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남아리랑 권역은 경상도와 대구광역시와 부산특별시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여기에는 토속 아리랑인 문경아리랑과 1926년 일제강점기 잡가적 성격의 신민요로 형성된 밀양아리랑과 근래 들어서 창작된 대구아리랑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분포권이 넓은 곳이다. 그럼에도 <밀양아리랑>외에는 영남지역 아리랑에 대해 이에 주목하여 조명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였다. 이들 영남아리랑은 영남인 공동체의 소통어로 존재해 왔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아리랑의 현재상을 조망케 하여 영남인의 역동성을 담은 심상(心象)의 전승이자 잃어버린 대동의 자족을 복원하는 행위전승으로 예능화하여, 현대적 콘텐츠 요소로 활용하는데 기여할 것이기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사정에서 간단하게 영남아리랑의 전체상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영남 아리랑이 ‘영남의 窓’으로 역활하여 ‘영남 아리랑의 재발견’으로 진전되길 바란다. ① “오라 ! 들으라 ! 아리랑을 보시라 ! 아리랑을 들으시라! 여러 차례를 상영하여도 인기는 그대로 올라가는 <아리랑>을 시내 조선극장에서 20일 저녁부터 상영한다는데···.” ② “속요는 그 민족 그 지방의 마음이다. 감정이다. -중략- 아리랑은 근세조선의 대표적 구전속요이다.” ③ “우리의 노래를 아리랑 가튼 재래의 민요곡조로 지으면 되는 줄로 알아서는 안 된다. 왜 그러냐면 민요는 봉건사회 뿌르사회의 영락퇴패한 자의 입에서 나온 만큼, 그 안에 포재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그 형식 곡조도 애수적이고 퇴폐적이어서 읽고 듣는 자로 하여곰 신경이 무의식적으로 마비 위축케 한다” ④ “1920년대 일부 명칭의 지역화와 문헌화 현상은 강원도아리랑(1921년)·‘구정선아리랑’과 그리고 서울아리랑(京卵卵打令)과 밀양아리랑(密陽卵卵打令) 정도였던 것이 1930년 중반에 이르면 남도잡가 대구아리랑과 동래아리랑 등의 도시 명을 쓰는 아리랑은 물론이고 <거차도(巨次島)아리랑>과 같이 벽지 도서지역 명을 쓴 아리랑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상에서 제시한 네 가지 아리랑에 대한 언술들은 내용상에서는 오늘의 시점으로 보아 논의의 여지가 있겠지만,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의 아리랑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한다. 그럼으로 이러한 상황이 1930년대 초 지식인 사회의 민요에 대한 관심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흘려 넘길 수 없게 한다. 적어도 아리랑을 중심에 둔다면 그렇다. -민요는 詩의 詩- 이는 1930년대 국학자들의 한 명제였다. 그런데 바로 이 국학자들의 중심에 있던 이들이 영남 출신이었고, 이들의 연구 대상이 당연히 영남민요 중심이었다. 대표적인 이들이 1924년『조선동요집』을 발행한 김천 출신 엄필진이고, 1929년 영남지역 민요를 조사하여『영남전래민요집』을 엮은 대구 출신 이재욱이고, 1935년『민요집』을 발행한 예천 출신 조윤제이고, 1933년《언문조선구전민요집》을 발간한 부산 출신 김소운이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어 김사엽·최상수·심재완 등이 민요집을 냈거나 조사를 했다. 이로서 우리나라 민요와 그 관심에서 영남민요와 영남 국학자들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 영남민요 속의 아리랑은 어떤 위치일까? 이는 영남민요의 위치로 보아 그 만한 값으로 존재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1. 영남의 토속 아리랑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로는 영남지역의 아리랑은 경북 문경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문경아리랑과 예천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예천아리랑과 일부에 의해 불리어져 오는 상주아리랑과 울릉도아리랑이 있다. 1926년 10월에 ‘박춘재 장고 대구 김금화 창’의 음반 <밀양아리랑>의 존재와 1929년 발행된《조선곡집》(영창서관 발행, 임원상 발행)에 수록된 영남아리랑과 1930년 이재욱이 조사하고 정리 한 <영남전래민요집>의 ‘경북아리랑’ 1935년 월간『중앙』1월호 <朝鮮俗謠行脚>에 수록된 경상도아리랑, 김사엽이 1935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新民謠의 再認識>에 수록한 영천아리랑, 1936. 고려(Korai)레코드사가 낸 최계란의 창작 <대구아리랑>이 있다. 그리고 70년대 들어 중국동포사회의 아리랑 상황이 알려지면서 밀양아리랑 곡조를 차용한 ‘광복군아리랑’과 영천아리랑 곡조를 차용한 ‘독립군아리랑’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조사된 보고서에 현지명으로 기록된 아리랑이 있고, 여러 창작 아리랑이 나타나고 있는데, 봉화아리랑·대구아리랑(03)·구미아리랑(05)·경산아리랑(06)·울산아리랑(07)·안동아리랑(07)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영남지역의 아리랑 상황은 매우 다양한 형태이다. 그런 만큼 주목할 만하다. 첫째는 어느 민요권 보다도 다양한 아리랑이 지역적 분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근대 이후 형성된 아리랑의 시간적 층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셋째는 각 아리랑의 형성 시기와 지역적 차이가 접변양상으로 나타나 메나리토리·경토리·육자배기토리도 보여 진다는 점이다. 넷째 창작아리랑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는 도시적 개념의 기층성을 확보하려는 축제 개최와 음반 발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강원도는 물론 다른 어느 민요권과도 비교되는 점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각각의 아리랑들을 살펴본다. 오늘날 구비문학에 대한 시각은 전승체계 내에서의 닫힌 가치를 벗어나 문화산업시대 문화자원의 차원에서 평가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문화컨텐츠로 재생산 가능성 여부로, 기능에서 음악성이 부각되어 감상용으로의 자기변용이 가능하고, 곡조에서 독특한 개성이 확인되어 교육용으로의 가치가 확인되는 민요가 주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영남의 아리랑은 앞으로 이러한 시각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영남민요보존회가 연례화 한, 1990년 초부터 <영남민요 발표회>, 2002년부터 <대구아리랑제> 그리고 2003년부터 개최해오는 <영천아리랑제>와 시안미술과 주최 아리랑 주제 특별전 등을 들수 있다.2005년 대구 KBS라디오의 <영남민요의 재발견> 제3부 <영남의 아리랑> 방송은 이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작업인 것이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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