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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옮김> [세상읽기] 하우스푸어와 88만원세대 / 선대인

[세상읽기] 하우스푸어와 88만원세대 / 선대인

 

»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최근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화제가 되고 있다. 김재영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피디가 출간한 동명의 책이 촉발한 현상이다.

 하우스푸어는 부동산 고점기에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으나 집값이 떨어지면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가계들을 말한다.

이미 수도권에서만 줄잡아 100만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주택가격 하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하우스푸어는 상당기간 화두가 될 공산이 크다.

 

우리 시대의 또다른 화두로 우석훈 박사와 박권일씨가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 비롯된 88만원세대가 있다. 알다시피 저임금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시기에 평균 월급 88만원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든 10대, 20대 젊은이들을 말한다.

 

그런데 필자는 하우스푸어와 88만원세대 사이에 공통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묘한 관계를 본다. 우선, 공통점은 이들 모두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라는 점이다. 하우스푸어야 그렇다 치고, 88만원세대가 부동산 거품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명하자면 이렇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일면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경제 영역은 한껏 비대해진 반면 생산경제 영역은 침체일로를 겪었다. 기업들은 공장을 돌리기보다 부동산투기에 열을 올렸다. 가계도 무리하게 빚을 얻어 주택투기에 가담하면서 은행에 이자 내는 월세생활자로 전락해 씀씀이를 줄였다. 그렇게 빚어진 만성적인 내수침체는 다시 제품과 서비스 수요를 줄여 생산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그 결과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임금 비정규직은 늘어났다.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고용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면서 그 부담을 88만원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88만원세대는 치솟은 집값 때문에 원룸이나 고시촌, 심지어 쪽방을 전전하게 됐다. 결혼해서 애 낳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돼버렸다. 2000년대는 집값, 땅값은 금값이 되는 반면 사람값은 똥값이 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가 88만원세대였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겠지만, 88만원세대는 부동산 거품의 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 가담 여부에서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하우스푸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동산투기 붐에 가담하거나 편승한 사람들이다. 물론 거듭된 정책실패와 아파트 분양광고 수익을 노린 무책임한 선동보도의 책임도 크다. 그렇다고 무리한 탐욕을 부린 가계들의 자기 책임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부동산 투기를 주도한 사람들이 상위 5%의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세대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50~60대 부모세대와 뒤늦게 뛰어든 30~40대가 하우스푸어의 주축이다. 반면 88만원세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거품의 불똥을 맞은 경우다.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재빨리 하우스푸어 구제론을 거론한다. 몇 줄의 글로 선심쓰는 것은 쉽다. 마음 같아서는 필자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이는 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시장 기율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더구나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 막대한 국가채무 형태로 자식세대의 부담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다시 그 부담을 늘리게 될 공산이 크다. 온갖 사고는 기성세대가 저질러놓고 부담은 이미 최대 피해자인 자식세대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이게 자식 가진 기성세대가 할 짓인가.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할 돈이 있다면, 그 돈은 부동산 거품에 책임이 없지만 불똥이 튀고 있는 88만원세대나 단돈 몇만원이 아쉬운 저소득·취약계층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게 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들먹일 것이 아니라 선분양제와 같이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는 시대착오적 제도부터 고치는 것이 옳다.

[한겨레 신문 2010년 8월6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