌...

 

나를 알아 주는 사람으로 인한 고마움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했던가요..

이 영화의 끝장면이 주는 여운은 도저히 이 미천한 필력으로 다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