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활대축일 공식 지정
신학자들은 ‘공의회가 신앙의 원천을 점검해보고 그것을 현대 상황 속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표현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의회가 신앙을 반추하고 새로운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최초의 세계 공의회였던 제1차 니체아 공의회부터 제1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20차에 걸쳐 개최된 역대 공의회에 대해 알아보는 연재를 마련한다.
<1>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
대부분의 사가들은 니체아 공의회를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콘스탄틴 대제가 소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공의회는 교황이 소집하지만 콘스탄틴은 제국의 황제일 뿐 아니라 종교 영역에서도 최고의 재치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교황이었던 실베스텔 1세(재위 314∼335)가 공의회 소집에 관여했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황제는 적어도 공의회 소집과 관련해 교황의 승인을 얻기 위한 서신을 주고받으려 했으나 많은 시간이 걸려 서한이 도착하기 전에 임의적으로 공의회를 소집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콘스탄틴 대제가 이렇게 급박하게 공의회를 소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313년 그에 의해 종교 자유가 선언됨에 따라 교회는 평화로운 시대를 맞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이단들이 생겨나 분열의 위기에 놓였다. 그리스도교의 내적 분열은 곧 제국의 일치와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였기에 콘스탄틴 대제는 제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한 것이다.
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250∼336년경). 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구별되는 하느님의 세 위격이 동일한 본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부만 완전한 존재’라면서 ‘성자는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할 뿐이기에 완전한 신이 아닌 반신(半神)’이라고 주장하는 이단을 퍼트려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에 따라 325년 5월25일 동·서방 주교들과 교부들은 니체아(현재 터키 북서부에 있는 이즈니크)의 황제 청사에 모여 열띤 논쟁을 벌였다. 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것.
아리우스를 추종하는 이들은 아리우스 사상을 따라 성자가 성부에게 종속된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결국 주장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주교들과 교부들이 아리우스파의 이단적 혐의가 있는 표현들을 삭제하고 성부와 성자가 온전히 똑같은 하느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일한 본질을 갖는 한 분 하느님임을 교회의 정통 신앙으로 공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포된 것이 바로 ‘니체아 신경’이다.
공의회는 또 예수부활대축일에 대한 논의를 거쳐 대축일 거행 날짜도 공식적으로 지정했다. 각 지역교회마다 부활대축일을 기념하는 날이 약간씩 차이가 있거나 유다인들의 달력에 따라 니산달 14일에 예수 부활을 기념했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모든 사람들이 세계적인 축일을 같은 날에 거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춘분 이후 다가오는 만월(滿月) 다음 주일을 부활대축일로 지내도록 선포했다.
교부들과 주교들은 처음으로 열린 세계 공의회라는 기회를 이용해 예정에는 없었지만 교회 내에서 제기되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짚고 난 뒤 각 지역 교회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원칙과 규범 20여개도 마련했다.
제1차 니체아 공의회는 처음으로 열린 세계 공의회로서 이후 교의적인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교회의 정통성을 대변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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