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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우리문화엿보기

다리밟기(답교놀이)

 

다리밟기(답교놀이)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橋}를 밟는 전통적인 민속놀이.




답교(踏橋)라고도 한다.

이수광(李光)의《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의하면 다리밟기는 고려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나, 이것은 중국의 풍속이 고려에 전해진 것이다.

일찍이 중국의 옹낙(雍洛)이 쓴 《영이록(靈異錄)》을 보면 “당(唐)나라에서 정월 보름을 중심으로 3일간 야행을 허가하였더니 남녀들이 놀러다니는 거마(車馬)가 길을 메웠다”고 하였으며, 육계굉(陸啓宏)의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에는 “정월 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모두 집에서 나와 다리를 거닐었다”고 하였고, 우혁정(于奕正)의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는 “정월 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서로 이끌고 나와 거닒으로써 질병을 없애는 것을 주백병(走百病)이라 한다” 하였다.





이 밖에도 중국에는 다리밟기에 대한 많은 문헌이 있다.

다리밟기가 조선시대에 더욱 성행하였고, 다리를 건너는 방법도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다리 셋을 건너는가 하면, 제일 큰 다리나 가장 오래

된 다리를 자기 나이 수대로 왕복하였다. 지방에 따라 왕복을 1회로 치는 곳과 왕복을 2회로 간주하고, 나이가 홀수일 때는 1회를 다리 아래로

돌아오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다리를 밟으면 1년 내내 다리{脚}에 병이 없고, 12다리를 건너면 12달의 액을 막는다 하여 남녀노소 ·상하귀천의 구별 없이 하였다.




혹자는 교(橋)가 우리 말로는 다리{脚}로 발음되므로 여기에 연관시켜 자기 나이 수만큼 다리를 밟으면 다리가 튼튼해지고 모든 액을 면한다고 하여 여러 곳의 다리를 찾아다니며 밟았다 한다. 후에는 보름날 너무 많은 사람이 나와 매우 복잡하였으므로 부녀자들은 16일에 다리밟기를 하고, 양반들은 상민들과 몸이 부딪치는 것이 싫어 14일에 다리밟기를 하였는데, 이것을 ‘양반 다리밟기’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