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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기독교를 접한 것은 1970년대 고등학생 시절.... 엄마의 친구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기 때문이었다. 그 아줌마의 끈질긴 전도로... 언니와 나는 반강제로... 예의상... 교리반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엄마는 고모의 제안으로 가끔씩 절에 다니기는 하지만... 특별히 선택한 종교가 없었으며, 기독교는 좀 싫어하신 편이었다. 아버지와 짝짝꿍이 되셔서 기독교인들을 <예수쟁이> <말이 많은 인간들>이라고 흉을 보시면서... 멀리하는 입장이었으나.....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우리를 새신자 교리반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그런데 교리 중... 수녀님이 “부처는 마귀”라고 하지 않는가? 불교 신자인 할머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나는 거부감이 확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이건 정말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 수녀님에게 질문을 하다가 그만.... 나도 화가 나서 대드는 수준으로 어긋나 버렸고...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수녀님께서 ‘너는 교리에 나오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쫓겨나게 되었다. 지금은 천주교에서 이렇게 교리를 배워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 오히려 “타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라는 교리로 개신교 쪽에서 이단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때 받은 영향으로 기독교는 나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흥? 지들만 옳은 것이야? 니들은 천사고 나머지는 다 마귀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좀 거리를 두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학창시절 일요일에 등산대회나 MT 등등... 가게 되면 교회에 나가야 되서 못 간다는 남자동창이 있었다. 속으로 비웃었다. “젊은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종교에 저토록 매달릴까? 내 힘으로 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데...”하면서... 종교에 대한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아쉬워서.. 뭔가 기댈 곳을 찾아서 나가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1986년 겨울.... 평소에 정말 진국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젊은이를 통해서 전도를 받았다. 서울의 대형교회에 다니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는데.... 한 6개월을 지도하면서... 그 선함과 진실함에 믿음을 갖게 된 학생이었다. 그 학생을 신뢰하다가 보니까..... 그 학생이 말하는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도 한번 알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교회란 곳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고... 두어 달 다니는 동안... 예수님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교회는 나와는 성격이 너무 다르게 소란스러웠다. 박수치고.. 아멘이라고 외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신자들이 쭉 줄서서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고... 어느 날은 그 학생의 권유로 나도 얼떨결에 나가서 줄을 섰고 내 차례가 왔다. 목사님께서 나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라고 하시면서 내 눈을 막 무섭게 뚫어지게 보셨다. 다른 사람들은 막 픽픽 쓰러지는데.... 나는 믿음이 부족했는지... 쓰러지지 않았다.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더 윽박지르는 목소리로 크게 ‘ 귀신아 물러가라’라고 외치셨다. 좀 시간이 지체되니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고 빨리 끝내고 싶어서 쓰러지는 척을 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얼마나 우습던지... 하여간 귀신론을 강조하는...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교회 가는 것이 부담이 되고...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얼이 쑥 빠져서...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곳의 작은 교회는 그렇지 않겠지 하고 옮겨서 다니고자 했다. 하지만 그 작은 교회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은... 그 동네 구역사람들의 간섭이 지나쳤다. 그 당시 큰 아이가 막 뱃속에 있을 때였는데.... 직장에 다니는 나는 집에 와서 저녁 해먹고 나면 자고만 싶었다. 하지만 나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거절을 해도 기도하러 온다고 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기를 요구하였다. 나는 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성격이 “나홀로 형”이라서 지나친 간섭도 싫어하고... 나도 남에게 간섭도 잘 않는 형이다. 한마디로 “인생은 홀로 가는 거지..” 하는 스타일이니 오죽 괴로웠겠는가? 내가 예배도 좀 빠지고 쌀쌀해지자... 다음으로 계속 미뤘던 목사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기도를 해주신다고 하셨다. 기도를 마치고 준비한 다과를 드시고 가시려고 하는데... 한 분이 봉투를 준비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뭐냐고 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시면 감사헌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기도 수고비....’ 그 당시 나는 사는 것이 여유가 없었으므로 지갑에 돈도 거의 없었다.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그 이후로 그 작은 교회에 철판 깔고... 냉정하게 발을 싹 끊었다. 그러고 나니... 뭔가 께름칙했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간섭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 동네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정도 되는 그 지역의 좀 조용해 보이는 큰 교회에 나갔다. 거기서는 나를 전혀 모르니까... 내가 오는지 가는지... 간섭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내 의도대로 간섭을 받지 않고 조용히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거기 목사님은 허구한 날 헌금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각 구역별로 헌금액수 막대그래프 같은 것도 복도 한 쪽에 전시해놓았다. 돈 이야기에 질려서... 몇 번 다니다가.... 그 이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누가 교회소리만 해도 고개가 절로 꼬아졌다. 하지만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저기.. 무언가가 계신데...” “ 확실히 잘 모르지만... 주님이 나에게 뭔가를 주셨는데....” 라는 것이었다. 교회를 멀리한 지 10년이 지난 후 1997년에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았다. 우선은 1992년... 나보다 먼저 영세를 받으신 엄마의 기도가 가장 큰 힘이 되었겠지만.... 업무적으로 만난 수녀님들이 나에게 굉장히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는 죽었다 깨나도... 저렇게까지는 할 수 없을 거라고 보이는... 수녀님들의 장애우들에 대한 애정과 헌신적인 태도 는 깊은 감명을 주어 예전에 내가 가졌던 수녀님에 대한 편협한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또한... 다른 모든 육아시설에서는 나이가 많다면서... 처리가 복잡하다면서... 받아주지 않은 소위 골치 아픈 아이들도 “얘들 거두라고 우리가 일하는데요... ”하시면서 선뜻 거두어 주시는 모보육원 원장수녀님을 보면서 결심했다. 같은 예수님을 믿는 건데.... 언젠가 다시 예수님을 찾게 된다면 천주교를 택하겠다고....... 그렇게 결심하고도 이리 뺀들 저리 뺀들대다가... 5년도 더 지난 담에 영세를 받기는 했지만.... 영세 받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다. 교우들도 소박하고 비교적 점잖은 편이며... 누구도 나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거나...요구를 하는 사람도 없고... 이리 와라 저리 가라 하는 사람도 없고... 헌금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올해는 내 스스로 성가대에 들어가면서.... 영세 받은지 9년 만에 견진성사도 받고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어떤 집단에게서는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하여 북한 동포를 꾸준히 돕고 있는 천주교...... 살벌한 북핵의 와중에도 용감하게 평화적인 해결을 바란다는 성명서를 내준 천주교...... 헌신봉헌운동을 벌여서 이 세상에 부족하나마 남에게 도움이 되는 육체를 두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각성시켜준 천주교...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한다는 사형제폐지 서명을 대대적으로 벌여 인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주고자 노력하는 내 종교 천주교가 자랑스럽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불교계 수도자들과 함께 어울려 명상하고 웃으면서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천주교... 조선일보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에게 알려주신 복음인 정의와 평화, 진실과 나눔의 세상과는 가장 대척점에 있다고 과감히 외치시는 문규현, 신상국 신부님이 계시는 천주교... 전도보다는 자신의 신앙과 남에 대한 선행과 나눔을 강조하는 보편적인 천주교를 택한 것이 얼마나 잘했나 하고 생각한다. 오늘 한겨레 기사를 보니.. 사람들이 가톨릭에 호감을 갖는 이유로 가톨릭 성직자들의 △청렴성 △정의와 인권활동 △조상 제사와 장례 예식에 대한 유연한 태도 △타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 등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도 이런 주장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천주교는 위와 같은 모습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보였으면 하고 바래본다. 특히... 탐욕과 불의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한국의 실정에서 정의와 인권을 여러 영역에서 외쳐주는 그런 종교로 우리의 앞길을 비춰주었으면 한다. 내가 계속 교회에 다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 시청 앞 광장... 구국기도회에 나가서 손을 하늘로 뻗히고 울면서 기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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