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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이해~/하느님 사랑

용서에서 발전하는 사랑-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용서에서 발전하는 사랑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사랑은 친교를 통해 발전되고 진정한 친교의 정은
목숨을 담보할 만큼 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나눈다는 것은 은혜를 만드는 장소가 되며
나눔은 자비로움 속에서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자비로움은 용서를 낳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베우고 
베운 것을 다른 이에게 베푸는 삶을 실천합니다. 
한 때는 하루에 수십 명을 떼거지로 말을 통해서 
죽이기도 하고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온갖 험담의
욕을 한 세월도 있었지만 결과는 그들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반면 자신은 악의에 찬 
분노의 화신이 되어 거친 모습만 드러낼 뿐,
과거에 묶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우리 삶은 순간의 선택이고 선택에 의해
세상을 밝고, 어둡게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든 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심지어 밥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어떤 모습으로 
먹고 잘 것인지를 선택해야 함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선택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에 대해 잘못 이해하여 용서를 하면
금방 처음과 같이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용서와 신뢰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고 신뢰는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며, 용서는 상대가 용서를 청하든
청하지 않던 용서자의 의미대로 정리하여 지워버릴 
수 있지만 신뢰는 한번 잃게 되면 스스로 노력하여
회복하지 않는 한 영원히 회복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바뀌고 성질이 바뀌며
모습이 바뀝니다. 
화를 잘 내는 에너지를 발산하면 모습이 사나워지고
화를 내기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면
모습이 온순하고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됩니다.
용서는 사랑이 따르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원한이 있는 상대를 일순간 떨쳐버린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기 위해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용서를 해야 할 것이며,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을
바라본 이웃들은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신뢰하게 
될 것이고 전폭적인 믿음과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