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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말씀살이

남을 심판하지 마라 / 여진천 신부님의 글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 여진천 신부님의 글입니다

사랑합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여진천 신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 1-5)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티는 톱으로 나무를 켤 때 나오는 톱밥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눈에 잘 들어갑니다.
    들보는 건물의,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른 나무로서,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는 나무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목수 일을 
    하셨기 때문에 잘 아십니다. 이것은 비유인데, 이와 같은 모순되는 
    일을 누구나 쉽게 범합니다. 남의 약점을 쉽게 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대개 남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기는 더 나쁜 짓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동국대 
    어느 교수의 학력 위조사건에서도 드러납니다.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지만, 학위증은 위조된 것이고 
    그 학교를 다닌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잘 
    나가는 전시기획자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더욱 날카롭게 비판했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아주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후 더 늙기 전에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했습니다. 유명한 화가들로 그림을 받았지만 
    만족할 만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것은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흉악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화가가 왔습니다. 얼굴의 흉터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덕과 용맹을 
    갖춘 영웅의 모습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을 의자 
    위에 앉히고 손으로 턱을 고이게 한 후 손가락으로 얼굴의 흉터를 
    자연스럽게 가리도록 하였습니다. 드디어 흉터를 감쪽같이 감춘 
    웅장한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대하며 상대의 약점을 
    덮어주고 상처는 감싸주고 있는 지 돌아볼 일입니다. 
    같은 잘못도 다른 사람이 저지르면 부정이고, 내가 하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내가 돈을 잘 안 쓰면 절약이고 다른 사람이 
    그러면 구두쇠고, 내가 돈을 잘 쓰면 너그러운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그러면 헤푼 사람이고, 내가 시간 잘 지키면 철저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그러면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위선자의 모습입니다. 
    또한 나는 잘한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완전히 잘못하는 것으로 판단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고집과 편견과 아집이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내고 있어도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정말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판단에 대한 
    교만함을 없애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수할 때마다 자신부터 
    먼저 돌아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들보 가운데 가장 흔한 들보는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입니다. 먼저 내 탓으로 보고 내 몫으로 
    도리는 것이 자신의 앞날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길입니다. 남에게 
    있는 티보다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들여다보면서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겸손한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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