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깨달음의 사명을 소홀히 할 때 교회는 맹신자와 광신자를 길러내는 요람이 되고 우상숭배자들의 집단이 될 것이다. 맹신의 집단에서는 부자 되게 해 달라,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해 달라, 건강하게 해 달라는 식의 이기적인 기도소리만 높아진다.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이제민 신부는 지난 6월 25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관으로 예수회센터에서 열린 '지금여기 특강: 우리시대의 신앙, 다시 읽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주제를 통해 교회성장을 목표로 하는 '복음화'라는 말이 가진 '비복음적 요소'를 드러내고, "복음화는 교회의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제민 신부는 "지금의 한국교회가 예전보다 더 성직자 중심적이고 더 근본주의적인 성향으로 흘러간다"며, 그 이유는 교회에 대한 비판이 사라졌기 때문이고, "비판이 없다는 것은 성찰이 없다는 것이며, 성찰이 없다는 것은 교회의 근본에 대하여 깨닫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성찰이 없는 믿음은 자칫 맹신과 광신으로 흐르기 쉽다"고 비판했다.
이 신부는 타의에 의해 광주가톨릭대학의 교수직을 떠나게 되었지만, 본당에서 교리를 가르치게 되면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며 "계속해서 신학교에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복음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고 매일 반복하면서도 복음이라는 단어는 건성으로 대했을 수도 있다"고 고백하며 "나를 본당으로 불러준 그 사건을 은총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때 형님들이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기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겠습니까?"(창세 45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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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민 신부.(사진/정현진 기자)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민 신부는 자신이 가끔씩 주변에서 '진보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사실 "나는 골수 보수주의자이며 전통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왜냐하면 "철저히 복음을 믿고, 철저히 신앙 언어의 원천으로 돌아가서 거기로부터 믿음을 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민 신부를 '교회의 전통과 다르게 가르친다'고 지적하는 이들에게, 이 신부는 도리어 "그들이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이 진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지, 지난 2천여 년 동안 교회가 고백해온 바가 그들이 전통의 이름으로 신앙하는 그 수준의 고백인지 묻고 싶다"며,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불렀지만, "그가 생각한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그리스도와 달랐다"다고,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질책까지 받았다"(.(마르 8,27-33)고 말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라너의 말에 따라, 이제민 신부는 "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천국은 없다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부활의 삶은 없다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동정녀 마리아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하며, 자칫 우리의 신앙이 참된 복음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면 맹신과 광신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우상처럼 숭배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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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이제민 신부는 벨기에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파이프 그림을 소개했다. 이 그림이 유명한 것은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았는데, 그것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파이프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파이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파이프가 그려진 종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제민 신부는 "우리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종이(교의)를 들고 다니면서 그것이 복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천국, 하느님, 예수님, 그리스도, 부활, 믿음, 교회 등에 대한 교의를 종이에 새겨놓고 종이를 절대 진리인 것처럼 받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물으면서 "복음을 깨닫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복음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기쁜소식 우리 자신을 세상에 복음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이제민 신부는 "세상의 복음화는 '그분께서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말만 되뇌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화는 그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내용을 알고 깨닫는데서 비롯한다"며, 우리 교회가 성직자 중심적이고 근본주의 경향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목적이지 않다면, "교회가 복음을 깨닫지 못한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신부는 "복음화는 교회의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면서, 여기서 '복음'이란 <마르코 복음>에서 전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과 '예수님이 복음'이라는 뜻을 지닌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예수 자신이 복음인 까닭은 '하느님의 복음'(1,14)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하느님이 전하신 복음은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이며, 예수는 이를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또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다. 즉, '지금여기'에 이미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천국을 '이 세상을 떠나야 갈 수 있는 먼 나라'로 여기지만 예수는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와 있으며, "너무나 가까워 이 세상을 떠나서는 체험할 수 없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이 말은 곧 하느님이 현존하시기 때문에 "예수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그 자체로 복음"이라는 것인데, 예수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갈릴래아로 갔다면 '이방인이 모여 사는 저 갈릴래아에도 하느님 나라가 와 있음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이고, 예수가 더러운 영이 든 사람, 수많은 병자, 유다인이 기피하는 이방인, 창녀, 세리 등 소외받은 자들에게로 다가간다면 그들 안에도 하느님나라의 씨앗이 뿌려져 자라고 있음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릴래아와 소외받은 가난한 자들을 지나쳐서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민 신부는 "하느님이 보실 때, 우리가 그 자체로 복음"이며, 이를 믿는 게 '신앙'이라고 말한다. 이 믿음에 따라서 예수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하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진흙으로 빚어진 비천한 존재이지만 하느님처럼 거룩한 존재가 되고,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존재가 되고,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한다. 그분의 복음에 따라 우리는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복음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가 그분처럼 복음이 되는 날, 우리도 그분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자신을 세상에 복음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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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현진 기자 |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모두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다
이제민 신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느님을 이 세상 바깥 어딘가에서 찾는다"며 "하느님을 현실 바깥으로 밀어내는" 태도를 비판했다.
"많은 현대인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린다면 교회가 복음에 근거한 신앙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천국과 하느님, 동정 잉태 등 그리스도교의 개념을 부정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전적으로 교회의 책임이다. 교회는 그들의 비판을 예언적 표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한다고 냉담자다, 이단이다, 무신론자다, 비판하기 전에 자기의 신앙이 복음에 근거한 것인지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에 근거하여 신론, 그리스도론, 인간론, 우주론 등을 이해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한다. 교회는 자기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맹신하고 광신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듯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어 '세상의 복음화'란 세상이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는 운동인데, 가톨릭교회는 예수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복음화를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음을 인류에게 깨치려고 하기보다 신자 수 불리기로 복음화를 오해하는 것"이다. 복음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나 천국 갈 것을 희망하는 사람으로 채워진 세상을 복음화한 세상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국을 세상을 떠나야 갈 수 있는 나라로 믿는 한, 세상의 복음화는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이 신부는 "지금 우리 교회는 이런 모순에 빠져 있다"면서, "교회는 세상의 복음화를 외치면서 세상을 떠나야 할 곳으로 믿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 천국, 부활 등 그리스도교의 교리들이 또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민 신부는 "불행하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다니는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예수님의 교회가 아닐 때가 많다"며, 누구나 다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 주님” 부르며 “믿습니다.”하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지만, 마귀도 그렇게 할 수 있고, 불법을 일삼는 속이 엉큼한 사람도 그렇게 신앙을 고백할 줄 안다며 "그 고백이 복음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남을 복음화시키기 위해 애쓰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복음화된 존재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쇄신, 평신도들의 신앙감각을 받아들여야..
이제민 신부는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에게만 쇄신을 요구하는 풍토를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쇄신은 쇄신을 부르짖는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의 솔선수범에서 비롯하였고, 이를 나중에 성직자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성직자들이 평신도에게 쇄신을 요구하면서 그들 자신은 잘 변화하지 않는다면서, 성직자의 부패상을 지적하며 교회쇄신을 일으킨 사람들은 평신도였으며, "교회쇄신은 성직자들이 신자들의 이러한 신앙 감각을 수용할 때 그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귀를 기울이며 인간의 느낌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들어오셨듯이 성직자들은 일반 신자들의 느낌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느낌을 가지고 그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과 하나가 될 때 교회의 쇄신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은 애써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신이 썩어 없어지는 변화, 사라지는 변화를 일으키며 우리의 몸 안으로 들어오셨다. 매일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그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미사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성체를 모시면서 우리의 몸을 성체로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고 할 때가 많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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