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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한미전 관전기(옮긴글)

한국-미국전 스케치 | 세계야구클래식 2006/03/14 22:45 
  http://wnetwork.hani.co.kr/bike/1364  

이긴 경기는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건네줍니다.

진 경기는 배울 것을 숙제로 안겨줍니다.

 

2006년 3월14일(한국시각). 현지시각으론 3월13일 오후 7시.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야구가 `야구 종주국' 미국의 드림팀을 사상 처음 격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프로와 아마를 통털어 야구의 최강국가를 가리는 세계야구클래식(World Baseball Classic) 본선 8강 라운드 1조(한국 일본 멕시코 미국) 두번째 경기에서.

그 시작은 바로 이승엽 선수의 1회말 솔로홈런으로 시작됐지요. 위 사진은 돈트렐 윌리스와 첫 만남에서 초구 시속 146km짜리 낮은 직구를 쳐올려 125m짜리 우익수쪽 홈런을 날린 뒤 2루를 돌아 3루쪽으로 가는 장면입니다.

 

설마 했는데, 홈런이 터지니, 카메라만 붙잡고 있는 사진기자만큼 좋은 장면을 잡을수는 없었지요.

마침내 이승엽 선수가 선취득점을 한 뒤 홈에서 기다리던 4번타자 김태균과 극적인 만남을 하고 있네요.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한화에서 4번으로 데리고 있던 김태균 선수인데, 이번 대회에서 이날 처음으로 4번에 기용됐습니다. 최희섭의 부진 탓에 기회를 잡은 것이지요. 대표팀에는 방망이를 좀 만지는 1루수가 이승엽 최희섭 김태균 3명이 있는데, 이중에서 늘 밀려나는 설움을 당했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김태균 선수는 연속 볼넷을 골라 1루로 진루했고, 5번 송지만 타자(수비 우익수)가 우중간을 뚫는 안타로 3루까지 갔습니다. 여기서 팀 동료애가 발휘됩니다. 한화의 이범호 선수가 2구를 받아쳐 좌전안타를 만들어 이번 대회 첫 타점을 팀 동료 김태균을 통해 기록합니다. 김태균의 이 대회 첫 득점, 이범호의 첫 타점. 한화 파이팅! 입니다.

한국의 2-0 앞섬(리드).

3회엔 선발 손민한(롯데) 투수가 2아웃을 잡아놓고,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1볼 뒤 2구째를 맞아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115m짜리 솔로홈런을 허용합니다. 그리고 4번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손민한에게 3번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요.

미국의 포수 제이슨 배리텍(보스턴 레드삭스)은 김병현과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지요.이승엽이 2사 1루 때 타석에 나서니까, 아예 고의사구로 내보냅니다. 포수가 고의사구를 투수에게 신호해 받을 때 투수의 공이 마운드에서 떠나기전 포수가 자리를 이탈하면 안됩니다. 공을 던진 뒤 자리를 옮겨 받아야 하는게 규칙입니다. 경기를 유심히 잘 보시면 그런게 보입니다.

 

이제 4회말 한국 공격입니다. 이날 유격수에서 2루수로 보직을 바꿔 선발 출장한 2번타자 김민재(한화)가 그야말로 벼락같은 안타를 쳐냅니다. 좌중간을 넘어 한번 그라운드에 튀긴 공이 담을 넘어 2루타, 2루에 나갑니다.

 

다음 타자는 3번 바로 이승엽입니다. 연일 홈런포를 터뜨리는 그에게, 조금전 첫 타석에서 홈런을 날렸는데, 아무리 강심장을 지녔고, 메이저리그에서 날고 긴다는 그들도 두려움의 대상임은 분명했겠지요.

그러니 제이슨 배리텍 보스턴 레드삭스의 명포수가 고의사구를 리드합니다. 정면 대결도 좋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고의사구를 한국야구위원회의 공식 야구기록지에는 IB(미국에선 IBB)라고 표기를 하는데 Intentional Base on Balls, 말 그대로 고의로 볼을 던져 주자를 내보낸 다는 뜻이지요. 그냥 볼넷은 B(미국은 BB, 즉 Base on Balls)로 표기하구요. 이번 대회 이승엽의 첫 고의사구가 기록됩니다. 상황은 2사에 주자 1, 2루.

 

4번 타자는 원래 김태균이었지요. 그런데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최희섭이네요. 역시 큰것 한방 노리겠다는 코칭 스태프의 의지가 보입니다. 그런데 최희섭 선수는 지금까지 3안타의 빈타에 허덕였기에 과연 해낼지가 걱정이었지요. 투수는 돈트렐 윌리스에 이어 등판한 댄 휠러(휴스턴).

 

야구는 교훈을 주는데 교훈을 깨닫지 못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바로 전회, 3회 초 손민한 선수가 2사를 잡아놓고 홈런을 맞았습니다. 지금 역시 댄 휠러 선수, 2사를 잡아놓고, 주자는 1, 2루에 있습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4년 경력의 최희섭과 정면 승부를 겁니다. 결과야 어쨌든 그런 자세가 멋집니다.

최희섭, 이번에 치면 지난번 부진 다 만회하는데, 기자는 더 긴장했습니다. 카메라는 긴장을 반영해 흔들렸네요. 방망이는 돌아갔고, 타구는 하늘로 날았습니다.

 

1볼뒤 1스트라이크, 87마일짜리(139km) 3구 직구가 최희섭 선수를 향합니다.  방망이는 돌아갔고, 타구는 에인절스타디움 우익수 파울선상으로 크게 치솟았습니다.

 "파울이구나! 잡히면 죽는데..." 아마 최희섭 선수에겐 다시 못올 이 득점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착잡했을 겁니다. 기자회견에서 "파울인줄 알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외야수가 달려가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그런데 관중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와! 홈런이구나 확신하게 됐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스리런(3점) 홈런. 한국이 미국을 6-1로 앞서가는 순간입니다.

홈런 친 선수가 방망이 내려놓고 달려갈 생각을 않네요. 정말 최희섭 선수 파울이나 잡히는 타구로 생각했나봅니다. 그런데 김민재, 이승엽 선수는 막 달려가네요. 역시 가까운데 있으니까 홈런을 빨리 눈치 챘나 봅니다. 

최희섭 선수가 3루를 향하는 모습(앞에는 물론 이승엽)을 찍는데, 홈런 폭죽의 흔적이 최희섭 선수의 뒷편으로 잘 보이니 조금 더 홈런이 실감납니다.

더그아웃에 들어가기 직전 최희섭 선수가 두손을 번쩍 치켜드는 모습이 아주 당당해보입니다. 나도 이번 클래식에서 한번 일내는구나 라고 말이죠.

 

한국은 6회 9번타자 이병규의 볼넷, 이종범의 2루수 내야 안타 때 2루수실책을 틈타 이병규 3루진루로 만든 무사 2, 3루에서 김민재가 중전 적시타로 1점을 더 보태 쐐기를 박습니다. 김민재는 4회 최희섭의 홈런의 계기를 만든 장본인.

 

미국 타자들의 마지막 저항이 정대현을 괴롭힙니다. 암흑같고 답답했던 순간이 결국 2점을 빼앗기는 고통을 남깁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노력하는 고통 뒤엔 기쁨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더 화려한 아름다움을 위한 준비의 여정은 결코 쉽게 오지 않습니다. 9회가 어둠처럼 지나가고, 차세대 마무리 주역 오승환이 치퍼 존스를 2루 땅볼로 처리하는 순간, 한국은 최고의 메이저리거들로 구성된 미국을 이기는 아주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순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제 서로 기쁨을 나눌 시간이 찾아온 것이죠. 

오승환 선수가 1루로 뛰어가고, 이승엽 선수가 맞이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수들이 이곳으로 몰려듭니다. 한국의 미국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말이죠.

 

선수들이 마운드로 몰려들고, 왼쪽에는 축하 폭죽이 터집니다. 마침내 한국이 미국땅에서 승리하는 순간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국가대표팀간 대결에서 3전전패를 당했었는데, 이번 승리로 4전1승3패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의미가 큰 것은 아마와 프로를 총망라한 명실상부한 국가대항전이라는 점이었고, 두번째는 미국원정에서 미국을 이겼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벅 마르티네스 미국 감독(위 사진 오른쪽)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선발 돈트렐은 선제 홈런과 추가 점수를 내주고, 컨트롤 능력을 잃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투수들은 아주 훌륭했고, 미국 타자들이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한국은 타자들도 훌륭했다고 말했구요.돈트렐 윌리스 선수는 한국 선수들의 실력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제 실력을 발휘못했는데, 언제 잘할지 못할지를 잘 알고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팀은 준결승에 가는게 목표이며, 충분한 실력도 갖췄고, 계속 노력할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마르티네스 감독은 다음에 돈트렐 윌리스에게 기회를 준다면 아마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것이라는 덕담도 건네더군요.

최희섭 선수의 표정이 밝아보이고,김인식 감독의 얼굴은 만족과 자신감에 차있어 보입니다.

김 감독은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야구에서 미국과 일본은 선진국이기에 많이 배워야 하고, 지금도 한국의 젊은 지도자들이 연수 등을 통해 선진화된 야구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기자가 한국의 야구 철학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의 야구철학은 또 무엇이냐고 덧붙이며.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구 철학이랄 게 있나요. 그저 우리 보다 상대가 조금 약하다 싶으면 조금 긴장하고, 상대가 한수 위라고 여겨지면 마음 편하게 경기를 하는 것이죠."

이 얘기에 한국 기자들만 웃었습니다. 도쿄에서 이미 한번 써먹었던 표현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최희섭 선수는 지금 팀 분위기가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이젠 어떤 팀이라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회견을 했습니다.  

 

에인절스타디움의 조명은 모두 꺼지고, 천사의 야구장은 칠흑같은 어둠과 적막감이 감돕니다. 마지막까지 기사 송고를 하느라  남아있던 한국 기자들만이 새벽 1시30분께(한국시각으론 6시30분)나 돼서야 경기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날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승리를 축하하는 맥주라도 한잔 해야겠다고 생각해 인근 주유소 편의점을 들렀습니다.

 

여기서 어떤 젊은 미국 청년을 만났습니다. 아이디카드를 보고는 야구때문에 여기 왔냐, 어느 나라냐고 묻더니, 한국이라고 대답하니 한국이 미국을 이겼다며 아쉬운 얼굴 표정을 짓더군요.

그리곤, 재미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맥주를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죠.

나는 이겨서 맥주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서로에겐 아무런 적대감도 없이 야구 하나로 이런 저런 얘길 나눌 수 있었고, 그 젊은이는 친절하게도 길까지 안내해주었습니다.

야구가 공용어라는 이번 대회의 모토가 새삼 다가옵니다.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평화와 화합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교류 속에서도 얼마든지 확인이 된다는 믿음도 들었습니다. 거기엔 승자와 패자가 하나 될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쓴날이라 너무 기분이 좋아서 한겨레 스포츠부 권오상기자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참고로 전 15년전 부산의 사직구장옆에 살면서 롯데팀의 경기를 보던 그때가

너무 생각이 많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