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은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아이디 jjan2369 님이 2008.07.09 10:33 에 올린 답변글입니다>
연옥 교리는 그 근거를 성경에 두고 있으며,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굳게 믿었던 신앙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인들이 연옥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죄의 종류에 대한 인식과 그리스도의 대속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식in에서 limslims2님이 올리신 질문과 비숫한 질문에 답변을 두어번 했는데, 그 글을 토대로 부족한 부분은 수정을 조금 하여 이 답변글을 아래와 같은 순서로 서술하지요.
1) 연옥의 정의
2) 연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
3) 연옥을 뒷받침하는 성경의 구절들
4)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증언들과 카타콤바에서의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들이 수없이 출두됨
1) 연옥의 정의
연옥이란 "지상에서 대죄를 사함받았으나 그에 대한 잠벌을 다 치루지 못한 또한 소죄가 남아있는 영혼이 천국으로 승천하기 이전에 그 영혼이 불로써 소죄와 죄의 역사로부터 정화받는 장소나 아니면 상태"를 가르킵니다.
대죄로 인하여 하느님과 관계가 영구히 끊어진체 지상에서의 삶을 마친 이들은, 지옥으로 갑니다.
대죄에 따른 잠벌을 지상에서 모두 치룬데 소죄도 남아 있지 않은 영혼은,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한 뒤에 즉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위에 밞혔듯이 대죄에 대한 잠벌을 치루지 못했거나 소죄가 남아있어 온전히 깨끗하지 않은 영혼은 연옥에서 정화를 받습니다. 이 정화는 일종에 불로써 이루지는 것이기에, 연옥에서의 정화는 어떠한 형태의 고통이 동반됩니다. 정화를 마친 영혼은, 그 즉시 천국으로 승천하지요.
연옥의 모든 영혼들은 하느님의 은총의 지위 아래에 속해 있습니다. 연옥의 영혼들은 모두 빠짐없이 천국에 향해 있습니다.
2) 연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
개신교가 연옥교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간추릴 수 있는데 첫째로 죄를 대죄와 소죄로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 죄에 대한 잠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셋째로 연옥 교리가 그리스도의 대속공로를 감소시킨다는 오해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고통을 감당하셨는데, 왜 우리가 또 연옥불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이것이죠.
첫번째 문제부터 살펴보면.....
우선 대죄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그대로 단절되는 은총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죽을 죄 즉 사죄이기에, 지상에서 고해성사나 상등통회로 사함받지 못할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소죄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지만 역시 영혼을 오염시키는 심각한 죄입니다. 성경에서는 대죄를 하느님을 뵙지 못하게 하는 죄들 (갈라 5:19), 마땅히 죽어야 하는 죄들 (로마 1:29), 암흑에 이르는 죄들 (2고린 6:15)로 규정하고 있고, 소죄는 영혼이 하느님께로 향해 있으나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에서 흘러나오는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요한 1:8-2:2, 5:16-17). 하지만 소죄니깐 소죄는 계속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손가락을 잘라도 죽지는 않는다고 해서 일부러 손가락을 자르지는 않습니다. 이와같이 소죄도 역시 영혼을 오염시키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부터 우리의 육신를 오염시키지 않듯이 우리의 육신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영혼도 온갖 소죄들로 더렵혀서는 안됩니다. 소죄를 반복적으로 짓게 되면 점점 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주님과 그래도 단절되는, 교회의 몸으로부터 단절되는 대죄를 지을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두번때 문제를 살펴보면.......
초대교회에서는 각죄에 따라 행하여야 할 보속을 엄격히 규정하였다는 사실과 성경의 근거들을 보시면 ( 민수 14, 10-23, 민수 20,12 신명 32, 51-52 )하느님께서는 죄는 죄대로 용서해주시지만 그에 대한 잠벌까지 면제해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재 문제를 정리해 보자면......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네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의 제사를 통하여 우리 모두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통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연옥에서 고통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개신교 목사들도 연옥 교리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점이더군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으로 말이암아 우리를 구속하셨다면, 주님의 수난공로가 우리들에게 어떻게 베풀어지느냐...이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미묘하지만 굉장히 결정적인 차이점이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개신교는 -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온 인류를 구속하셨다. 따라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고통을 감당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된다."
하지만 천주교는 -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대속자 뿐만 아니라, 또한 인류의 대표자로 십자가상에서 온 인류를 구속하셨다. 따라서 누구든지 참으로 고통 당하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되면 참으로 부활하시어 참으로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된다."
즉 우리가 고통을 겪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통이 모자라서 우리가 채우는 개념이 아니라 (균형잡힌 개신교 목회자 분들도 가톨릭의 연욕 교리를 이런 의미로 잘못 받아들이더군요....), 우리의 고통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영생을 얻는 과정일 뿐입니다.
아래의 성경 구절들을 한번 묵상해 보세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으로 고난을 겪으셨으니, 여러분도 같은 각오로 무장하십시오. 육으로 고난을 겪는 이는 이미 죄와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1베드 4:1)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1베드 4:16)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 8:17)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 예수님
위의 성경 구절들을 비추어 볼때 주님과 고통을 함께 겪지 않으면 역시 그분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상에서 겪는 고통이나 연옥불에서 겪는 고통은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에 온전히 참여하기 뒤한 준비과정인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또 의문이, "연옥에서 그리스도와 온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면, 지상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인데, 우리가 지상에서 보속을 모두 마치고 십자가상에서 당신을 성부께 바치신 속죄제사에 온전히 참여해거 지상에서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망덕을 품은체 신앙생화를 하면, 연옥에서 고통스럽게 고통을 받으려 하지 않겠지요. 실제로 5세기의 대교부 성 아우구스티노는 "연옥에서 보속을 마칠 생각은 하지 말라. 연옥불에서의 고통은 그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이다"라고 역설하였지요.
3) 연옥을 뒷받침하는 성경의 구절들
먼저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 인정하지 않는 마카베오서의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제2경전에 대한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루어야 할 이슈가 아니지만, 간단히 말해서 가톨릭의 구약정경화는 모든 사도전승의 교파들이 받아들인 70인역을 토대로 이루어졌지만, 개신교에서는 얌니아 회의에서의 정경목록을 따르기 때문에 이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 "그런 다음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물을 바쳐 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 12:43-46)
위의 구절은 사후에 죄로부터 온전히 해방되지 못한 영혼이 하느님 품으로 가기 이전에 머무르는 장소나 상태가 있음을 분명히 가르키고 있고, 이 장소나 상태는 바로 연옥을 의미합니다. 또 지상에서의 기도로 정화 중에 있는 영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 가르쳐 주고 있구요.
-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마다 한 일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날은 불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한 일이 어떤 것인지 그 불이 가려낼 것입니다.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삯을 받게 되고, 어떤 이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 (1코린 3, 13-15절)
개인적으로 위의 구절이 연옥 교리에 대한 가장 명확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하지 못한 영혼이 불로써의 정화 이후에 구원을 받는다는 연옥교리를 성 바오로 사도가 그래도 증언합니다.
-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테 12:32)
사후의 세계에서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암시하십니다. 이곳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지요.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테 5:25-26)
- 예수님의 이 비유는, 완전히 깨끗하지 못하여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영혼은 깨끗해 질 때까지 연옥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연옥 교리와 그대로 부합합니다. 참고로 고대 교부 테툴리안 (Tertullian)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Tertullian은 후에 몬타니즘이라는 이단파에 빠져서 도리어 자신이 변호한 정통교리를 공격하기 까지 하였지만 그가 몬타니즘으로 배교하기 이전까지의 저서들은 인정을 받지요)
Tertullian
That allegory of the Lord [Matt. 5:25-26] . . . is extremely clear and simple in its meaning . . . [beware lest as] a transgressor of your agreement, before God the judge . . . and lest this judge deliver you over to the angel who is to execute the sentence, and he commit you to the prison of hell, out of which there will be no dismissal until the smallest even of your delinquencies be paid off in the period before the resurrection. What can be a more fitting sense than this? What a truer interpretation? (The Soul 35 [A.D. 210]).
- 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나머지 죽은 이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행복하고 또 거룩한 사람입니다. (묵시 20:4-5)
잘 읽어보시면 첫번째 부활과 일종의 두번째 부활이 있는데, 첫번째 부활에 참여한 이들은 피로써 예수님을 증거한 순교성인들이고 (즉 정화가 필요없는 영혼들) 나머지 이들은 일종의 두번째 참여한 영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천국와 지옥밖에 없다면 묵시록에 나와있듯이 한 부류의 영혼들의 부활이 지연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또한 연옥의 정화가 고통의 불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구절들을 소개합니다.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베드 4:1)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 버리는 불이십니다." (히브 12:29)
4)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증언들과 카타콤바에서의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들이 수없이 출두됨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이 보내신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리를 모두 계시하셨고, 이 계시진리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에게 전해지고, 또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또 그들의 후계자들에게...이러한 사도계승을 통하여 계시진리는 성령의 보호하심을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온전히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의 직계자듫이 보존하고 신봉했던 교리들이 무엇인지를 관찰하는 것은, 초대교회는 어떤 교리와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교부들은 사후세계에 깨끗하지 못한 영혼이 정화를 받는 장소나 상태가 있다는 것을 믿었을까요?
Origen
If a man departs this life with lighter faults, he is condemned to fire which burns away the lighter materials, and prepares the soul for the kingdom of God, where nothing defiled may enter. For if on the foundation of Christ you have built not only gold and silver and precious stones (I Cor., 3); but also wood and hay and stubble, what do you expect when the soul shall be separated from the body? Would you enter into heaven with your wood and hay and stubble and thus defile the kingdom of God; or on account of these hindrances would you remain without and receive no reward for your gold and silver and precious stones? Neither is this just. It remains then that you be committed to the fire which will burn the light materials; for our God to those who can comprehend heavenly things is called a cleansing fire. But this fire consumes not the creature, but what the creature has himself built, wood, and hay and stubble. It is manifest that the fire destroys the wood of our transgressions and then returns to us the reward of our great works. (Patres Groeci. XIII, col. 445, 448 [A.D. 185-232]).
"Accordingly the believer, through great discipline, divesting himself of the passions, passes to the mansion which is better than the former one, viz., to the greatest torment, taking with him the characteristic of repentance from the sins he has committed after baptism. He is tortured then still more--not yet or not quite attaining what he sees others to have acquired. Besides, he is also ashamed of his transgressions. The greatest torments, indeed, are assigned to the believer. For God's righteousness is good, and His goodness is righteous. And though the punishments cease in the course of the completion of the expiation and purification of each one, yet those have very great and permanent grief who are found worthy of the other fold, on account of not being along with those that have been glorified through righteousness."
Clement of Alexandria,Stromata,6:14(post A.D. 202),in ANF,II:504
Tertullian
That allegory of the Lord [Matt. 5:25-26] . . . is extremely clear and simple in its meaning . . . [beware lest as] a transgressor of your agreement, before God the judge . . . and lest this judge deliver you over to the angel who is to execute the sentence, and he commit you to the prison of hell, out of which there will be no dismissal until the smallest even of your delinquencies be paid off in the period before the resurrection. What can be a more fitting sense than this? What a truer interpretation? (The Soul 35 [A.D. 210]).
Cyril of Jerusalem
Then we make mention also of those who have already fallen asleep: first, the patriarchs, prophets, apostles, and martyrs, that through their prayers and supplications God would receive our petition, next, we make mention also of the holy fathers and bishops who have already fallen asleep, and, to put it simply, of all among us who have already fallen asleep. For we believe that it will be of very great benefit to the souls of those for whom the petition is carried up, while this holy and most solemn sacrifice is laid out (Catechetical Lectures 23:5:9 [A.D. 350]).
Augustine
There is an ecclesiastical discipline, as the faithful know, when the names of the martyrs are read aloud in that place at the altar of God, where prayer is not offered for them. Prayer, however, is offered for other dead who are remembered. It is wrong to pray for a martyr, to whose prayers we ought ourselves be commended (Sermons 159:1 [A.D. 411]).
Temporal punishments are suffered by some in this life only, by some after death, by some both here and hereafter, but all of them before that last and strictest judgment. But not all who suffer temporal punishments after death will come to eternal punishments, which are to follow after that judgment (The City of God 21:13 [A.D. 419]).
That there should be some fire even after this life is not incredible, and it can be inquired into and either be discovered or left hidden whether some of the faithful may be saved, some more slowly and some more quickly in the greater or lesser degree in which they loved the good things that perish, through a certain purgatorial fire (Handbook on Faith, Hope, and Charity l8:69 [A.D. 421]).
그리고 연옥교리의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는, 바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초대교회의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대부분 어떤 영혼을 하느님 품으로 데려가 달라는 내용이 큰 틀을 이룹니다. 그런데 만약 천국과 지옥 뿐이 없다면, 죽은 이들과 기도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영혼이 지옥에 있다면 그 영혼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영구히 단절되어 도무지 하느님을 뵐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고, 천국에 있다면 온전히 하느님의 신성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는데 하느님 품으로 데려가 달라는 기도는 장황상 맞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는 성인의 통공을 믿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식구인데, 크게 지상 전투교회, 천상 개선교회 그리고 연옥 단련교회로 나뉘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룸으로 지상에 있든,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든 아니면 연옥에어 정화받고 있든 서로를 위하여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천상의 성인들에게 전구를 청하여 그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고, 또한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그래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가 아닙니다. 몸 전체는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받으며 서로 연결되어 하느님의 계획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골로 2:19)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Prayers for the Dead)를 몇몆 소개합니다. 카타콤바 지하묘지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지켰던 성스러운 곳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존하고 믿었던 신앙이야말로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신앙인 것이지요.
그들이 죽은 이들을 위한 (즉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 기도는 대부분 아래와 같습니다.
Mayst thou live among the saints...... (당신이 성인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May God refresh the soul of . . . ; (하느님께서 ( )의 영혼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Peace be with them (평화가 그들과 함께)
그리고 성인의 통공이 결코 가톨릭이 새롭게 첨가한 신앙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카타콤바에서 출두된 성인들에게 전구를 청한 기도문을 몇몆 소개합니다.
"Martyrs, holy, good, blessed, help Quiracus." (순교자들이여, 거룩한 이들이여, 의로운 이들이여 복받은 이들이여, 퀴라쿠스를 도와주소서)
"Peter and Paul, help Primitivus, a sinner." (베드로와 바오로여, 죄인인 프리미부스를 도와주소서)
"Januaria, take thy good refreshment, and make request for us." (자누아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간청하여 주소서)
그리고 아래는 교부들의 가르침입니다.
Origen
"But not the high priest [Christ] alone prays for those who pray sincerely, but also the angels . . . as also the souls of the saints who have already fallen asleep" (Prayer 11 [A.D. 233]).
Cyprian of Carthage
"Let us remember one another in concord and unanimity. Let us on both sides [of death] always pray for one another. Let us relieve burdens and afflictions by mutual love, that if one of us, by the swiftness of divine condescension, shall go hence first, our love may continue in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our prayers for our brethren and sisters not cease in the presence of the Father’s mercy" (Letters 56[60]:5 [A.D. 253]).
Methodius
"Hail to you for ever, Virgin Mother of God, our unceasing joy, for to you do I turn again. You are the beginning of our feast; you are its middle and end; the pearl of great price that belongs to the kingdom; the fat of every victim, the living altar of the Bread of Life [Jesus]. Hail, you treasure of the love of God. Hail, you fount of the Son’s love for man. . . . You gleamed, sweet gift-bestowing Mother, with the light of the sun; you gleamed with the insupportable fires of a most fervent charity, bringing forth in the end that which was conceived of you . . . making manifest the mystery hidden and unspeakable, the invisible Son of the Father—the Prince of Peace, who in a marvelous manner showed himself as less than all littleness" (Oration on Simeon and Anna 14 [A.D. 305]).
위는 메토디우수가 성모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는 아름다운 기도문입니다.
어떤 개신교도들은 셩경에는 연옥이란 단어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이 교리를 배척하는데, 같은 논리라면 성삼위일체 교리를 신봉해서는 안됩니다. 이와같이 연옥이란 단어가 나타나 있지만 그 뜻은 성경에 분명히 밣혀져 있습니다. 위의 성경 구절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교부들의 증언을 비추어 볼때, 연옥교리와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신봉하던 당연한 신앙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교부들의 증언들을 모은 사이트들을 몇몇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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