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성품을 지닌 사람인가?
뉴욕 법원의 배심원실에 12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재판 심리가 끝나 유무죄 배심 평결을 하기 위해서였다.
빈민가에 사는 18세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었는데 이는 1급
살인이어서 유죄 평결이 날 경우 사형 판결이 선고될 것이 명백했다.
배심원들은 6일 동안 진행된 재판에 지친 데다가, 더위마저 심해 짜
증이 나 있었다. 몇몇 배심원들은 유죄가 명백하므로 빨리 평결을 끝
내자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이 사건에는 유죄로 보이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다. 범행 장면을 직접
보았다는 여인과 범행 직후 소년이 도망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노인
의 증언이었다. 즉시 평결 투표를 했는데, 예상 밖으로 무죄 의견이
한 표 나왔다. 그 배심원은 위 증언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며 의견
을 굽히지 않자 조용히 듣던 한 노인이 그의 편에 섰다.
한 사람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상, 그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볼 필요
가 있다는 것이다.막상 논의가 시작되자 토론이 격렬해지면서 배심원
들이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노인의 집 구조나, 여인의 시력 상태에 비추어 그들이 범인을 잘못
보았을 가능성이 있음이 드러났다. 결국 두 증언이 모두 의심스럽다
는 이유로 처음과 반대로 무죄 평결에 도달했다.
이 상은 법정 영화의 최고 작으로 꼽히는 <12인의 성난 사람들>줄
거리다. 며칠 전 우연히 이 영화를 보았다. 고등학교 때 텔레비전에
서 처음 보고 감동해 밤에 마당을 빙빙 돌면서 법률가가 되기로 마음
먹던 일이 생각났다. 37년 만에 다시 본 셈인데, 이번에도 역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다만 그 감동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증거에
관한 논리 전개와 토론의 묘미에 빠졌었는데, 이번에는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배심원들의 인간적인 품성과 태도에 더 마음이 갔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앞에 놓고 이에 임하는 태도가 사람
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인간성의 약점과 선한 점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데 영화의 묘미가 있
다.
처음부터 무조건 유죄를 주장한 배심원들은 인간의 전형적인 약점
몇 가지를 보여 준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소년에게 범죄 경력이 여럿 있다는 이유
만으로 그를 범인으로 단정한다. ‘상습범은 거짓말쟁이고 쓰레기다’
라는 편견을 갖고 있어서 증거의 의심스러운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심리적 충동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사람도 있다.
소년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강한 증오심을 보인 한 배심원은 결국 가
출한 아들에 대한 분노가 소년에게 투사된 것임이 드러난다.
숨겨진 분노가 판단력을 마비시킨 셈이다.
야구 경기 시간에 늦을까 봐 대충 유죄로 평결하자고 재촉하는 야구
광. 그에게는 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전혀 없다. 다른 배심원으로
부터 “생명을 야구처럼 갖고 놀 거요?”라는 질책을 받고 서야 잠잠해
진다. 아주 경박한 사람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의견만 쫓으며 유, 무죄 사이를 갈팡질팡
한다.
반면에 홀로 무죄를 주장한 사람과 그를 처음 지지했던 노인은 최고
의 책임감과 관용의 지혜를 보여 준다. 나머지 사람들도 소수자의 의
견을 경청하고 이해하며 공정하게 판단하려 애쓴다. 날카로운 논리로
끝까지 유죄를 주장하던 한 배심원은 자기주장에서 모순점이 지적
되자 그 순간 흔쾌히 의견을 바꾼다.
이렇듯 최선을 다해 공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정말 큰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배심재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가정, 학교,직장 등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도 똑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자기만 옳다면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고 분쟁을 악화시킨다.
재판하면서 이런 사람을 많이 보는데, 이들은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
고 있는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형상이며 우
리 자신은 그중 어느 한 사람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자신에게 타인에 대한 편견, 분노, 무책임, 경박함이 없는지 또 지혜
와 관용, 공정함의 덕목이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
까.
나의 품성 하나가 자신과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 윤 재윤 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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