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를 지는 사랑 -◑
우리는 십자가를 떠올리면 희생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하지만, 십자가가 희생이란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예수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사형제도의 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도,
살인 강도죄를 지은 사람도 함께
십자가를 지고 사형을 당했던 것이다.
결국 유한한 생을 살아야만 하는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아야만 한다.
그렇게 유한한 인간이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인간관계를 의미 있게 해주고,
그 모든 관계를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다.
이 사랑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희생이다.
어떤 희생을 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이다.
혼자 외롭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신에게 이렇게 기도하곤 했다.
“주여, 아름다운 여인을 허락해 주소서. 저는 너무 외롭습니다.
주여, 저에게 일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주소서.”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있던 신은
어느 날 드디어 웃으며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말했다.
"그 십자가를 말인가?"
그러자 그는 놀라면서
자기가 원한 것은 십자가 아니라는 것을 강변하며
자신은 ‘아름다운 여자를 원할 뿐’이라고 신에게 간청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얻었다.
그렇게 여자를 얻어서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보다 오히려 자신이 더 불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다가 그는 자칫 여자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기도했다.
"주여, 저에게 칼을 주소서."
그는 그녀를 죽일 계획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여자를 죽이고, 그녀에게서 벗어나
이전처럼 차라리 혼자 사는 생활로 돌아가려 했던 것이다.
그의 이 마음을 알고, 그의 기도를 들은 신은 웃으며 말했다.
"십자가 말인가? 이제 십자가를 보내줄까?"
그는 화가 나서 신을 향해 소리치며 말했다.
"주님은 그녀가 십자가를 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발 저에게 칼을 주십시오."
그래서 신은 할 수 없이 그에게 칼을 내려 주었다.
그는 칼을 받아들고는 즉시 그녀를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도 곧 그 죄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랑은 나를 희생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나를 먼저 희생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고,
상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을 가지게 됨으로서
사랑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사랑은 내가 나를 희생하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반대로 상대방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도 넉넉하고, 비워도 흡족한 마음, 아파도 기쁜 마음,
손해를 보아도 부자가 된 듯한 그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은 실제로는 잃으면서도 늘 마음은 넉넉한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짐을 덜어 내가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기쁨이다.
-최복현의 '상큼한 아침을 여는 기분 좋은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