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나해: 8월27일) 강론 | |
작성자 | 유영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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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21주일(나해); 여호24,1-2ㄱ.15-17.18ㄴ; 에페5,21-32; 요한6,60-69 =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 묵상길잡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복음서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질문은 모든 신앙인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 모두 "예수, 그분은 나에게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봐야... 1. 예수를 떠나는 사람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많은 이들이 못마땅해 하며 예수를 떠나간다.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니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었겠는가?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어렵게 마치고 영세를 한다. 그리고 한동안 열심히 다닌다. 그런데 차츰 신앙생활이 짐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가 집안에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을 다치거나, 사소한 차량 접촉사고라도 나면 "성당에 나갔더니 궂은 일만 생긴다."며 성당에 발길을 딱 끊는 것이 보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하느님을 믿으면 만사가 형통(亨通)하고 부귀와 영화가 굴러 들어올 것을 기대한다. 실제로 시중에는 "우리 교를 믿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세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공공연히 선전하는 갖가지 종교들이 판을 친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참으로 어이없게도 거기에 혹(惑)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하느님과 거래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철저히 세속적이고 계산적이고 육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당에 들어서면 어떤가? 어느 성당에나 항상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모셔놓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신 그 분의 말씀을 가르친다. 성당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기대와 구미에 너무나 맞지 않고 듣기에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떠나는 것이다. 일찍이 사도 바오로께서도 코린토 신자들에게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1고린1,22-23)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속적인 기복(祈福)신앙에 영합한다든지 하느님과 거래를 하는 그런 신앙을 선전하며 십자가를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발길에 밟힐 뿐임을 알아야 한다. 2.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빵의 기적을 보고 몰려왔던 사람들이 못마땅해 하며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겠느냐?"하시며 결단을 촉구하신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6,68-69)하고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는 고백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바로 예수 그분이 유다인들이 조상 대대로 기다리던 '메시아, 구세주'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를 구세주로, 메시아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삶 안에 진정한 자유로움과 참 행복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내 삶의 중심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디아 2:20)하신 바오로 사도처럼 내 삶의 구석구석에 그분의 뜻이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다. 3.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한 신자가 고해소에서 "아들 입시를 앞두고 하도 마음이 답답해서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봤습니다."하고 죄를 고백하였다. 신부님은 "누가 당신을 '강아지 보다 못한 사람이다.'고 하면 당신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신자는 "그것은 큰 모독이지요"하고 대답한다. "당신이 답답하다고 점쟁이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하느님보다는 점쟁이를 더 믿은 것이니, 당신을 '강아지보다 못하다.'고 말한 사람보다 당신은 하느님을 더 모독한 것입니다."하고 훈계하였다. 나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믿는 믿음이 있는가? 예수 그분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데 참 행복이 있음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예수와 세상 것을 서로 저울질하며 손익계산을 하고 사는가? 우리는 돈을 위해서, 재미와 쾌락을 위해서,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얼마나 자주 예수를 떠났던가? 양다리를 걸치는 어정쩡한 모습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내 인생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께 의지해 살겠다는 인격적인 결단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미사 중에 우리가 주님을 외면하고 떠났던 우리의 허물을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자. 그리고 삶의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다 떠 안고 갈 수 있는 큰 믿음을 구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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