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관통하는 시기입니다. 죽음과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순교와 부활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뜻 깊은 시간입니다. 그간 명동성당 기도에 함께 해준 많은 분들께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사순절의 첫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사제로 살아온 지 45년, 명동성당에서 맞이하는 이번 사순절은 제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저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동성당에 큰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를 있게 한 신앙의 중심이고, 순교자들의 위대한 삶과 영성이 모셔진 곳이며, 어둠에 쌓이고 억압에 신음하던 사회와 함께 하며 민주화를 이뤄낸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명동성당은 제가 부제품을 받은 곳입니다. 몹시 추웠던 어느 겨울, 부제품을 받으며 진짜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식이 되었다는 기쁨에 한없이 들뜨고 흥분했던 추억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 창끝은 도리어 제 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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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현 신부.(사진/정현진 기자) |
돌아보니 명동성당에서 사계절을 보냈습니다. 200일이 넘도록 기도를 이어왔습니다.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마침내 봄이 왔습니다. 저는 사제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사계절의 변화처럼 거듭 나고 새로 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에 탄식하며 명동성당에 들어오던 초기에는 분노가 많았습니다. 가슴에는 날선 창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 창끝은 도리어 제 심장을 겨누었습니다. 제 오장을 쑤셔대었습니다. 이제 기나긴 기도 끝을 맞이하는 오늘, 제 마음은 명동성당에 들어 올 때의 그 마음과 전혀 다름을 고백합니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동안 예수님께서 제 곁에 머물고 계심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침묵 속에 당신의 삶으로 말씀하시며 순간순간 저를 압도하셨습니다. 성전이란 제 마음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 저잣거리에서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부활하시었습니다. 순교자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도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권력화되고 상업주의에 빠진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바리사이 원로사제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마음 없는 권력 앞에 예수님도 무릎 꿇고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성전은 높이 솟은 화려한 교회 건물이나 교회의 위계질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 그분을 마음에 품은 이들 속에 있습니다.
복음은 고통 받는 이들의 하소연과 눈물을 보듬는 데서
명동성당의 의미는 더 이상 형식적 권위와 과거의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교회인지 아닌지를 통해서만 분별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께서 공생활에 나서시며 처음으로 세상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복음을 말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닮지 않은 제자들의 무리인 교회는 복음적일 수 없습니다. 복음화는 누가 합니까? 복음은 교회의 높은 양반들이 외친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며 권위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은 고통 받는 이들의 하소연과 눈물을 보듬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나 마음은 세속과 다름없는 물질적 욕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요엘2,13)고 하신 회심의 근본을 잃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근원과 진리를 깊이 성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이젠 참 많이 늙었습니다. 갈수록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불면 손마디 마디가 시리고 아픕니다. 그래도 온 마음과 온 힘을 다 바쳐 목판에 한 점 한 점 하느님 말씀을 새기다보면 육체적 아픔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한 이들, 잘못된 제도가 가하는 폭력에 고통 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제 자신과 교회를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언제 마칠지 모를 마지막 시간들을 명동성당 한 구석에서
명동성당에 머무는 동안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저는 당연히 눈엣가시였습니다. 비록 그렇게 힘들고 옹색한 자리였어도 제게는 예수님의 부르심과 초대를 받은 무한한 은총의 공간입니다. 은퇴한 사제로서 언제 마칠지 모를 마지막 시간들을 명동성당 한 구석에서 하루하루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자 영광입니다.
신앙이란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의탁하여 교회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제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도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예 할 것은 예’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언직 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의 뜻과 다른 길을 가는 교회를 보고 외면할 수 없습니다. 피해가서는 안 되며, 피해간다 한들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것은 신앙인의 숙명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그리스도와 깊이 연결되고자 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저는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절 동안 교회에 대하여, 신앙인의 삶에 대하여, 우리의 이웃에 대하여, 세상과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여러분과 함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격려하고 힘을 내는 자리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명동성당에서의 기도 여정이 교회 쇄신과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었듯이 새로운 변화와 만남, 나눔과 연대를 기대하며 예수님을 따라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해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사순절 동안 작지만 소중하고 뜻 깊은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2011년 3월 9일 길위의 신부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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