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사목’ 이라는 웃지 못 할 말이 있다.
술이 세지 못한 나로서는
술을 마셔야 하는 일이 늘 즐겁지만은 않다.
그날도 사목회 형제들과 술을 마셔야 할 자리가 있었는데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몸이 축축 늘어졌다.
사제관에 들어오니 씻는 것도 귀찮아 그냥 곯아 떨어졌다.
전화벨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니나 다를까 병자성사를 청하는 위급한 전화였다.
구멍가게 앞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성체를 모시고 부리나케
운전해 갔다. 방안에 들어가 보니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할아버지는 임종 직전이었다.
정성껏 병자성사를 드리고 나니 졸였던 마음이 놓였다.
그제야 잔뜩 술에 취해 잠들었던 기억이 났다.
시계를 보니 잠든 지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음주운전에 음주성사까지 저지른 것이다.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는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혹시 술 냄새 안나나요?”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했다.
‘이럴 수가 없는데, 정신도 몸도 말짱하다니…….’
하여간 그 할아버지는 바로 임종하셨고 내가 장례미사도 드렸다.
병사성사 때 처음 만났지만 그분 안드레아가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잊을 수도 없다.
옛 신부들은 본당 관할구역을 떠나지 않으셨다.
전화도 없고 자가용도 없던 그 시절에 ‘종부 났다’ 는 연락이
오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리로 달려가야 했을 테니까…….
연로한 할머니들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고쟁이 속에 늘 종부 전을 넣고 다녔다고 한다.
임종에 처한 자기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온 신부에게
성사예물과 미사예물로 드리기 위해서였다.
우리 선조들은 죽음을 잘 준비하셨던 것 같다.
어느 때부터인가 돌아가신 본당교우들을 위해 미사를 드리고
싶었다. 살아서 나에게 맡겨진 교우이니 죽어서도 책임을
져야겠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병자성사를 놓치면서 생긴
죄책감을 그렇게라도 보속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 자신과 가족,
이웃의 구원을 위해 두려운 마음으로 힘써야 하는 사제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문은 좁은 문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만일 쉽게 하늘에 오를 수 있다면
종부전이니, 병자성사니, 연미사니 다 소용없는 일이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내 육신을 떠나 하늘나라로 올라가야 한다.
닭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늘을 날아오를 수 없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아주 가뿐하게 날아오르기 위해
나의 삶을 자유롭게 가꾸어가련다.
이재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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