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웃사랑방~/좀더 나은 삶을 향하여..

[스크랩] [권헌영 칼럼]게시판이용자 본인확인제 위헌판결 파문과 반향 그리고 각오

[권헌영 칼럼]


 

게시판이용자 본인확인제 위헌판결 파문과 반향 그리고 각오

 

2012.9.

권헌영(광운대 법대)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게시판이용자의 본인확인을 의무화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의 관련규정을 재판관 전원일치의견으로 위헌결정하였다. 2007년 도입되어 불필요한 논란을 많이 일으켰던 이른바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자 진보진영은 축제분위기로 바뀌었고, 보수진영은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진 것처럼 탄식했다. 다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나 악성댓글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사라졌다고 난리다. 청소년보호단체, 학부모단체, 보수시민단체 등은 음란물과 불법정보, 명예훼손, 자살이나 도박을 부추기는 불법적 게시글이 넘쳐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뭔 일이 벌어지거나, 인터넷을 통한 문제해결에 대해 우리 사회의 반응은 늘 뜨겁지만, 곧 식어버린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논란을 기성 언론은 깊이 있는 분석이나 대응에 앞서, 우선 선정적으로 다룬다. 언론의 상업성과 인터넷의 휘발성이 묘하게 만나는 지점에 우리는 놓여 있다. 신문과 방송과 같은 매체는 항상 ‘인터넷’을 무척 걱정한다. ‘뭣 모르는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은 항상 계몽이나 선도의 대상이거나 ‘묶어 두어야 마음이 놓이는 어떤 것’인 모양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냉정한 해석을 바탕으로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것은 많다.


우선 이번에 위헌결정을 받은 제도는 ‘인터넷실명제’가 아니다. ‘인터넷실명제’가 사라졌다고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에 글을 쓰려면 본인의 실명으로 해야만 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고 생각한다. 네티즌들이야 본인확인을 하고 글을 쓰니 이 제도를 모를 리 없지만 이 문제를 걱정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렇게 오해하고 있다. 주변에 누군가 이 문제로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계시다면 간단하게라도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하루 10만 명 이상 접속하는 인터넷사이트에 글을 쓰려면 일단 본인확인정보를 제공하고 본인의 가명 또는 닉네임 등으로 글을 쓰도록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물론 실명으로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실명으로 글을 쓰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의 정보를 사업자가 알고 있으니 추적당할 각오를 하고 글을 쓰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글쓴이를 추적하는 정도는 기존의 제도를 통해서도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이 제도는 국가가 지나치게 네티즌을 겁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겁먹고 글쓰라고 하면 누구나 글쓰기를 포기할 것이니 그건 어떤 글이든지 익명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위축효과가 날 정도의 억압적 제도 운용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헌법재판소가 자신 있게 이번 제도를 만장일치 위헌으로 결정한 이유는, 효과도 없으면서 다른 제도로 다 할 수 있는 걸 굳이 겁까지 줘가면서 오버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에 대하여 사업자를 통해 소송을 청구할 수도 있고, 수사기관이 불법정보 게시자를 추적하여 잡아들이는 것이 다소 수고스럽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굳이 온 국민을 악성댓글이나 쓰는 사람으로 만드는, 나쁜 제도를 운용한 것이라고 본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위헌이라는 결론에서 헌법재판소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일종의 군더더기 제도였던 것이다.


악성댓글이나 불법적 정보의 게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제도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번 위헌결정을 환영하는 쪽을 불법정보나 인터넷상의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이들로 몰아붙인다.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헌법재판소도 불법정보의 게시를 허용하여야 한다고 한 바 없다. 오히려 불법정보에 대한 추적가능성이 다른 제도에 의하여 보장되고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 점은 논의를 할 때 꼭 먼저 짚어두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자칫하면 논의가, 악성댓글 찬반논쟁과 같은, 엉뚱한 싸움으로 번진다.


기업 쪽에서는 일단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꼭 그럴 것인가는 의문이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위헌으로 결정났지만, 불법정보에 의한 피해구제에 있어서 기업이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시판 이용자의 불법을 방치하면 기업은 함께 책임을 져야한다. 더구나 피해자가 구제를 요청한 경우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으로서도 가해자의 정보를 필요로 하는 지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인터넷스러운 대안을 개발하여야 할 의무가 기업으로 넘어온 것이다. 본인확인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다 넘어왔다. 헌법에 부합하는 자율적 방법이 정부나 기업의 공통된 방향이기는 하나 갈 길은 멀다. 본인확인을 위한 정보가 마땅치 않다. 유효한 이메일주소 하나만 요구하는 해외사업자의 경우로부터 주민번호와 같은 고유식별자를 활용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대안을 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이다.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확인의무규정은 위헌이 되었지만 정보통신망법의 다른 규정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도 냉정하게 이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에서 불법행위를 한 사람은 ‘완전범죄’라 일컬어지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밝혀진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물며 명동거리와 같이 공개된 장소에서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온라인에서는 더욱 명확한 증거들이 남는다. 공개게시판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우리의 활동기록은 남는다. 설마 이런 사실을 몰라서 악성댓글을 달고 불법정보를 올렸다면 큰 오산이다. 다만, 이 문제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방법이 아직 서툴렀을 뿐이다. 이제 이번 위헌결정으로 게시판 이용자 본인확인제는 사라졌지만 이 문제에 대응하는 사회적 방법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는 이와 유사한 일을 집회 및 시위관련 대응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다. 즉, 국가가 집회와 시위를 통제하는 일과는 별개로, 불법시위 등에 관한 대응이 세련된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전환되고 있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을 옥죄고 있는 이 소송은 실질적으로 집회 및 시위에 위축효과를 주게 된다. 더구나 인터넷에서 행위자 추적과 사법적 청구는 이미 저작권침해소송이나 고소․고발 건으로 경험한 바도 있다. 서로 내용을 잘 이해하고 또 잘 모르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일이다.


표현의 자유는 원래 정치적인 이슈와 밀접하다. 집권세력이나 유명인과 같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이 제도를 억압하고자 하는 속성을 가진다. 국회의원들은 여와 야를 막론하고 일반 네티즌의 비판에는 재갈을 물리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터넷의 표현을 제한하는 법률이 쉽게 국회를 통과하는 이유이다.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비판하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아니하고 친구나 선생님 또는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데 활용하는 것은 원래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익명으로 표현을 할 수 있지만 그 표현이 불법인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터넷에 다른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 같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적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네티즌 스스로 불법세력이 아닌 점을 확인하고 외부적 재갈을 잘 감시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국회에서 이런 제도적 논의가 시작되면 네티즌들의 힘을 모아 인터넷이 더 밝은 대한민국을 여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도록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흥분하면 진다. 금방 식어도 진다. 인터넷이 생활인 것처럼 우리의 노력도 일상이 되어야 한다.

 





 

 

 헌영 열린이용자위원회 위원

 

*이 글은 Daum 열린이용자위원회 6기 위원으로 활동하시는 권헌영 님의 칼럼입니다.

*이 글은 Daum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출처 : 열린이용자위원회
글쓴이 : 열린이용자위원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