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앙언어가 기복(祈福)적이고, 교회권력을 안정시키는 권위로 사용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기원으로 한 신앙언어의 핵심이 훼손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공석 신부(부산교구)는 지난 6월 25일 예수회센터에서 '우리시대의 신앙 다시 읽기'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 기존 신앙언어를 현대인의 체험에 따라 재조명하고, 그들의 질문에 응답하면서 해방적 성격을 부여해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특강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주관하였으며, 200여 명의 참석자가 서공석 신부와 이제민 신부의 특강을 통해 '새로워져야 하는 신앙언어'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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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공석 신부.(사진/정현진 기자) |
교회의 언어는 지금도 봉건시대의 유적과 유품으로 존재
서공석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신앙언어가 "현대인에게 그리스도적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직도 가톨릭교회는 중세봉건사회에서나 통용될만한 신앙언어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중세 사회에서 교회는 기득권 집단으로서 학문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경쟁 상대 없이 지배해 왔으며, "오늘도 바티칸 방송이 상징 음악으로 사용하는, ‘그리스도 승리하고, 그리스도 다스리고, 그리스도 명령한다.’(*Christus vincit, Christus regnat, Christus imperat.)는 노래의 가사가 그 시대 교회가 누렸던 영화의 흔적과 그것에 대한 향수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교회의 언어는 지금도 그 시대의 유적(遺跡)과 유품(遺品)들이 청산되지 않고 남아 있는데, 교회 봉사 직무자들의 위계질서와 신분 개념을 비롯해, 몬시뇰(Monsignor), 각하(Excellentia), 전하(Eminentia), 성하(Sanctitas) 등과 같은 중세적 존칭과 복장이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16세기 개신교가 분리된 이후, 가톨릭교회는 반(反)개신교적 언어가 교회의 전통적 신앙언어로 자리 잡은 사실을 문제 삼았다.
"초기 개신교회는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대립시켜놓고, 마리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택하였고, 말씀과 전통을 대립시켜놓고, 전통을 버리고 말씀을 택하였으며, 믿음과 공로를 대립시켜놓고, 공로를 버리고 믿음을 택하였다. 그러자 가톨릭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강조하고, 전통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말씀을 소홀히 하였고, 성사(聖事) 위주의 신앙생활이 되게 하였다."
이어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유럽 중세적 조직과 제도, 그리고 위계질서에 집착하면서 교회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자유로운 토의라는 현대적 의사결정 방식을 차단하여 비효율적 결정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위계질서의 하부 구조에 속한 사람들은 순종이 강요된 나머지, 무기력하고 창의력이 없으며, 공동체의 일을 방관하는 실효성 없는 무리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성당에 흔히 붙어 있는 "모이면 기도하고 나가서는 선교하자"는 말은 "모이면 말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고, 나가서는 앵벌이 하라는 말로 들린다"고 꼬집었다.
신앙은 과거의 신앙언어를 반복하는 게 아니다
서공석 신부는 "신앙은 하느님과의 연대성을 살겠다는 사람의 의식과 실천을 총칭하는 단어"이며, 이들이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때는 역사적, 문화적 여건에 제약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이 신앙언어는 그 종교가 지닌 교리, 경전, 의례 및 공동체의 제도와 법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데 하늘과 지옥이 있고, 하느님이 창조하여 하느님 안에서 끝나는 우주를 떠올리던 과거에 당연했던 신앙언어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읽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성서 경전은 하느님이 하신 말씀, 혹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말하지만, "경전들은 그 말씀과 행적을 녹음 혹은 녹화하여 전달하듯이, 일어난 사실 그대로를 전하는 문서가 아니다. 하느님에 대한 어떤 체험, 혹은 예수에 대한 어떤 체험이 사람들에게 있었고, 그것을 그 시대의 신앙공동체가 그들의 언어 양식으로 표현하여 기록으로 남겨 우리에게 전달된 것들이다." 서 신부는 지금 신자들이 접하는 교회의 의례 혹은 전례도 발생 당시의 문화적 체계와 제약 속에서 과거의 신앙 공동체가 만들었기 때문에, "예전의 관행을 형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무의미한 허례허식으로 보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신앙언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데, 과거의 언어를 반복만 하면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 독백(獨白)"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약성서의 기원에도 예수와 제자들의 만남이 있었고, 예수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구원에 대해 새롭게 체험하였으며, 그들은 그 체험을 그들이 지닌 ‘인식의 망’, 곧 구약성서 언어와 그 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던 문화적 언어로 해석하며 문자로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신앙은 과거의 경전이 전하는 언어만을 반복하는 데에 있지 않다. 신앙인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이미 체험한 바를 전승된 신앙언어에 비추어 새롭게 체험한다. 원초에 하나의 교리(敎理)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정확한 체험이 있었고, 그 체험으로 말미암은 사고와 실천을 동반하는 언어가 있었다. 그 언어는 다른 문화권을 만나면서 다른 언어들을 발생시킨다. 신앙언어가 전승된다는 것은 새로운 역사 안에서 새로운 체험들과 새로운 삶들을 발생시킨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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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현진 기자 |
아이를 낳은 처녀, 세 분인데 한 분인 하느님,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 라는 엉뚱한 이야기가 ... 그리스도 신앙 아냐!
서공석 신부는 '교리'와 관련해, "계시처럼 교리가 위에서 주어진 게 아니다"라며, 하느님의 자유로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구원을 체험하고, 그 체험들이 해석되어 메시지 형태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 '교리'라고 말한다. 그 교리적 표현 자체가 고정불변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전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앙은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언어를 신비라고 무조건 믿는 데에 있지 않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고, 세 분인데 한 분인 하느님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이해되지 않는 언어를 신비라고 무조건 수용하고, 같은 언어만 반복하는 데에 신앙이 있지 않다. 그런 언어들은 그것이 발생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할 때,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동정녀 잉태'의 경우도, 여기서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말은 수태할 수 없는 여인이 수태하였다는 뜻으로, "구원이 인간의 생산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로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은 하느님을 그 기원(起源)으로 한다"는 뜻이다. 결국 '동정녀 잉태'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 안에 발생한 신앙언어이지, 한 여인에 대한 생리학적 정보가 아니다"라고 서 신부는 전한다.
'삼위일체' 교리 역시 "세 분인데 한 분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하느님"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예수를 통해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 수 있고, 우리의 삶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은 참으로 하느님의 숨결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초기 교부들이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전한다.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말도 "마리아의 품위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인식하는 하느님은 참다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명제라며, 이 명제를 새롭게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반복 사용하면, "하느님에게 어머니가 있다"는 엉뚱하고 무의미한 뜻이 전달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교계제도, 유럽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의 산물
서공석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현재 조직과 제도 역시 "과거 유럽의 제국주의와 봉건주의 사회에서 발생해 정착한 것"으로 수직적으로 교회직무자들을 선택하고, 직무를 신분으로 여기던 시절의 유산이라며, 임기가 없는 직무 개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직무에 임하는 사람의 실효성보다는 신분을 더 소중히 생각하던 과거의 제도와 관행인 것이다. 서 신부는 "오늘의 교회가 과거의 제도와 관행을 고수하면서 대다수 교회 구성원들의 참여는 차단되었다" 명령과 복종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의 비효율성을 비판했다.
또한 주일미사 의무, 금육일과 금식일의 관행, 고해성사 의무, 하객들 혹은 문상객들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길게 거행되는 혼배와 장례 전례, 쉬고 있는 신자들에 대한 냉담자 처리와 그들에 대한 대책, 혼배조당의 문제 등 교회가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실천들은 "그 지역 주민 모두가 그리스도 신앙인이고, 그들이 받은 교육 수준이 낮아서, 삶에 대한 정보가 보잘것없던 유럽 중세 사회에서 통용되던 관행들이었다"며, 지금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과거 교회의 언어와 관행을 모두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 봉인(封印)하여, 어느 시대에나 유효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교도권과 관련해, 신약성서를 비롯해서 초기 교회가 교회 안의 직무를 지칭하기 위해 즐겨 사용한 것은 ‘봉사직무’(ministerium)라는 단어였으나, 16세기 개신교의 분열이 있으면서 가톨릭교회는 ‘교도권’(magisterium)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봉사직무’가 섬기는 작은 자(mini)의 직무를 의미하는 반면, 교도권은 가르치는 권한을 가진 큰 인물(magis)의 직무를 뜻한다. 현재 신앙언어가 위기를 겪는 것은 바로 이 교도권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사목지침을 내리려 하는 데에도 그 책임이 있다."
서공석 신부는 "교회 안의 기득권자들은 신앙언어가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여건과는 무관하다고 흔히 생각한다"면서, 신앙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 보편성을 지니지만, 한 시대의 교회가 만들어서 사용한 언어들, 곧 교리, 교회의 조직, 및 실천들 그 자체는 시대에 따라 다른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신앙과 신앙언어를 혼동해서, 그 언어들만이 그리스도 신앙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며, "시대를 착각하여 신앙언어를 사용하면, 그리스도 신앙의 고유함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인류 역사 안에 항상 있는 종교적 욕구를 성취하는 수단으로 착각할 것이다. 결국 신앙은 내세(來世)와 현세를 위한 소원성취를 찾는 길이 되고, 교회는 하느님을 후광으로 삼은 권력 집단이 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공석 신부는 특강 내내 '신앙언어의 새로운 해석'을 주장했다. 서 신부는 "그리스도 신앙언어는 하느님에게 순종하라고 말하지, 사람에게 순종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종교 집단은 과거 인간 문화의 유산을 하느님을 배경으로 정당화하기 쉽고, 종교 집단도 인간의 집단이기에 무지로 말미암은 횡포를 부릴 수 있고 "구실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유혹을 항상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리스도 신앙언어의 핵심은 '섬김'이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언어는 종교라는 인간 집단의 언어일 수는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전달하는 그리스도적 신앙언어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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