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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이해~/하느님 사랑

스스로 죄의 올가미를 씌우지 마세요

스스로 죄의 올가미를 씌우지 말라

스스로 죄의 올가미를 씌우지 말라. 종교는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 희망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교는 삶의 불행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가중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통과 혼란, 번민과 두려움을 느끼며 무의미한 죄의식을 겪고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이것은 예수님과 일치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꾸짖고 비난하셨습니다. 종교 속에 모든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는 수많은 삶의 문제와 고통과 난국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이것을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종교가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면 신뢰도를 상실하게 됩니다. 대개 종교에 대한 오해가 발생되고 있는 것은 잘못된 해석과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그릇된 인식에서 받아드린 내용들이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잘못된 사고로 굳어진 것들에 의해서 발생된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와 개념은 신학적으로 근거가 없을 분만 아니라 자칫하면 노이로제 현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신비를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의 은총은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하나의 신비이고 또 하나의 신비는 그저 주어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무지로 인해서 그것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을 또 하나의 신비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병적인 죄책감 속에 잘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비난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을 죄의 올가미를 씌우기도 하면서 스스로 씌운 죄의 덧에 걸려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비 그리스도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느님은 사랑을 베푸시는 사랑의 소유자이시고 끊임없이 용서하시는 분이시라는 교리를 온전히 받아드리지 못한 결과입니다. 종교에 대한 무지의 잔재는 근절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무지에 의해 "죄" 속으로 빠져들어 스스로 용서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어라, 두려워 말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을 보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이들을 보살피고 계시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들도 돌보실 것이다." 새들은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날고 백합은 아름다운 향기를 사방으로 뿜어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섬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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