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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방~/살아가는 일들

믄성욱님의 시

◎ 시인: 문성욱
◎ 추천위원: 강희근
◎ 게재호: 2003. 11~12
텅 빈 항아리 외 2편  

  문 성 욱


땅에 곡식을 심고 가꾸는 일 손 털지 못하는

어머니 

큰설 다랑이 논 휴경지로 만들고 싶지만 놀릴 수 없는

전답

내년에는 편히 쉬어라

불당골 공동묘지 앞 지나며

아버지의 무덤에 가을 추수 소식 전한다

새털구름만 몰라라 하고 피해

달아났다 갈대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

멈추었다

아버지 서랍에 6.25 참전용사증이 휴경지 호박

가상잎*같이 쭈그러져 있다니!

거제 포로수용소 이야기를 이어 하시던 어머니

세월의 강줄기 따라 큰설 샛강도 흐른다

저 샛강 붙들고 돌아온 농번기

가을걷이 끝났다

누구의 땅이라 말을 못하고

편히 쉬어라 그 말 눈에다 찍었다

하늘은 텅 빈 항아리이구나



*남해말로 말라버린 잎을 가리킴

 

 

문이 보인다



화살표 따라 내려가시오

지상 주차 금지

겨울 오기 전에 골조공사 끝내야 한다고 서둘렀던

지난 공사 일,

남은 일을 지금 하고 있다

식탁에 피어나는 김처럼 오갈 식당 박사장 만나

둔촌동 이야기를 한다

공사장이 지지부진 오랫동안 일할 수 없었던 속사정을 말하지만

그는 가고

사정 들어 줄 사람 이제는 한 사람

없다

안전하지 못했던 사람들 몇 있어도 입주자는

이사왔다

지금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정원의 오래되지 않은 나무는 잔뿌리 내리고

공사판에 몰려왔던 사람들 한 사나흘 전

썰물이 되어 가버린 자리

비우고 가는 휴지통이 무거워 쉬어 가는 놀이터

주차장 입구에 문이 보인다

 

 

고기잡이



지도 펼쳐 놓고 바다에 간다

해일 출렁이는 파고 속에도 항해는

계속이다

밤 배

불 밝히던 장어 잡이의 기억들, 늙어 가는 물살의 흰 파도처럼

잔잔해진 해변,

가슴 울렸던 어부의 노래도 주름살 깊다

굵은 등고선 그리며 지나간

노인의 그림자

강진만 어장에 어둠이 찾아온다

해거름 물때를 기다리는 아낙네

조무래기 아들이 동행한 어로는

두려움 없다

마음의 지도 옮겨가는 수로에 길은 없다

그물을 버리지 못한 채

떠나지 못하고 지켜온 바다

어장의 고기는 눈빛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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