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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공동체~/레지오마리애

어느 신자의 고백

 

레지오에 대한 첫 기억은 유쾌하지 못하다.

1982년 겨울, 성탄 때 영세를 받은 나는 

특별하게 이끌어 주는 인도자 없이 성당을 다녔기에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

영세만 받았지 성당에 대해서는 무식할 정도로 몰랐다.

대부님도 영세 당일 날 소개 받은 분인지라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대부, 대자가 되었으니 교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미사는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레지오를 하라는 권유를 받고

원래 대부님으로 모실려고 했던 분이 단장으로 계시는 쁘레시디움에 가게 되었다.

성당에 나간 것이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니라 믿어 보려고 간 나에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레지오 생활은 힘들었다.

총각이고 첫 발령 받은 때인지라 학교일도 바쁘고 힘든데

매주 수요일마다 성당에 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정말 마음속에 한 짐 가득한 부담이었다.

활동 보고를 하는데.... 나는 보고 할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서 기도를 한다거나... 이런 일들이 상상되지 않았다.

 

어쩌다가 하루 결석을 하였더니 단장님의 싸늘한 시선이 너무 불편하였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어떡하면 좋으냐고 하소연을 하니

휴가를 내라고 한다. <휴가라...> 그런 좋은 제도가 다 있다니...

학교 핑계를 대고 휴가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휴가가 끝날 무렵 난, 학교 근처로 하숙을 하러 갔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원 선서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회합에 참석하여 목석처럼 앉아서 모두들 열심히 이야기 할 때

이방인 처럼 낯선 느낌으로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기억뿐이다.

 

세월이 흐러 25년이 지났다... 25년.. 대단한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4반세기라 하던가...

 

2006년도에 성가대에 들어가 열심히 성가를 배우는 중에

성가대에 남성단원들이 많아지다보니 슬슬 레지오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25년동안 성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앙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제 겨우 알 것 같은데

레지오라... 처음 경험했던 만큼 두렵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맘 속에는 거부하는 마음이 들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 회합에 참석하는 일과 주간 활동보고 시간.. 내 생각에 가장 힘든 것이 이 두 가지였다.

내가 하기 싫다고 레지오에 빠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처음 영세 받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아닌지라 겪어보지 뭘....

이런 배짱이 좀 생겼다.  함께 모이는 레지오 단원들이 모두 성가대이거나 잘 알고

또 만만하게 농담도 나누는 분 들이라는 것도 레지오를 받아 들이는데 크게 작용을 했다.

 

이제 칠암성당 성가대 남성 단원이 주축인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이

어제 50차 주회를 마쳤다. 50차... 딱 일년이 2 주 남았다는 이야기다.

성가대 모임인 관꼐로 수요일에 하지 않고 일요일 아침에 모임을 가지는 덕분에

일요일 늦잠을 한 번도 못잤다.

일요일, 느긋하게 9시까지 즐길 수 있는 그 꿀 맛 같은 늦잠.

가끔씩 즐기던 그 늦잠을 잃어 버리고 평일보다 쬐끔 여유있게 일어나 준비를 한다.

 

그래도 이젠 즐겁다.

생활 속에서 여유가 생긴 건지...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긴 건지 모르지만

레지오가 그렇게 두렵지 않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생활하면서 그 중에서 신앙에 따라 주어진 일을 찾아 활동보고를 한다.

묵주기도...

어쩌다 신자들과 봉고를 타고 여행할 때 묵주기도를 하면 정말 두려웠다. 틀리면 어쩌나...

앞선 선창하는 분이 묵주기도 15단을 다 외우고 계신 모습을 보면 한없이 옴추려지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레지오를 하니 제일 좋은점이 바로 묵주기도인 것 같다.

틈만 나면 기도를 한다(학교에 출퇴근하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았고....

활동 보고를 할 꺼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가끔씩 축일이나 기념일에 단원들끼리 모여서 한 잔을 나누는 일도 기쁘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은

나의 존재감을 일깨우고 사회에서 나의 위치를 높여 주는 것 같다.

 

아직 레지오 활동에 대한 부담이 완전히 떨쳐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두렵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네, 하고 달려가서 일하고...>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아니요, 지금은 어렵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하던 레지오가

이제는 성당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알게 해 주고 있다.

좋은 레지오 단장님과 단원들이, 상호간에 존중하고..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십 년 세월을 살아온 내가 감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내 생애에 가장 잘 한 일이 청혼 한 일이고...

두 번째 잘한 일이 성당에 다닌 것이다.

레지오 활동 이전에는 두 번째 말을 감히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