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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이해~/신앙상식

♥사순 정신 실천 방법 ♥

♥사순 정신 실천 방법 ♥

교회의 사순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인들이 전통적으로 실천해온 기도와 희생과 자선을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1) 기도
평소에 기도를 별로 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적어도 사순 기간 동안 기도와 묵상을 해야 한다.
오랜 시간 많은 기도를 바치는 것보다
짧은 시간이나마 내적 침묵과 심리적 안정과 고요를 유지하며,
주님과 참으로 친밀한 친교를 나누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는 사랑하는 행위다.
주님을 사랑하는 행위로서 ‘참기도’를 하기 위해
자신 앞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그분께 사랑, 감사, 찬양, 죄스러움, 부끄럼, 통회, 자기 봉헌,
순종 등의 심정을 절실히 표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도문 외우기에 신경 쓰거나 청원기도 바치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시고 사랑하시는 주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중점을 두도록 한다.
그래야 기도의 참맛을 맛들이고 기도를 즐기고 좋아할 수 있다.

오래 전에 한 봉사자 자매가 나에게 한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신부님,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시편 34,9).

결국 기도와 신앙과 이웃 사랑의 전부는
세상의 모든 사랑과 진선미의 원천이신 주님의 사랑과
진선미를 전인격적으로 맛보고 눈여겨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순절에 기도와 묵상으로 하느님을 꼭 깊이 만나고 체험해야 한다.
사순절에 매일 묵상을 하면 참으로 좋다.
묵상하지 않는 영성생활은 있을 수 없고,
기도의 참맛들임도 있을 수 없다.
묵상을 해야 하느님을 깊이 만나고 체험할 수 있다. 묵상을 해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과 기쁨과 평화를 늘 유지할 수 있다.

(2) 희생
예수님의 수난에 깊이 동참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어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아픔을 사랑으로 그분께 봉헌해야 한다.
그분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심한 고통을 겪으셨는데,
제자인 우리가 어떻게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겠는가!
주님이 심한 모욕과 놀림을 당하셨는데, 그분의 제자인
우리가 어떻게 남의 사랑과 존경만을 받으려고 할 수 있겠는가!
모든 희생을 예수님 속죄의 수난에 동참하여
자신과 남의 죄를 보속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기쁘게 바친다. 그것이야말로 ‘구세주다운 마음’ 이다.

사순절에 음주, 흡연, 식사, 오락, 취미, 휴식 등 어떤 만족 중에
한 가지를 끊거나 줄이거나 절제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현대사회에 알맞은 희생으로서 생활의 어떤 기본적인 것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은 한층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어야 할 약간의 불편하고 불쾌하고 창피하고
억울한 일들을 말없이 기쁘게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이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이지만 해야 할 일 또는 하면
더 좋은 일을 스스로, 정성들여 하는 것도 좋다.
남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의 마음에 거슬려 불쾌하고 억울하고
창피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인내와 용서와 사랑으로 달게 받는다.
자신이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정의 부모. 부부,
자녀, 형제, 직장인, 학생으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소임이나
실천하면 더 좋은 일을 좀 더 기쁘게 큰 사랑으로 행한다.
이와 같은 희생은 가장 기본적 희생인 동시에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치 있는 희생이다. 이와 같은 희생을
소홀히 하고 다른 특별한 희생을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기쁘게 바치는 희생은
희생 자체가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고 행복이 된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시고,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분을 위해
희생과 고통을 바치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고 고마움이며
행복이다. 그 희생과 고통은 그대로 사랑이 된다.
그것이 바로 이미 주님의 보답을 받은 것이며,
그 보답이야말로 다른 어떤 보답보다 값진 것이다.

(3) 자선
그리스도적 자선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를 하느님이 특별히
가엾게 여기시고 그 안에서 예수님이 고통 받고 계신다는 이유로,
그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에게 하느님의 가엾게 여기신 사랑을
전해주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서 예수님이 고통 받지 않도록
고통을 제거해 드리는 것이다.

“형제님, 하느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가엾게 여기시니
그 사랑을 갖다 드릴 테니까 받으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고통을 겪지 않도록 그 고통을 제거해 드릴게요.” 하며 행하는 것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에게 자선을 행하는 것이다.
고통 받는 형제를 하느님이 가엾게 여기시는 이로 받아들이고,
그 형제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이는 하느님의 모습을
더 닯게 되고, 형제 안에 예수님이 고통을 겪고 계시는 것을 보고
그 고통을 제거하는 이는 예수님의 마음을 더 닯게 된다.

그러기 위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에게 마음을 열어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바라는지 민감하고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의 고통과 가난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원과 양로원과 장애우 시설을 일부러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나눌 수 있다.
그들을 위해 어떤 봉사와 노동을 한다면 더욱 좋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 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로마 12,15~16).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를 돕고 그에게 기쁨과 사랑을
가져다주는 일에서 자신도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느끼는 기쁨과 행복 자체가 이미 이웃 사랑을 실천한
보람이자 보답이며, 이미 주님께서 백배로 갚아주신 것이다.
그 기쁨과 행복은 세상의 다른 어떤 기쁨이나 행복과
비교할 수도 바꿀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하고 은혜로운 것이다.
그 기쁨과 행복은 내세의 영원한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여러 형태로 가난과 고통 중에
있으며, 누군가의 사랑과 이해와 인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먼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해주어야 한다.
평소 가정과 직장, 성당과 사회에서
여러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이 가장 근본적 자선, 가장 필요한 자선의 행위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것으로 다음과 같아 말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영성적 소유물을
나누어주는 것이 자신의 ‘참 행복’의 길이다.
남에게 자신의 사랑과 자비와 관심과 배려를 나누어주자.
남에게 자신의 생명과 마음의 어떤 부분을 나누어 주자.
그리하여 자신이 행복해진다면,
그 행복 자체가 ‘주는’ 행위에 대한 보답이며,
주님께서 이미 백배로 갚으신 것이다.
그 보답은 세상의 다른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도
바꿀 수도 없을 만큼 값지고 복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행복은 그대로 내세의 영원한 행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살레시오 수도회
김보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