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젊은 노인'들에게
일할 권리·놀 권리 찾아줘야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그 집 남편은 일식이야, 삼식이야?" 요즘 은퇴한 남편과 사는 아주머니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어, 우리 집은 삼식이지 뭐야", "우린 무식인데", "정말 복 받았네." 일식, 삼식이란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를 말한다. 즉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다 먹으면 삼식(三食), 안 먹으면 무식(無食)이다.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대외활동이 적다는 뜻. 바깥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는 남편 수발 들기가 힘겹다는 뜻에서 나온 농담이다.
요즘 중년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여성차별적 유머'를 대신한 것은 쉰 살 전후 직장을 떠나는 남성들과 관련된 '자해성(自害性) 농담'이다. "마누라가 곰국 끓이면 최소한 3일은 놀러가신다는 뜻" "은퇴 후 거치는 세계 4대 대학. 1년차는 하바드대(하루 종일 바쁘게 드나든다), 2년차는 하와이대(하루 종일 와이프 옆에 붙어 있는다), 3년차는 동경대(동네경로당), 4년차는 방콕대(방에 콕 박혀 있는다)"라는 식이다. 사실 이런 유머는 젊어서 권위적이고 위압적이었던 '돌아온' 남편들에 대한 아내의 은근한 복수의 측면도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남편을 '조롱으로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인 희롱성 농담'으로 상황의 어려움을 잊기에는 남성 노인들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평균 자살률은 26.1명(인구 10만명, 2005년 기준). 그러나 60∼64세 노인의 경우 48.0명, 65∼69세는 62.6명이고, 심지어 80∼85세는 127.1명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일본의 노인 자살률보다도 더 높다. 또 질병관리본부는 "노인 자살은 충동성이 낮고 자살성공률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병에 걸리거나, 궁핍하거나, 혹은 너무 고독해서, 차근차근 자살을 준비해 성공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얘기다.
노인 범죄는 더욱 비참한 양상이다. '노인 범죄 추이 및 관련 요인에 관한 연구'(이화여대 사회과학연구소 이현희 연구원)에 따르면 노인범죄율(인구 10만명 기준)은 71년 183.9에서 2000년 392.4로 113%가 증가했다. 범죄 내용을 보면 더 심각해진다. 법무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 살인범은 96년 18명에서 2005년 96명으로 5.3배, 성폭력범도 같은 기간 91명에서 430명으로 4.7배 늘었다.
'서러운 노인' 문제는 저소득층만의 문제도 아니다. "연로하신 분들이 운동 중 다치시면 안될까봐" 회원가입을 시켜주지 않는 호텔 헬스클럽도 여전히 존재한다. "물이 흐려진다"고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 것만도 고마울 지경이다. 미국의 많은 극장에서는 학생과 노인 할인제를 모두 운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엔 청소년 할인만 있고, 통신회사들이 내놓은 노인 전용 요금은 청소년을 겨냥한 요금제의 혜택에 비하면 야박하다.
지난해 보성에서 잡혔던 끔찍한 성폭행살해범 노인이나 숭례문에 불을 지른 노인을 거론할 때, 미디어들은 "70대 노인이라 할 수 없는 다부진 체격"이라고들 했었다. 그러나 요즘 그렇지 않은 노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양관리와 질병, 체력관리를 통해 이전보다 다들 훨씬 젊어진 것이다.
그러나 노년을 배려하는 정책 중, 피부에 와닿는 것이라고는 지하철 무임승차, 국가체육 시설에서의 할인정책이 고작이다. '젊은 노인'들이 더 많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더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투입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그들의 여가 활동에 대해서도 배려를 해야 한다. '안방에 곱게 모시는 것'은 젊은 노인들에겐 '유배'다. 그들이 좀 더 '피곤해질 수 있는 권리'를 빨리 찾아줘야 한다. "투표를 뭣하러 하냐"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그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꼬박꼬박 투표장을 찾을 것이다. 유혹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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