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토니오의 생각~/우리역사 바로알기

[문재인의 운명] -주요내용 보기

출처 : "사람사는세상"  


[문재인의 운명] Ⅰ. 서거 전후

 


 


■ 노 대통령 시신 참혹…유족 충격 고려 사전 수습,
사실상 현장에서 서거…‘09:30’은 법률적 시점


병원에 도착했다. 마중 나와 있는 문용욱 비서관의 표정이 참담했다.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대통령님은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특실에 모셔져 있었다. 얼마나 안 좋은 상태인지 눈으로 봐야 했다. 병실에 들어섰다. 눈을 감고 말았다.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처참한 모습이었다.

의료진들이 사실대로 알려줬다. 인공심장박동으로 연명하고 있어 신호가 잡히는 것이라 했다. 장치만 제거하면 신호는 바로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의사가 더 분명하게 말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의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고, 중간에 들렀던 ‘세영병원’ 소견도 같다고 했다. 대통령님 상태로 보면, 사고현장에서 바로 돌아가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인공 심장박동 장치는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처치를 다해주길 바랄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붙여놓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여사님이 오시면 전혀 가망 없는 상태라는 걸 말씀드리고 동의를 받아 인공연명장치를 제거해야 합니다. 저희가 말씀드리기가 어려우니, 실장님이 먼저 좀 말씀해 주십시오.”

곧 도착하실 여사님께 대통령님 모습을 어떻게 보여드릴 것인지가 먼저 걱정됐다. 의료진에게 그 걱정을 말했다. 그들도 공감했다. 의료진들은 얼마 후 도착한 여사님을 기다리게 하면서, 황급히 손을 써 줬다. 여기저기 찢어진 부분을 모두 봉합하고 피도 깨끗이 닦아냈다. 시신을 어느 정도 수습하기 전, 참혹했던 모습 그대로를 본 건 경호관과 문용욱 비서관과 나 밖에 없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여사님이, 의료진의 연락을 받고 겨우 부축을 받아 대통령님을 만났다. 거짓말처럼 깨끗한 모습이었다. 얼굴에 아무 상처가 없었다. 표정이 온화하기까지 했다. 여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서도 실신을 했다. 불과 두 세 시간 전까지 함께 있던 남편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여사님에게 상황을 사실대로 설명 드리는 것이었다. 여사님은 그냥 ‘산에서 떨어지셨는데 좀 위급하다’ 정도로만 알고 달려오셨다. ‘세영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어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라는 짐작만 하고 계셨다. 비서들이 차마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었다.

사실을 말씀드렸다.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리셨다고. 못 믿으셨다. 유서를 보여드렸다. 여사님은 그대로 허물어져 내렸다. 어려운 말씀을 드려야 했다. ‘인공심장박동 장치에 의존하고 있을 뿐, 의학적으로는 이미 돌아가신 것이다, 전혀 가망이 없다고 한다, 인공연명 장치를 이제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여사님이 결심하셔야 한다, 그냥 가시도록 놓아드리자…. 의료진도 확인을 해줬다.

여사님의 오열과 통곡 앞에서 나도 나를 가누기 어려웠다. 고통스런 일이었다. 실신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던 여사님께서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하신 후에 동의를 했다. 인공심장 박동기를 제거했다.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30분이었다. 그 분을 떠나보냈다.


■ 유서 첫 문장 나중에 추가…마지막 순간에도 글 손질

유서를 처음 본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 나를 못 견디게 했던 건, 이분이 ‘유서를 언제부터 머리에 담고 계셨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다듬을 수 있는 글이 아니므로, 대통령은 아무도 몰래 머리속에서 유서를 다듬었을 것이다.

첫 문장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나머지 글을 모두 컴퓨터에 입력한 후 추가로 집어넣었다. 그답게 마지막 순간에도, 입력한 유서를 읽어보고 다시 손을 본 것이다. 대통령이 마지막 얼마동안 머리속에 유서를 담고 사셨으리라는 생각이 지금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홈페이지에 “여러분은 나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려도 나는 대통령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 고독했던 마지막 며칠…비서들에겐 혼자만의 눈인사

그분이 혼자만의 고통스럽고 고독한 시간을 가지며 마지막 결심을 굳힐 때까지 나를 포함해 누구도 함께 있어드리지 못했다.

나중에야 들었다. 서거 직전 마지막 주말을 혼자 지내셨다.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했던 <진보의 미래> 책 저술도 포기했다. 5월19일 오전에 함께 저술 작업을 했던 윤태영, 양정철 비서관 등에게도 그 동안 고생했다며 모든 일을 놓았다. 여러 사람을 만난 게 그게 마지막이었다. 21일 저녁 동네에 사는 친구 이재우 조합장이 잠시 들른 걸 제외하면 19일 오후부터 23일 새벽까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으셨다. 전날, 사저 안에 비서관들이 있는 공간으로 직접 담배를 가지러 잠시 들르셨다. 마치 마지막 작별이라도 하듯 그들을 한동안 물끄러미 보시곤 아무 말씀도 없이 나가셨다. 그리고 23일 새벽 집을 나서, 그 먼 길을 떠나셨다.

▶[주요 내용 보기 1] 서거 전후
[주요 내용 보기 2] 수사 전후
[주요 내용 보기 3] 참여정부 비화
[주요 내용 보기 4] 개인 스토리
[주요 내용 보기 5] 회고와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