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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우리문화엿보기

토속신앙과 성


  토속신앙과 성
우리 나라에는 기자신앙(祈子信仰)에서 비롯한 토속신앙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니 남근(男根)이나 여음(女陰)과 비슷한 암석(岩石)이다. 더불어 재앙(災殃)이나 병마의 퇴치를 기원하는 주술목적(呪術目的)으로도 추앙되어오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전라도 정읍(井邑) 백암리(白岩里:흰바위골) 원택부락에는 전라북도 지방민속자료 제 13호로 지정된 소위 "자지바위' 좃바위"라고하는 165cm 크기의 남근석(男根石)이 있는데, 17세기말 또는 18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남근석 맞은편 마을의 됫산 정상 가까이 팔부 능선에는 '민들바우' , 혹은 '농바위'라고 하는 여근석(女根石;岩)이 있습니다.

민들바위는 잘못 건드리면 태인 오로리 쪽의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고 하여, 남근석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이들 외에도 자연석을 세운 선돌과 神木을 포함하여 열두 당산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남근 바위에 치성을 드려 아들 낳기를 바라는 일이나, 동제(洞祭)의 미신적인 요소는 분명 현대사회에 맞지 않지만, 이러한 유형은 해방 전까지 우리 나라 농촌에서 보편적으로 전래되어오는 토속신앙이기도 합니다.
그럼으로 당산을 중심으로 하여 백암리 마을 사람들이 다산과 풍요를 기리고 동리의 안녕을 기원하며 유지해온 전통은 당연한 우리 농촌 민속신앙의 표상입니다.

  장승의 기원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격인 장승에 대한 기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 성과 관련한 두 가지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원의 두 가지가 모두 근친상간에 관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첫번째로 홀아비와 딸의 근친상간에 얽힌 설로 귀향간 아비와 딸이 귀양지에서 아비가 딸을 범하려고 하자 딸이 아비에게 마루 밑에서 개처럼 세 번 짖으면 몸을 허락한다고 했는데 아비가 정말로 딸의 말대로 하였고 이를 본 딸은 목을 메었다고 합니다.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비의 모습을 본 뜬 것이 바로 장승의 첫번째 기원입니다.

두번째는 오누이 간의 근친상간의 경우로, 하루는 임금과 신하들이 오누이가 외딴섬에서 살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오누이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 장승상의 남매를 외딴섬으로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오누이에게는 자녀가 생기게 되었고 이를 안 장승상은 자결을 했습니다.
임금은 인륜을 주장한 장승상의 모습을 만들어 전국에 세우게 되었고, 이것이 두 번째 장승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