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 12일 미국의 요청에 따라 미 국방부(펜타곤)을 방문해 한반도의 북한 위협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에는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동행할 예정이며,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동맹인 우리나라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함께 한반도 안보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고 한다.(한겨레 2011.10.13. 참조)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 국방부를 방문하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는데,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 포스트> 12일자 인터넷 판에서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상당히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방미에 앞서 10일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발전시켜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불가피하다”면서도 “동시에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안보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이 유지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재관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시사적인 발언을 뱉었다.
▲No naval base! Save Jeju Island! - Ann Wright.flv
한국정부의 결정 뒤에는 미국이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큰 틀 안에서는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최근 제주 가정 해군기지 건설공사장 앞에 항의시위를 벌였던 미 육군 대령 출신으로 지금은 평화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앤 라이트(Ann Wright)는 안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충분히 많은 군사기지가 있으며, 추가로 기지가 필요하지 않으며, “만일 이곳에 기지가 생기면 제주도가 군사적 공격 목표가 될 것”이며 “제주도민이 중국에 압박을 가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의해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앤 라이트는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한국정부의 결정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단언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은 언제나 적이 필요하다. 적을 가짐으로써 미국은 무기확충과 군사시설에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할 수 있다. 전미 외교관은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새로운 기지를 필요로 하고, 이에 한국정부가 협력하는 것이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국은 MD시스템의 일부인 이지스함이 정박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한국정부가 미국정부에 협력하는 것이 매우 위험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모든 한국인들이 미국의 요청에 순응해온 한국정부를 향해 제주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제주해군기지 건설 철회를 촉구하길 희망한다.”
앤 라이트는 알칸사스 미국 해양전쟁대학에서 국가안보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육군에서 13년, 예비군으로 16년 동안 근무한 뒤, 대령으로 전역했다. 1987년 앤 라이트 대령은 시에라레온, 마이크로네시아, 아프가니스탄, 몽골에서 미국 부대사로 근무했다. 그녀는 연방정부로부터 시에라레온 내전에서 2500명을 구출해낸 공으로 표창을 받았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최초로 파견된 연방정부 팀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하루 전날, 콜린파월 국방장관에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산유국인 아랍 무슬림 국가를 침략, 정복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임을 피력하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하고 줄곧 평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해왔다. 이처럼 이 여성의 경험이 발언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행은, 게다가 펜타곤을 향한 발걸음은 한국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동조하고 있으며,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도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위해 제주도민을 볼모로 삼겠다는 데 한국정부가 동조하고, 그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행이 이용될 것이다.
▲ 사진출처: 주교회의 홈페이지
한국천주교회는 제주 평화의 섬으로
같은 시기에 한국 천주교회의 주교회의는 지난 10일 이후 추계 주교회의를 열어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 서 있는 제주에서 ‘평화의 섬 제주’를 줄기차게 강조해 온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를 주교회의 의장으로 다시 선임하였다. 적어도 향후 3년간 강우일 주교는 한국교회의 공식적 입장을 대변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펜타곤 행을 발표할 시점에 강우일 주교는 주교회의로 갔다.
최근 이 문제는 교회 안팎에서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내놓을 것이다. 전쟁이냐 평화냐, 군사주의나 그리스도교 평화주의냐, 하는 선택에서 한국사화와 특히 가톨릭교회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최근 해군참모총장이 주교회의를 앞두고 각 주교들에게 서한을 보내 해군 측 입장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려고 노력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유수일 군종교구장은 <경향잡지> 9월호에 실린 강우일 주교의 글을 문제 삼아 군종사제들에게 배포에 주의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우일 주교는 주교회의 기관지인 <경향잡지>에 ‘제주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이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정부가 앞장서서 자랑하고 홍보하는 제주의 자연유산을 온전히 지키기 위하여, 이를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청정 해역의 군사기지화를 반대한다”고 입장을 분명한 어조로 밝혔다.
강우일 주교는 “강정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하는 과정과 절차가 너무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기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3.8선에서 제일 먼 남녘 해안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하는 이유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이며 “뿐만 아니라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최근 갈수록 심화되는 아시아에서의 미·중·일의 안보 경쟁 현실에서 볼 때, 제주는 평화로운 관광지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군사적 긴장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베트남 앞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 센카쿠 열도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의 갈등,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신경전 등의 정황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면 당연히 귀결되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 4.3항쟁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이 수많은 희생자들이 흘린 피에서 이념과 폭력을 뛰어넘는 평화를 창출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절호의 도약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강우일 주교는 제주가 군사작전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평화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평화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현대의 교회가 일관되게 가르치는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공할 무력이 빚어내는 파멸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을 강력히 당부했다.
강우일 주교가 주교회의 참석차 천주교중앙협의회로 가던 날, 10월 10일 한국교회의 가톨릭평화주의자들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할 것 없이 제주강정에 모여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이날 발표된 선언문에는 사제 964명, 여자수도자 2,664명, 남자수도자 107명을 포함한 모두 3,735명이 서명했다. 이 천주교연대는 교회 공식단체인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포함한 15개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수도장상연합회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평신도단체들이 총망라된 것이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해군과 국회와 정부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을 철회하고,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일체의 예산 편성과 집행을 중단하며, 그간의 공권력 남용에 대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군사주의를 지지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천주교회의 대대적인 저항을 예고하는 움직임이다.
▲10월 10일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첫미사.
애덕활동과 평화주의는 한가지다
한편 <조선일보> 10월12일자 보도에 따르면,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두물머리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10일 제주도청에서 경기도와 제주도, 제주-세계7대자연경관선정범국민추진위원회 사이의 공동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우근민 제주지사와 가진 면담에서 “4대강에 반대하는 신부 2명이 삭발했다”며 “신부가 삭발하면 절에 가야지. 신부님들이 세다”고 말했으며, 이에 우근민 제주지사는 "우리 지역에서도 주교님이 대장"이라고 맞장구쳤다고 전했다. 이는 그동안 천주교회가 강력히 반발해온 4대강 사업과 제주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해당 자치단체장들의 천주교 및 강우일 주교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난 10월 5일자 <조선일보> 사설에서는, 천주교 사제들이 해군기지 공사장에 ‘난입’해서 경찰에 연행되었다면서, “천주교 일부 신부들은 ‘후보지 결정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이며, (해군기지 건설이) 제주도를 동북아 군사 전초기지로 만들 것’이라고 우기며 반대운동에 앞장서왔다”고 전하면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의 낯익은 단골손님인 문정현 신부와 두 명의 성직자는 공사장 정문에서 차량 출입을 막고 경찰관을 때려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연행되기도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지금 이 나라에는 강정마을보다 몇배 몇십배 더 간절한 마음으로 종교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곳이 널려 있다”면서 “어린 형, 어린 오빠가 더 어린 동생을 돌보는 소년소녀 가장(家長),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아 특수학교에 보내졌다가 성추행을 당한 어린이들, 자식들에게 살과 피까지 내주고 이제 거죽만 남은 노구(老軀)를 골방에 누이고 있는 노인네들, 경쟁사회에서 낙오돼 한창나이에 꿈과 희망을 잃고 헤매는 젊은이들, 역(驛)대합실과 지하도에서도 밀려나 외진 공터의 종이박스 집에 웅크리고 있는 노숙자들…. 이들은 중국과 일본의 항공모함들이 머지않아 강정마을 앞바다에 출현할 것이라는 소식을 못 들은 체하는 직업적 이념운동가들보다 몇배 절절하게 종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신부님들도 그럴듯한 '큰 정의(正義)'보다 발밑의 '작은 정의'를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에 실린 사설이었다면, 귀담아 들을 내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군기지 부지가 좌파단체 해방구로… 30명 때문에 공사 중단'이라는 기사를 연속게재하였으며, 줄곧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을 편들어 온 <조선일보>의 사설이기에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천주교 사제들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철회시키고, 4대강 사업을 막아서 얻는 현실적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그리스도의 평화를 지키려는 복음적 명령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 제주의 푸른 물결.(사진출처/주교회의 홈페이지)
평화주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
그리스도교 평화주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가톨릭사회교리의 줄기찬 요청이다. 이번 추계 주교회의에서는 아예 12월 대림2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제정했다. 한편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도로시 데이는 “예수가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행한 기적이었으며, 배고픈 군중들에게 빵을 먹이신 기적이었다. 그리고 예수가 마지막으로 행한 기적은, 예수를 체포하려는 사람들에게 맞서서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입힌 상처를 치유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애덕활동과 평화주의를 별도로 여기지 않은 분이 예수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분명히 명령한다. “칼을 치워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도로시 데이가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놀라운 애덕활동을 평화주의로 더럽히지 말라’는 비난이 쏟아져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대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응수했다. “우리가 굶주리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데 반해 전쟁은 기아를 가져다주었고, 우리가 괴로워 우는 이들에게 위로를 가져다주는데 반해 전쟁은 비참과 폐허를 가져왔다.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에게 해준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친절이든 폭력이든 그분께 직접 해 드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는 한 신앙인, 게다가 개신교 장로 출신이지만 다른 하느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두려움 없는 사랑을 가져오는 신앙이 아니라, 안전을 위해 외세(앗시리아)에 손을 벌렸던 이스라엘처럼 ‘군사력’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실험한 트르먼(truman) 대통령을 두고 도로시 데이는 “그는 참사람(trueman)인지는 모르지만 참 하느님의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인간의 생명보다 전쟁 승리와 군사력을 숭배한 미국 대통령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대통령은 장군들과 함께 펜타곤으로 가라. 그러나 우리는 강정의 형제들에게 가겠다. 구럼비의 붉은발말똥게에게로, 평화로운 내 사람들에게로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