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주무대인 화개장터는 하동 화개면 탑리에 위치한 재래시장이다. 해방 전까지 우리나라 5대 시장 중의 하나로 꼽혔다. 당시 5일장이 서면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팔고 구례, 함양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고 전해진다. 또 여수, 남해, 충무, 거제 등지에서도 섬진강 뱃길을 이용해 미역, 고등어 등 수산물을 싣고와 팔았다고 한다. 화개장터처럼 하동에는 한국 소설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 또는 작품과 연관된 곳이 많다.
◆이병주문학관, 역사의 골짜기에 묻힌 진실 나림(那林) 이병주(1921~92)는 하동이 배출한 대표적인 문인이다. 하동 이명산 자락에 세워진 이병주 문학관을 돌아보면 나림의 문학세계는 물론 그의 삶 자체가 한편의 소설임을 알게 된다.
나림은 학도병 세대다. 1944년 일본 와세다대학 불문과 재학 중 학병으로 동원돼 중국 쑤저우에서 참전 중 해방을 맞이한다. 귀국 후에는 대학 강사를 거쳐 언론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다. 그리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하다 박정희의 5ㆍ16 쿠데타를 비판하는 관점의 논설을 써 혁명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는다. 2년 7개월 만에 출소해 1965년 '소설ㆍ알렉산드리아'를 잡지 '세대(世代)'에 발표하며 등단한다. 옥고를 치르긴 했지만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림은 마흔네 살 늦은 나이에 작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타계할 때까지 8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남긴다. 등단 이후 27년간 매달 평균 원고지 1천여 장을 써내려간 초인적인 집필이었다. 그의 다작은 원고료로 충당해야 할 돈의 용처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과 일부 작품의 태작(馱作) 가능성을 말해주는 근거로 종종 인용된다. 하지만 당대 문단에 그만큼 파란만장한 편력과 박람강기(博覽强記, 여러 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기억함)의 지식을 갖춘 이가 없었음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나림의 작품은 방대한 분량뿐만 아니라 문학적 측면에서도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남북 이데올로기의 대립,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지나오며 겪은 체험을 그만의 자유롭고 유려한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탄탄한 구성과 이야기 전개가 소설문학 본연의 서사성을 구현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나림의 대표적인 어록으로 꼽히는 두 문장은 나림 문학의 지향점을 잘 드러낸다. 그의 집필 과정은 드러나고 공인된 사실이 아니라 역사의 이면에 묻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해내는 작업이었다.
이병주 문학관은 지난해 봄 나림이 나고 자란 하동 북천면에 조성됐다. 전시관, 창작실, 강당 등을 갖추고 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친필 원고와 펜 조형물이 인상적인 전시실은 나림의 생애를 4가지 테마로 나눠 구성해놓았다. 제1구역은 '냉전시대의 자유인, 그 삶과 문학', 제2구역은 '한국의 발자크, 지리산을 품다', 제3구역은 '끝나지 않은 역사, 산하에 새긴 작가혼', 제4구역은 '아직도 계속되는 월광의 이야기'이다. 제4구역 옆에는 집필실이 재현돼 있는데 검은 뿔테 안경과 콧수염의 나림이 한복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있다. 지난 시절 고뇌하는 청춘들에게 역사의식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해주던 작가의 풍모를 체감할 수 있다. *관람시간 9~18시(월요일 휴관), 055-882-2354
◆최참판댁, 평사리문학관 - 서희와 길상의 자취를 찾아서 하동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지이다. 현재 최참판댁, 평사리문학관 등 토지와 관련된 시설이 조성돼 있다.
최참판댁은 하동군이 30억 원을 들여 2003년 완공했다. 소설에 묘사된 최참판댁이 고증을 거쳐 14동의 한옥으로 탄생했다. 안채, 별당, 초당, 행랑 등 각 건물에는 소설 속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 각 건물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묘사됐는지,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설치돼 방문객의 이해를 돕는다. 최참판댁에선 체험 관광도 즐길 수 있는데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 등 민속놀이가 상시 운영된다.
평사리문학관은 2004년 토지문학제 개최에 맞춰 개관했다. 최참판댁 대문 앞 대숲을 지나 오솔길을 오르면 단층 기와건물인 문학관에 닿게 된다. 토지 등장인물들이 하동에서 어떻게 삶을 영위했는지 소개하고 있다. 제1회 토지문학제에 맞춰 하동을 방문한 박경리가 남긴 글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작가는 평사리를 둘러본 후 "생명과 우리 민족에 대한 슬픔, 눈물, 사랑으로 토지를 썼다는 깨달음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외에도 화개동시(花開洞詩)를 남긴 최치원, '하동아 우리 하동 아름답고 영원하라'고 노래한 시인 정공채 등 하동과 연관된 작품과 문인들에 대해 엿볼 수 있다. *관람시간 9~18시(연중 무휴), 관람료 1천 원, 055-880-2950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장성배 기자(up@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