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전화 상담원, 그리고 미국
Posted: 15 Aug 2011 05:33 PM PDT
항공사 전화 상담원이 조선족?
근 1개월 째 미국에 와 계신 어머님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의 비행기표 날짜를 변경하기 위해서 미국계 항공사의 한국 지사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무척이나 어색한 어투의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 말을 잘 못알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예약 번호를 불러주고 했는데도 재차 예약 번호를 묻는 등 대단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침 전화 상태까지 불량이어서 전화가 갑자기 끊어져 버렸고, 다시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직원과 통화, 비교적 손쉽게 예약 날짜를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직원과 통화를 마치면서 '혹시 전화 상담원 중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있느냐?' 라고 물었고, '연변쪽 분이 한 명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는 직원에 질문에 '별 것 아니다. 그냥 어투가 조금 달라서 궁금해서 그랬다.' 라는 이야기만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시나브로 늘어가는 한국 내 조선족
사실 이러한 조선족 상담원를 만나본 건 이번 뿐만이 아닙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구입한 미국계 회사의 PC모니터의 경우에도 배송 일정등을 참고하기 위해 상담원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연변쪽 분으로 추정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투가 좀 다르고, 쓰는 단어가 조금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소통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두번 세번 설명해야 이야기가 통할 가능성도 큽니다.
'연변 조선족'은 이미 우리 생활 안에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식당 종업원 중 조선족의 비율이 상당히 높고, 가정관리사(파출부)도 그렇습니다. 외국계 회사들의 국내 고객 상담원 중에도 많고, 조금 이야기가 다르지만, 전화를 통한 금융 사기를 하는 사람중에도 연변 말씨를 쓰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이제 이야기를 미국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이민족들이 존재합니다. 한국 사람도 그에 속하고, 중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계를 포함해서 인도, 필리핀, 파키스탄 사람들도 많고, 아프리카, 유럽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이미 활발하게 다양한 업종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햄버거집 종업원부터, 전화 상담원까지 진출해 있습니다. 더러는 아예 인도에 고객 상담 센터를 세워 놓고, 모든 미국 내의 고객 상담 전화를 인도에서 처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소비자들이 만나게 되는 일상 속 사람들이 대부분 이민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풀장에 소수민족들이 가득 찼다는 이유로 불만에 가득 찬 Eric(가운데) 넘쳐나는 이민자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만화 Southpark 중에서)
쉽지 않은 비 원어민 상대하기
이렇게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과 일을 처리하다 보니, 불편함은 당연히 발생합니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 주문되기도 하고, 집에 케이블TV가 나오지 않아 상담원에게 전화를 했는데, 상담원의 언어나 문제 해결 능력의 차이로 인해 두세번 다른 상담원을 통해야만 겨우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쨌든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어가 유창한 사람이 통화를 하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더러는 영어를 못해도 내가 이야기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는 직원이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서 불가피
미국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이러한 경험을 해 왔습니다. 미국인들은 정말 이곳이 우리의 나라가 맞는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아침에 던킨 도너츠에 가서 커피를 주문받는 사람은 인도인이고, 잠시 들른 수퍼마켓에서 계산대를 맡고 있는 직원은 파키스탄 사람이며,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의 주인은 이탈리아인입니다. 저녁에 통화한 자동차 보험 회사 직원은 러시아 계이며, 드라이클리닝 맡긴 것을 찾으러 들른 세탁소의 주인은 한국인입니다. 한국에서의 연변 조선족들도 앞으로 저임금시장을 중심으로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또한, 한국의 가능성을 보고 달려온 수많은 타 국가의 사람들이 시나브로 많아질 것입니다. 반만년을 한민족으로 살아오고, 그것을 자랑스러운 것으로 교육받고 자라온 우리 세대에게 앞으로 이런 변화는 많이 낯선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이 결국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선진국으로 가는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조금은 서투른 연변 조선족 상담원을 만나도 답답함보다는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