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아, 오늘은 어떤 요리입니까?” 앞치마를 두르고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마리오 형제(우리는 신부나 수사를 모두 형제라 부른다)가 방에서 나오면서 물어본다. 새해를 맞이하여 볶은 소고기에 얼마 전에 중국 시장에서 어렵게 구한 떡으로 떡국을 끓이고 있는 냄새가 마리오 형제의 배를 자극 하나보다. 마리오 형제는 미국에서 온 형제다. 러시아에 오기 전 20 여년 동안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생활해온 선교 베테랑이다. 나와 함께 생활한 지 5년이 넘었다. 마리오 형제는 늘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나 아침 커피를 즐기며 책을 읽는 것이 취미인 형제다. 그런 마리오 형제와 살면서 나도 어느덧 아침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가 나의 작은 행복중의 하나가 되었다.
(왼쪽부터: 슬로바키아에 온 뾰트로 형제, 김용철도미니꼬 형제, 이 규덕로제로(한국) 형제들이 우수리스크 수도원 경당에서
기도하는 모습)
내가 생활하는 공동체는 국제 공동체다. 미국에서 온 마리오 형제와 죤 기븐슨 형제, 그리고 슬로바키아에서 온 뾰트로 형제가 나와 함께 생활한다. 우리는 서로 일주일에 두 번씩 순번을 정해 점심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점심은 늘 국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멋진 식탁이 된다. 미국 음식과 때로는 마리오 형제의 필리핀식 점심, 그리고 뽀트로 형제의 뜨거운 국과 함께 먹는 슬로바키아식 식사는 색다른 맛을 낸다. 선교사들이기에 한국의 매운 맛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들의 점심은 늘 생동감이 넘친다.
점심 식사는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물론 기도를 하는 시간 이외에 형제들이 함께 우리들의 공통 언어인 러시아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마리오 형제는 수도원장으로 수도원 살림을 담당하기에, 오늘의 주제는 시장에 갔다 온 얘기로 화제를 시작한다.
양파와 감자, 그리고 각종 야채 가격이 예년에 비해 많이 올랐는데, 오늘도 그냥 레몬을 공짜로 받아오면서, 날씨가 추워져서 홍차를 마실 때, 레몬 한 조각씩 넣고 마시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레냐 할머니의 설명을 다시 하는 마리오의 모습은 때로는 어머니 같은 다정한 느낌을 받는다.
옆에 있던 뽀트르가 생마늘을 조금씩 씹어먹으면서 말한다. “감기에는 마늘이 최고인데..” 슬로바키아에 있을 때, 마늘의 효능을 알고 있었다면서 한국 사람보다도 더 많이 마늘을 먹는 뽀트르는 전형적인 동유럽 사람이다.
나는 한국에서 파견된 선교사이지만, 지금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러시아-카자흐스탄 선교단(이하: 선교단)]의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교단은 현재, 러시아에 3 공동체(생 삐쩨르부르그, 노보시비르스크와 우수리스크) 와 카자흐스탄에 2 도시(알마티와 탄틔그루간)에서 사목한다. . 모두 9개 나라(한국,미국,이탈리아,독일,폴란드,백러시아,리투아니아,슬로바키아,러시아)에서 온 25명의 형제들이 함께 국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문화와 환경이 다른 선교사들이 함께 공동체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이 선교사들의 삶이다. 비록 모두가 다른 삶의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쓰러져가는 교회를 일으키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성 프란치스꼬의 제자들로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가톨릭 교회를 재건하는데 함께 뜻을 모아 생활하고 있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 중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 선교 중인 작은 형제회원들)
선교사로서 살아가면서 많은 현지의 문화와 언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동료 형제들과의 원만한 관계와 서로를 존중하는 개방된 자세야 말로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다른 나라로부터 ‘받는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교회’로 나아가는 과정에 서 있다. 다른 표현으로 지역교회(한국교회)를 위한 봉사에서 보편교회(세계교회)를 위한 선교의 삶이 요청되는 시기이다. 한국교회의 장점이기도 한 교구사제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이기에 지역교회(한국교회)를 위한 튼튼한 디딤돌을 만들어가는데에는 괄목한 성장을 해왔지만, 수도회와 선교회가 한국 교회에서 소수이다보니 보편교회를 위한 해외선교에는 아직도 우리 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러시아의 가톨릭 교회는 한반도와 국경을 맞댄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교회로 남아있다. 또한 이제 나는 한국신부로 러시아에 파견되어 현지 사목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보편교회를 위해 더 많은 사제와 평신도 선교사들이 파견된다면 ‘추수할 곳이 많은’ 러시아 땅에도 더욱 복음화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주님 러시아의 교회를 위해 더욱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주세요!” 이렇게 기도해본다.
2010년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스 노브이고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현재, 우수리스크는 인사이동으로 인해, 이규덕 로제로 수사(한국), 폴란드에서 온 엘리오 신부가 저와 함께 사목한다.)
위의 내용은 [참 소중한 당신]에
실은 글입니다.
내용과 사진이 원본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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