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임냐 아차...’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성호를 그으며, 말하는 내 입술이 떨리고 있다. 서툴지만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며 미사 경본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등 뒤에서는 흐르는 식은땀은 수도복을 적시고 있음을 느낀다.'러시아에 온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은 내가 아직 서투른 러시아 말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데, 자꾸 눈이 앞에 계신 마리아 할머니께 솔리고 있다. 맨 앞자리에 앉은 마리아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얼마나 기다렸던 미사였을까?’ 난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할머니에게서 이 미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 평생을 미사에 참석하고 싶어 기다리던 미사가 아니었던가?' 소비에트 연방시절(소련) 폴란드에서 러시아의 동쪽 끝으로 이주해 온 마리아 할머니는 가톨릭 미사에 참석하고 싶어, 성당을 찾았으나 이곳은 소련은 이미 ‘침묵의 교회, 신앙의 박해’가 시작된 지 오랜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할머니의 꿈은 죽기 전에 단 한 번의 미사에 참례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셨다. 그래서 미사가 봉헌 될 날을 기다리며 5년을 보냈고, 그리고 다시 기도하며 희망을 가지고 10년을 그리고 또 다시 25년 이렇게 세월이 흘러 죽기 전에 미사를 봉헌 할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절망의 끝자리에서 주님께서는 소련의 해체와 러시아의 독립으로 인해, 동토의 땅에 가톨릭 전례가 다시 부활되었던 것이다. 마리아 할머니의 기다림은 40여년이 지나서야 할머니께서 원하시던 미사가 우수리스크 땅에서 봉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긴 기다림의 기도와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그 오랜 세월의 그 꿈은 현실이 되었고, 이제 러시아의 동쪽 우수리스크에는 작은 믿음의 공동체(성당)가 생겨났다.
수십 년 동안 로마 가톨릭 미사를 기다려 온 마리아 할머니는 사회주의가 끝나고, 블라디보스톡에 가톨릭 신부가 와 있다는 소문을 듣자, 손녀에게 한통의 편지를 쓰게 합니다. ‘죽기 전에 이곳 우수리스크에서 미사를 한 대만 봉헌해주십시오’ 이렇게 시작한 미사가 우수리스크에서는 80여년의 긴 세월동안 침묵의 교회로 남아 있던 이곳에 거룩한 주님의 성찬례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원하는 시간대에 참례할 수 있지 않은가! 차를 타고, 아니 걸어서 10분이면 원하는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는 평생을 단 ‘한 대의 미사만 이라도 참례할 수 있다면...’이라고 소원을 빌며 40여년을 기다린 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너무나 가깝게 있기에,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기에,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마리아 할머니가 남겨 놓은 그 믿음의 씨앗은 더욱 값진 보화가 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 시기, 학교에서 '하느님은 인간이 만든 우상'이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웠던 손녀에게 말없이 로사리오를 받치며 기도하던 마리아 할머니의 그 믿음은 수십 년 동안 교회를 박해하던 그 자리에, 당신의 끊임없는 간구와 기도 그리고 인내를 통해서 가톨릭 성당이 다시 재건될 수 있는 기초가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러시아의 한 도시 우수리스크에서만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박해와 숨은 기도의 힘으로 가톨릭 신앙을 지켜 온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 러시아의 각 도시에는 다시 복음의 손길이 시작되고 있다.
동토의 땅, 옛 소련 지역에 옛 가톨릭 신자들을 찾으며 다시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 나서며, 9년이란 세월을 러시아 땅에서 보냈다. 그 날들 속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았던'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모범을 배우며,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가서 쓰러져가는 교회를 세워라"라는 말씀처럼, 그 땅에 신앙의 재건을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선다. 이것이 내가 러시아 땅에서 현존하는 이유이다. 이제부터 동토의 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이 글은 2009년 8월부터 월간 잡지
[참 소중한 당신]에 연재된 글의 원본입니다.
글의 내용과 사진은 연재된 잡지사의 내용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 하느님 품에 귀천하신 마리아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
손녀 결혼식 사진,,,가운데 결혼한 손녀(당시 편지를 썼던 손녀)
마리아 할머니: 손녀로부터 왼쪽 4번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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