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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영어배움터

이웃과 얼마나 자주 대화를 하세요?

이웃과 얼마나 자주 대화를 하세요?

Posted: 26 Jan 2010 04:27 PM PST


어린시절 우리집은 정릉 주변이었습니다. 단독주택에 살았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웃집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말그대로 이웃사촌 지간이었습니다. 저는 옆집 꼬마와 두살 터울이어서 매일같이 놀곤 했었고, 어머니도 옆집 아주머니와 매일같이 대화하고, 서로 음식을 주고받고, 놀러가서 식사도 하고 오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몇번의 이사를 하고, 고층아파트에 살고 하면서 어느새부터인가 점점 이웃과 대화는 줄어들었습니다. 개를 싫어하는 어머니는 이웃집의 골든 리트리버가 짖을 때마다 짜증을 내셨고, 저는 윗층의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와 복도에서 몰래 흡연을 하는 누군가를 화제거리로 올리며 험담을 해댔습니다. 물론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직업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이웃 하면 어느새부터인가 피해 주지 말고, 혹시 피해를 겪게 되면 바로 경비실에 신고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간혹 친하게 지내는 이웃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특정 이해 관계에 얽힌 사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집과 우리집에 같은 학원을 다니는 자녀가 있다던가 하는 경우 말이죠.

4년여 전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때만 해도 이웃이란 개념에 있어서 한국과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습니다. 처음 이사했던 아파트는  외국인(非미국인)이 훨씬 많은 고층아파트였는데, 옆집에는 중국인이 살았고, 그 옆으로는 인도인, 그리고 그 옆집엔 한국인이 살았는데, 보면 인사만 나눌 뿐,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습니다. 가끔 쿵쿵대는 소음이 나거나 싸우는 소리가 커지거나 하면 여지없이 신고를 받은 직원들이 올라와 피해주지 말라며 주의를 주는 것이 이웃간의 교류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삼촌댁으로 이사를 와서 살게 되었었는데, 삼촌댁은 미국 영화에서 보던 주택만 즐비한 전형적인 상류층 동네였습니다. 그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삼촌댁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터라 외숙모님께 집을 열어두고 가실것을 부탁하고 차로 짐을 나르고 있었는데 한 백인 할머니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더니 저에게 외칩니다.


"Who are you?"

그 할머니는 옆집에 사는 Eve 할머니였죠. 말이 옆집이지 집과 집 사이는 15미터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한국 아파트처럼 두어발짝만 가면 닿는 거리가 아닙니다. 옷을 챙겨 입고, 신을 똑바로 신고 잔디와 아스팔트를 건너 와야만 만날 수 있는 제법 먼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그 할머니는 낯선 자동차가 와서 짐을 나르는 것을 보고, 이웃의 집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긴것은 아닌가 수상히 여기고 집으로 들어오는 '수고'를 감행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할 태세로 전화기까지 들고 말이죠.


제가 이 집 주인과 친척 관계이고, 이사를 왔다는 설명을 하고 나서야  그 할머니는 경계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그 할머니 가족과 삼촌댁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신문을 가지러 앞마당으로 나올 때마다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사실 백인 가정이기에 한국 가정인 삼촌댁과는 아무런 유대 관계나 공통점도 없습니다. 가는 교회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다릅니다. 연령층도 다르지요. 삼촌은 주변 한인 손님들이 자주 오가는 시끌벅적한 가정이고, Eve 할머니댁은 세 자식을 결혼시키고 단 둘이 지내는 퇴역 경찰관 가정이었습니다.

 두 이웃은 끊임없이 서로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과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교류를 합니다. 가끔 한국식 요리들이 쓰레기통 안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거나, 집에서 노래방 기계로 동네가 떠나가게 노래를 불러도 그냥 재미있게 생각할 뿐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집에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치면 묻지 않아도 "장보러 가기 귀찮을테니 음료수랑 맥주좀 줄까?" 하고 알아서 와서 챙겨줍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보던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이웃입니다.

나중엔 저도 덩달아 친해져 자주 놀러가 식사도 하고, 가족 사진도 찍어드리고 하면서 친해져서, 그 집을 떠난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가끔 놀러가서 안부를 묻고 지냅니다. 만약 일면식 없는 사이였다면, 삼촌댁에서 나온 생선쓰레기와 가끔 풍겨오는 청국장 냄새를 가지고 불평하고 경찰에 신고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웃인 이상,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오히려 그런것이 궁금함으로 변하고, 문화의 차이를 재미있어 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5번의 이사를 거쳐 작년 가을에 마지막으로 이사온 곳은 작은 아파트입니다. 옆집에는 아이를 셋을 둔 백인 가정이 있습니다. 몇번 대화를 하긴 했지만 조금 무뚝뚝해 보였습니다. 제가 살던 집에 본래 거주하던 한국인 부부도 '옆집 가정은 왠지 서먹해서 대화를 몇번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지내다가 하루는 집에 돌아와보니 현관문에 이상한 것이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FOR YOU"

아기가 한 솜씨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비뚤비뚤 글씨에 난해한 나비 작품과 그림과 장식에 동전도 몇 개 들어있습니다. 옆집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뚝딱뚝딱 옆집에 사는 검은 눈동자의 아저씨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며칠 후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집에서 구운 쿠키를 담아 옆집 초인종을 눌렀는데 인기척이 없습니다. 결국 집 문앞에 두고 왔는데, 2시간쯤 후에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니 선물상자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4일쯤 뒤, 또 하나의 선물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작은 고무찰흙과 단추를 사용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 넣어두었습니다.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 작품같습니다.

저는 또 이웃집 꼬마 예술가를 위해 쿠키를 구웠습니다. 쿠키만 담자니 너무 허전해서 작은 만화 그림과 함께 넣어 문에 걸어두고 왔습니다.

그런식으로 몇번의 선물이 오가고, 어제 옆집 가족과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 집에는 먼 곳에서 온 친지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만찬을 나누고 있었는데, 자신들은 몰몬 교도(
Mormonism)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제서야 '왠지 서먹하다.'라던 한국인 부부의 증언에 조금 이해가 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예술 작품을 선사하던 꼬마 피카소는 저를 보고 연신 개구장이 웃음을 던집니다. 쿠키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습니다.

과연 이웃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미국이라서 가능한 것일까요? 미국인들은 쿨하고 멋진 사람들이라서 한국 사람들보다 여유가 있는 것일까요?

처음 미국땅을 밟았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인의 눈빛에서 미국인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요즘은 반대로 '왜 한국은 이런 문화가 형성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국에서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기 힘든 이유를 조금 다른 곳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워낙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많습니다. 티비만 틀면 유괴, 살인, 성폭행 등 무서운 사건이 쏟아지는 세상입니다. 당연히 이웃과 함부로 대화하기도 어려워지고, 창문에는 방범창이 당연히 달려있어야 하고, 현관문에는 비디오폰이 가급적 달린 집을 선호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외판원, 신문구독등 불청객도 많습니다. 집이라는 곳이 마치 적군의 침입을 막는 요새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한국도 도회지에서의 삶이 아닌 조금만 교외로 나간다면 사정은 훨씬 나아집니다. 인구가 과밀된 지역에서는 미국도 똑같이 각박한것이 사실입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하루를 보낸 피곤한 몸을 빨리 소파에 던지는 것이 이웃과 막 구운 빵을 나누는 것보다 훨씬 절실할 것입니다. 한국도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이웃과의 교류도 훨씬 많아지고, 삶도 평온합니다. 저는 이웃과의 교류의 열쇠가 바로 '개개인의 삶에 얼마나 여유가 있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서울을 비롯해 대한민국 어느 대도시를 가도 항상 교통 소통이 원활하고, 출근시간에도 버스, 지하철은 항상 빈자리 한두개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삶이 된다면, 아마 회사에서도 서로 덜 스트레스 받을 것이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과도 더 쉽게 친해질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대부분의 인구가 서울에 밀집되어 이토록 복잡한 환경 속에서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웃에게 인사 한 번 건넬 여유 없이 살아야만 할까요? 옆집 꼬마의 그림 한 장이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