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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우리문화엿보기

[스크랩] 드라마 주제곡/전우



라시찬이라는 배우가 있었다. 구릿빛 얼굴에 서글서글한 인상. 강직해 보이는 심성.
70년대 그를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그를 인간미 넘치는 군인의 표상으로 기억한다. 그 모습으로 한껏 인기를 모은 직후, 서른일곱 나이로 요절해 더더군다나 안타깝게 남아있는 배우. 만일 <전우>라는 드라마가 없었다면, 그는 그렇게 대중의 기억 속에 남지도 못했을 것이며 어쩌면 그렇게 요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우>는 1975년 KBS의 6.25 25주년 특집으로 기획됐다. 6.25 당시, 전선에서 벌어졌던 일화들을 중심으로 전우애와 극적 상황 속에서의 인간상을 그렸던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전쟁드라마. 미국의 <전투(COMBAT)>에 맞먹는 한국판 ‘전투’가 바로 <전우>였다.
<장길산>, <야인시대>, <덕이>, <형제의 강> 등 선 굵은 드라마를 연출해 온 장형일 프로듀서가 입사 5년차 프로듀서였을 무렵 입사동기이자 <토지>의 연출자인 김홍종 프로듀서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대본은 이희우, 이철향, 윤혁민 선생 등 여러 작가가 돌아가면서 집필했다.
드라마라야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을 촬영하는 홈드라마가 대부분이고, 특수효과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던 그 아득한 시절에, 거의 100% 야외촬영에 대규모의 군중이 동원되는 본격 전쟁드라마를 찍겠다고 나선 것은 한마디로 무모한 일이었다. 연출부라야 달랑 프로듀서 한 사람뿐. AD는 물론 제작지원부서조차 없어 한 사람이 연출을 하면 나머지 한 사람이 조연출 노릇을 하고 야외조명이나 더빙은 생각도 못할 상황이라, 베니어판에 은박지를 씌워 연기자들의 봉사를 받아 야외촬영을 했다.
카메라는 뉴스용 16미리 필름카메라. 촬영을 하다 밥 때가 되면 프로듀서는 또 촬영을 중단한 채 얼른 식사를 현장 추진해야 했다. 2박 3일 촬영이 끝나고 오면 밤새워 편집하고, 다음 촬영을 위해 군부대를 섭외했다. 그렇게 두 명의 프로듀서가 매주 60분짜리 드라마 한편씩을 만들어냈으니. 요즘 같으면 언감생심 엄두를 못 냈을 일이요 억지로 시켜도 불가능할 일이었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군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했다는 점뿐이었다. 군사정권 시대에 전쟁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군은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었다. 전쟁당시의 기록을 토대로 소재를 제공해주고, 엑스트라로 실제 군인들을 동원해 줬다. 총기를 비롯해 전투용 장비들도 모두 임대해줬다. 스펙터클한 전투신을 위해서는 충무로에서 불려온 특수효과팀이 저렴한 가격으로 ‘봉사’를 했다. 하지만 군이 아무리 전폭적으로 도와줬다 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만한 소프트웨어가 없었다면 <전우>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형일 프로듀서는 KBS 입사 전 신상옥감독의 ‘신필름’에서 조연출로 일을 했다. 텔레비전보다야 훨씬 나았던 충무로의 제작기법들을 접할 수 있었던 셈이다. 입사 2년 뒤인 1973년, 첫 작품을 김성환의 <귀환>이란 전쟁드라마로 선택했던 것도 충무로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작비 지원도 제대로 안되던 때 충무로에서 친하게 지내던 특수효과 팀에게 미래를 보고, 공짜로 해달라며 떼를 써 그럴듯한 전투신을 찍었고, 그것은 <전우>의 모태가 됐다. 그리고 방송사상 첫 본격전쟁드라마를 찍는다는 젊은 열정은 무모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프로듀서도, 연기자도 스텝들도 몸을 아끼지 않고 촬영을 했다. 현곡 한탄강 주변 제트고지 유격장, 그 벌판에서 촬영을 하다 빗물에 말다시피 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하고, 촬영을 하다 산불이 나서 대피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던 도중 교통사고로 숨진 연기자 한명을 벽제 화장장에서 눈물로 보냈다. 결국은 주연배우 라시찬도 세상을 떠났다. 촬영 중에도 수시로 병원신세를 지면서도 매주 쉬지 않고 계속되던 촬영일정 때문에 쉬지도 못했던 그였는데, 잠시 방송이 중단됐던 때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작품이건 사람이건, 그 수식어를 달기까지 남들은 모르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남들이 아는 것과는 다른 기쁨도 누린다. 박수갈채보다 더 뿌듯한 성취감이라는 기쁨. 그리고 그 고통과 기쁨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전우>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방송은 대하드라마의 또 다른 전통을 가지게 됐다.

 

구름이 간다. 하늘도 흐른다.
피끓는 용사들도 전선을 간다.
빗발치는 포탄도 연기처럼 헤치며
강 건너 들을 질러 앞으로 간다.

무너진 고지위에 태극기를 꽂으면
마음에는 언제나 고향이 간다.

구름이 간다. 하늘도 흐른다.
피끓는 용사들도 전선을 간다.
무너진 고지위에 태극기를 꽂으면
마음에는 언제나 고향이 간다.
구름이 간다. 하늘도 흐른다.
피끓는 용사들도 전선을 간다.

 

 

출처 : 천사들의 소리바다
글쓴이 : 으악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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