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엠마오로 가는길~/가볼만한 곳

[스크랩] "마음까지 풍요롭게 하는 `어머니 산` "

 

 


[길에서 나를 찾다](4) 지리산 둘레길


 

▲ 아늑한 지리산 품에 안겨 있는 작은형제회 은둔소. 수도자들이 홀로 머물며 기도하는 곳이다.


   "여길 어떻게?"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은둔소에 들어서자 김재원(프란치스코) 수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간간이 내리는 장맛비를 맞으며 산길을 걸어온 터라 옷에서는 쉰내가 진동한다.

 사람들 발길이 잦은 지리산 둘레길 5개 구간을 놔두고, 경남 하동군 청학면 심곡 입구(중이리)에서 악양면 상중마을로 넘어가는 12㎞ 고갯길을 택한 이유는 배티재 아래에 '꼭꼭' 숨어 있는 작은형제회 은둔소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은둔소의 고요와 침묵을 깬 불청객임에도 수사 3명이 반갑게 맞아준다. 산골 생활 3년째라는 김 프란치스코 수사는 수염까지 길게 기른 게 영락없이 지리산 산신령이다.

 은둔소에는 비닐하우스 경당과 작은 집 한 채, 그리고 푸성귀 심어놓은 텃밭이 전부다. 전깃불도 없다. 도시에서는 전기가 30분만 끊겨도 난리가 나는데….

 "여름에는 좀 따뜻하게 지내고, 겨울에는 좀 시원하게 지내면 살 만해요. 요즘 같은 날씨에는 냉장고가 없어 불편하지만 대신 겨울에는 사방천지가 냉장고지요. 현대인은 석유를 먹고 사는 화석연료 중독자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여름을 시원하게,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느라 후대와 나눠 써야 할 화석연료를 펑펑 쓰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도 보속하는 마음으로 가난하게 살아야지요."

 김 프란치스코 수사는 "쌓아두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쓰며 사는 게 가난한 삶"이라고 말한다. 기자의 눈에 수사들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자연을 파괴하는 물질문명사회를 향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은둔소에 들어서면 한 수사가 깍아 만든 장승이 크게 웃으며 인사한다. "평화를 빕니다"
▲ 지리산 둘레길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둘레길 굽이굽이에서 잃어버린 고향 풍경과 점점 메말라가는 인정을 만날 수 있다.


 이곳 은둔소는 어떻게 보면 현대판 광야다. 먼 옛날, 교부들은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세상에서 벗어나 홀로 머물며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광야에 들어가곤 했다.

 고독과 침묵의 공간. 그곳에서 대면할 수 있는 상대는 자신의 내면밖에 없고, 소통 상대 역시 하느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도 군중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갔다.

 "사제와 수도자는 특히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사도직 현장에 오래 있다 보면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기 쉬워요. 그렇기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고독과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어디 사제와 수도자뿐인가. 현대인들은 누군가와 소통하는 인터넷과 첨단 통신기기를 손끝에 달고 살면서도 자기 영혼과의 소통 또는 접속은 등한시한다. 이것이 우리가 호소하는 영적 갈증의 본질이다.

 수사들이 삶은 감자와 토마토를 싸서 다시 길에 오르는 불청객 배낭에 넣어준다. 수사들은 "이곳은 홀로 머물며 기도하는 곳"이라며 은둔소가 바깥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면서도 "길가는 나그네가 찾아오면 물 한 잔 정도는 대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곡 입구-상중마을 구간은 하루면 거뜬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지리산 둘레길 구간도 아닌 데다 고개가 길고 가팔라서 힘은 좀 들지만 대신 호젓한 운치가 그만이다. 특히 배티재에서 악양면 산중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산적떼(?)가 나타나도 속수무책일 만큼 인적이 없다.

 배티재를 막 넘자, 길 옆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있던 노인들이 기자를 보고 반색을 한다.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와 심드렁하게 흘러가는 먹구름이 지겹던 차에 말상대가 나타나 반가운 모양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데 사셔서 그런지 건강해 보이네요. 여기 사시니까 좋으시죠?"
 "좋긴 뭐가 좋아. 하루 종일 여기 있어봐야 80 넘은 할망구 몇 명 볼까, 사람 구경을 못해.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젊은 사람들은 답답해서 못살아."

 건강이 안 좋아 10년 전 이사 왔다는 75살 할아버지는 산골 생활이 답답한 모양이다.

 이곳 토박이라는 정 할머니(79)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는 애 우는 소리가 시끄럽던 마을이었는데 다들 바깥으로 나갔어. 전쟁 때는 얼마나 무서웠는데. 반란군(빨치산)이 오면 먹을 거며 옷이며 다 줘야 해. 안 주면 총질을 하는데. 언젠가는 소도 끌고 저 산 속으로 가던데…."

 정 할머니는 "점심 먹고 가라"며 집으로 손을 잡아끈다. 산골 노인네 호의를 뿌리칠 수가 없다. 라면을 끓여주겠다며 부엌에 들어간 할머니가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들고 나오면서 "국물이 왜 이렇게 검지?"한다.

 "이 라면(?) 할머니가 사 오신 거예요?"
 "큰며느리가 사다 놨는데 난 이런 거 안 좋아해. 짤까봐 물을 좀 많이 붰어."
 맛있게 먹는 척 하느라 검은 국물까지 싹 비웠다.
 배낭을 둘러메는 기자에게 할머니는 "밥을 끓여줘야 하는데 라면을 대접해 어쩌나"하며 연신 끌탕을 하신다.
 "아니에요. 할머니 솜씨 최고!"(그런데 할머니, 그거 라면이 아니라 자장면 '짜파00'라는 건데….)

▲ 정 할머니의 소박한 인심이 가득 담긴 검은 라면(?)

 지리산 자락은 모든 게 넉넉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은 말할 것도 없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마음까지 풍요롭다. '어머니 산'인 지리산을 닮아서 그럴 게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 지리산 둘레길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둘레길 굽이굽이에서 잃어버린 고향 풍경과 점점 메말라가는 인정을 만날 수 있다.



 ▨ 내맡김의 집 '마리아처럼'
▲ 누구나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무료 숙박시설 '마리아처럼' 전경.


   한적한 산사(山寺)처럼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찾아가도 하루 이틀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가톨릭 시설이 생겼다.

 경남 하동군 지리산 자락에 최근 문을 연 내맡김의 집 '마리아처럼'(청암면 묵계리 1111번지)이다. 소성당과 침실(2인1실) 6개, 식당을 갖춘 마리아처럼은 여느 피정시설보다 더 깨끗하고 쾌적한데도 이용액은 완전 무료다. 산청 방면에서 삼신봉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이 시설은 부근에 있는 서울대교구 사제휴양원 원장 이해욱 신부가 은인 도움을 받아 지었다.

 5년 전 휴양을 겸해 지리산 품으로 들어온 이 신부는 "신자들이 대자연 속에서 마음 편히 쉬며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시설이기에 신자들에게 거저 내놓는다"고 말했다. 또 "이 시설 주인은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사신 성모 마리아"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산골 생활과 그 속에서 받은 치유 은총을 토대로 '내맡김의 영성'을 키워가고 있다.

 이용 기간은 1~3일(성직자와 수도자는 최장 8일)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하루 묵어가도 좋다. 식사는 주방에서 각자 해결해야 하고, 떠날 때는 다음 이용객을 위해 정리정돈을 잘해놓아야 한다.

 이용 신청은 백 프란치스코씨(010-5082-6355)에게 하면 된다.

   마리아처럼 카페 : cafe.daum. net/likeamaria 김원철 기자

 

 

출처 : 세포네
글쓴이 : 세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