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신자, 하느님의 죽비소리 | ||||
[생활하는 신학-이미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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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이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주일미사에 함께 가자고 권했더니 “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매주 만나러 가는데?”라며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시각장애와 지체장애가 겹친 한 장애인 청소년과 자매결연을 하여, 주일마다 그 아이의 집에 가서 온종일 말동무도 해 주고 포근한 날씨에는 가까운 공원에 산책도 데려가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자신에게는 하느님을 만나는 주일미사라고 했다. 그 친구도 한때는 성당 주일미사에 열심히 나갔다. 어린 시절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가족 모두 오랫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아 한동안 신앙을 잊고 지내다가, 직장에 다니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교적을 이향신자사목부에서 찾아오고 다시 교리를 받아 첫영성체도 하고 견진성사도 받았다. 그러면서 통신으로 신학 공부도 하고, 신앙 관련 서적도 열심히 읽으면서 매주 주일미사도 꼬박꼬박 참례하였다. 마침 본당 신부님도 좋은 분이라, 주일미사 때 강론을 들으며 세상 안에서 깨어 살아야 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되새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 친구가 미사를 안 나가게 된 것은 그 좋던 본당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쫓겨난 일 이후라고 했다. 당시 그 본당에 재정 비리가 발생했는데, 신부님이 그 일을 두고 사목회 임원들에게 회개를 권유하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사목회 임원들이 신부님을 무고하여 교구장께 인사이동을 요구해서 신부님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 친구는 그런 신자들과 한 공동체라는 것이 너무 싫었고, 과연 그 본당 안에 하느님이 머무실지 회의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의 긴 냉담이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본당 미사에 안 나가던 그 친구는 2008년 여름 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미사에 참석했다. 미사를 마치고 친구는 벅찬 감동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미사 시작 때 “여러분 외로우셨죠?”라는 신부님의 한마디가 한 줄기 빛처럼 자기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하는 느낌이었고, 정말 오랜만에 미사 안에서 하느님을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가 ‘하느님을 정말 갈망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친구는 여전히 본당 주일미사에는 나가지 않는다. 요즘 그 친구는 아이 키우느라 바빠서 자칭 살아 있는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봉사활동도 하지 않기에, 다시 한 번 본당 주일미사에 나가자고 권했다. 아이들 데리고 성당에서 미사 참례하며 애들 주일학교 들어가 있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 좋지 않겠냐고 권하니, “성당이 무슨 취미활동이니, 수다 떨러 가게?”하고 한소리 한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애들 좀 크면 애들이랑 함께 살아계신 하느님을 다시 만나러 가야지.” 이 냉담신자 친구는 내 신앙을 돌이켜보게 하는 거울이다. 교회가 무엇인지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게 하는 이 친구야말로, 신앙을 장식이 아니라 삶으로 살라는 하느님의 죽비소리가 아닌가 싶다.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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