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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① 이맘때는 늘 아름다웠다

하동① 이맘때는 늘 아름다웠다

시인 김동환은 봄의 서정을 탁월하게 풀어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꽃향기를 실어올까,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하늘 빛깔이 저리 고울까, 라고 노래했다. 시인이 노래한 남촌은 지금 섬진강 끝자락에서 찾을 수 있다.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 한바탕 절경을 펼쳐놓는, 먼 바다에서 달려온 봄기운이 숨을 고르는, 우리 땅의 새봄이 열리는 그 곳, 경남 하동이다.

  




◆지리산 고로쇠의 본향
하동의 봄은 축제로 물든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산수유와 유채, 매화와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달포 간격으로 다채로운 축제가 펼쳐진다. 수목들이 맹렬한 기운으로 북진하는 봄기운에 무장해제를 당하듯,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들이 축제의 열기에 스르르 빗장을 푼다.

   고로쇠 약수제는 하동 봄 축제의 서곡에 해당된다. 매년 경칩 무렵 청학동 일원에서 개최돼 전국 제일이라는 지리산 고로쇠의 맛과 효능을 확인하고 뭍으로 올라온 봄기운을 느껴볼 수 있다.

   봄에 하동을 찾을 요량이면 고로쇠에 대해 알고 가는 게 좋다. 고로쇠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며 한반도 전역에 자생한다. 이름은 그 수액이 뼈에 이롭다고 해서 붙여진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했다. 실제 고로쇠 수액은 칼슘과 칼륨, 마그네슘 등 무기질과 미네랄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이 다량 함유돼 골다공증, 위장병, 신경통, 피로 해소에 효과가 있다. 특히 청학동을 감싼 지리산의 고로쇠 수액에는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셀레늄 성분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청학동, 신선이 노닐던 자리?
청학동은 하동 청암면 묵계리에 속한 산골 부락이다. 본래 지명은 학동이었다.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이 은거하다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 속 이상향에서 이름을 빌려와 지명으로 쓰고 있다. 전설 속 청학동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닐고 전쟁, 기근, 질병이 없다. 하지만 현실의 청학동은 그렇지 못했다. 푸른 학도 없을뿐더러 한국전쟁 시기엔 국군과 빨치산이 지리산 골짜기인 이곳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기근도 늘 가까이 있었다. 청학동은 예나 지금이나 여름이 없다. 봄이 무르익으면 어느새 가을이다. 지리산의 남쪽 봉우리인 삼신봉(1284m) 아래 해발 800m 고지대에 자리한 탓이다. 여름이 없다 보니 농사짓기가 여의치 않았다. 청학동 사람들은 벼농사가 어렵자 화전을 일구고 벌을 치고 숯을 굽고 산나물과 약초를 캐어 생활을 영위했다.

   전쟁으로 마을 전체가 소개(疏開)되고 곡식이 자라기 힘든 곳이지만 청학동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휴전 후 7~8년이 흐르자 한 집 두 집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유불선(儒彿仙)과 동학, 서학 등을 취합해 정립한 '유불선합일갱정유도'를 부여잡고 자력갱생의 길을 모색했다. 1970년대 흑백TV에 '지리산 골짜기 이상향에 숨은 사람들'로 소개될 때까지 바깥 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살았다.

   21세기 청학동에선 상투 틀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사서삼경을 논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42가구 230여 명 주민 중 산대나무(山竹)로 지붕을 이은 옛집에서 사는 이들은 손으로 꼽는다. 사랑채 툇마루에서 글을 읽던 댕기머리 동자들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마을 초입부터 산채 비빔밥과 대통밥, 전통주를 메뉴로 내건 식당 겸 민박집들이 즐비하다. 개발과 상업화의 물결에 유원지가 되다시피 했다. 한자 교육과 예절 학습을 앞세운 체험형 서당은 또 얼마나 많은지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인상적인 박상동(63) 이장은 청학동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청학동이 옛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하동군은 지난해 11월 청학동을 역사ㆍ문화적 가치를 지닌 전통마을 관광지로 지정했다. 청학동에 선조들의 생활을 경험해보는 전통문화 체험마당과 민속박물관, 전통민속관, 저잣거리와 주막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물론 현실이 워낙 부박해 옛 모습을 다시 보길 바라는 박 이장의 소망이 이뤄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리산에 스며든 다향(茶香)
고로쇠 약수제가 하동 봄 축제의 시작이라면 5월에 열리는 야생차문화축제는 그 대미를 장식한다. '왕의 녹차와 함께 하는 여행(餘幸)'이란 슬로건을 내건 올해 야생차문화축제에 참여하면 지리산 야생차나무에서 수확한 잎으로 만든 고급 녹차를 음미하며 심신을 고양시킬 수 있다.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가 재배된 지역이다. 화개면에 세워져 있는 대렴공추원비에는 쌍계사 인근이 차의 시배지라고 적혀 있다. 하동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화개 삼거리와 십리벚꽃길을 지나면 이르게 되는 석문마을과 신촌마을이 이에 해당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화개)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라고 전해진다.

   차 시배지인 화개의 차밭은 익히 보아온 그것과 달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전남 보성의 기업형 다원(茶園)처럼 계단식으로 보기 좋게 조성된 차밭이 아니다. 제멋대로 씨가 뿌려진 듯 야생차밭이 산재해 있다. 특히 척박한 비탈지일수록 차나무가 무성한데 골을 따라 가지런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최근에 조성된 평지의 차밭은 보성처럼 반듯하게 고랑이 나 있다. 또 일부 산비탈 야생차밭에도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십 년간 전지작업을 통해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고랑을 만들어놓았다.

  



◆사랑이 꽃피는 십리벚꽃길
고로쇠와 야생차가 지리산의 선물이라면 흐드러진 벚꽃길은 섬진강 수계가 빚어내는 수채화로 통한다.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순 개화기가 되면 섬진강 강변은 흐드러진 벚꽃을 보기 위해 찾아온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십리벚꽃길은 연인이 함께 걸으면 그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고 알려져 '혼례길'로 불린다. 완연해진 봄 햇살 아래에서 순백의 꽃비를 맞으며 걷는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고 한다.

   섬진강변 벚꽃길 산책은 야간에도 가능하다. 하동군은 지난해 십리벚꽃길 내 벚꽃터널에 400W짜리 투광기 20개 등 경관 조명을 설치했다. 벚꽃 개화 기간 평일에는 일몰부터 자정까지, 주말에는 일몰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조명을 밝히게 된다.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간에 달빛과 조명의 조응을 받으며 꽃길을 걸으면 전설 속 이상향의 청학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화개장터 벚꽃축제
매년 벚꽃 개화기에 십리벚꽃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올해 17회 축제는 4월 3~5일 화개면 차문화센터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코레일 부산지사는 매년 벚꽃축제 기간에 맞춰 벚꽃열차 상품을 판매하는데, 지난해에는 총 7회를 운행했다. 오전 6시 30분 부산 부전역을 출발해 사상역과 마산역을 거쳐 오전 10시 25분 하동역(055-882-7788)에 도착해 축제를 즐기고 오후 4시 30분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지난해 요금은 버스 이용료, 점심, 입장료를 포함해 평일 4만7천 원, 주말 4만9천 원이었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연합뉴스 DB센터, 글/장성배 기자(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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