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둘째 날 미사를 올렸습니다. 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되는 날이라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에서 시절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어제 미사 후 “어서 나가라!”는 명동성당 평협회장과 그 일행들의 무례하고 거친 언행을 보며 괴이하기는 하나 나름 평신도사도직이 활성화된 모범사례가 아닌가 싶어 우리는 서로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마침 그들 머리 위에 “예비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는 펼침막이 걸린 걸 보고 한 분이 “예비자도 환영한다면서 어째 신부님들을 맞아들이지 않는가!” 하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그들은 머쓱해졌고 우리는 모두 하하 웃었습니다.
밤이 이슥해질 무렵까지 잔뜩 경계심을 품고 성당 입구의 바리케이트를 풀지 않던 그들도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지 하나 둘씩 사라졌고, 문정현, 전종훈, 강정근 외 각 교구 열여섯 분의 신부님들은 피곤한 몸을 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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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해졌지만 명동사람들은 “나가라!” 하고 뉴라이트들은 “성당으로 들어가라!”고 외쳐대는 소리가 뒷전에 맴돕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은 세상과 교회의 경계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런 경계말입니다.
다행히 MBC와 한겨레, 경향신문의 보도를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오시는 분들마다 굶지 말라고 하시지만 저희가 이렇게라도 해서 사람들이 잠시라도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면 그래서 강도 사람도 같이 말려 죽이는 이 무서운 사업을 중단하기만 한다면 열흘도 백날도 단식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예상한대로 정부는 천안함 사고를 선거에 활용할 속셈입니다. 국방부가 사건 원인 발표를 하고, 대통령은 생중계 기자회견으로 뒤를 받치고, 클린턴의 방한으로 이 모든 일을 마무리지어주면 만사는 그야말로 일사천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손쉬운 완승이 예상되는 바, 그럴 경우 4대강의 운명은 파멸을 향하여 달음박질칠 것입니다.
비 내려서 궂은 날씨지만 단식기도회는 은은한 열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비가 그치면 오늘밤은 하늘의 별을 헤는 노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점점 차분해지고 고요해집니다.
내일은 본격적인 허기가 저희를 방문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멀리서라도 기억하여 주시고 미사 중에 교우님들과 함께 기도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강이 어머니시라면 우리의 성모님은 강이십니다. 강이 죽으면 우리들의 성모님도 목숨을 다하시는 것입니다. 본당의 늙으신 어머니들과 성체성혈대축일을 앞두고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해 저희의 기도를 바칩니다.
2010.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의 날에 명동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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