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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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종(編鐘)은 16개의 종을 상단과 하단에 각각 8개씩 매달아서 사용한다. 종의 크기는 다 같고 그 두께가 조금씩 다른데, 종이 두꺼우면 소리가 높고, 얇으면 소리가 낮다. 각퇴(角槌:뿔망치)로 아래 둥근 표를 한 부분 즉, 수(隧)를 친다. 그 이유는 같은 종이라도 때리는 강도와 방법에 따라서 음색에 변화가 생기므로, 종 아래 정면에 둥글게 수형상(隧形相)을 마련하여 악사들이 아무데나 함부로 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예종 11년 6월 송(宋)의 휘종(徽宗)이 |
보내준 대성아악(大晟雅樂) 가운데에 편종 정성 16매와 중성 12매의 두 가지로서 등가(登歌)에 각 한 틀, 헌가(軒架)에 각 아홉 틀이 끼어 있었다. 조선왕조 세종 때에 박연이 개량하여 많이 제작하였으며, 지금도 편경과 함께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낙양춘(洛陽春), 보허자(步虛子) 등의 연주에 쓰이고 있다. 부드러운 소리는 못되나, 국악기 가운데서는 웅장한 음색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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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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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特鐘)은 편종과 같이 제작하여 등가(登歌)에 있어 음악을 일으키는데(시작) 사용되고 있다. 큰 종 하나를 매달았다. 각퇴(角槌:뿔망치)로 수(隧)를 친다. 음악을 시작할 때 먼저 특종을 한번 친 다음, 축(祝) 세 번과 절고(節鼓) 한 번 치는 것을 세 차례 반복하는데, 절고의 끝소리와 함께 특종을 다시 한번 치고 나서 모든 악기가 합주를 시작한다. 조선왕조 세종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악기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과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에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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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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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洋琴)은 그 이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양에서 들어 온 금(琴)이다. 재래(在來)의 금 종류가 모두 명주실인데 반하여 양금은 철사로 되어 있다. 음 높이가 같은 네 가닥짜리 구리 철사 14벌이 두 괘에 의하여 울림통 위에 좌, 우, 중앙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현재는 괘의 오른편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쪽으로 만든 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조선왕조 영조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영산회상(靈山會相)과 가곡(歌曲) 반주 또는 단소와의 병주에 많이 쓰이며, 금속성의 맑은 음색 |
을 가져 애상(愛賞)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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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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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方響)은 일명 철향(鐵響)이라고도 한다. 16개의 철편(鐵片)을 틀의 상단과 하단에 각각 8개씩 매어 놓은 악기인데 각퇴(角槌:뿔망치)로 친다. 철편의 길이와 넓이는 다 같고, 두께만 조금씩 다른데 철편이 두꺼우면 소리가 높고 얇으면 소리가 낮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지금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에 쓰인다. 문헌에 의하면 조선왕조 세종 때에 방향을 많이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전의 방향은 철편의 상부가 둥글고 하부가 모났으며, 임진왜란 |
후의 방향은 긴 네모꼴이다. 임진왜란 전에는 뿔망치를 좌우 양손에 쥐고 쳤었으나, 후에는 한 손으로 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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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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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라는 놋쇠로 만든 작은 징(鉦) 10개를 나무틀에 매달았다. 두께에 따라 음고(音高)가 다른 점은 편종이나 방향의 예와 같다. 나무 망치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그 음이 경쾌하다. 행진할 때에는 밑에 달린 손잡이를 뽑아들고 치고, 앉아서 칠 때에는 받침대에 세워놓고 친다. 조선왕조 후기부터 취타(吹打)와 당악(唐樂) 계통의 음악에 사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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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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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라는 바라, 또는 발, 제금이라고도 한다. 놋쇠를 펴서 만들었다. 절에서 쓰이는 크고 무거운 바라로부터 춤추는 사람이 끈을 두 손가락에 끼고 치는 향발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바라는 태평소, 나발, 나각, 징, 용고와 함께 대취타에 쓰이고, 그밖에 불교 의식 무용, 그리고 무악(巫樂)에도 쓰인다. 고려도경(高麗圖經) 권 18에 나오는 요발에 관한 기록을 보면 자바라는 고려 이전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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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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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과 대금(大金)은 동일한 악기이다. 문헌상으로 보면 용도에 따라 명칭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즉 종묘제례악에 사용될 때에는 대금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취타, 무악, 농악 등에 사용될 때에는 징이라 부른다. 대금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왕조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에 대금과 소금(小金)이 소개되어 있다. 종묘제례악에서는 아헌(亞獻)과 종헌악(終獻樂)인 정대업(定大業)에 편성되는데 아헌은 진고를 10번 침으로써 시작하고, 종헌은 대금을 10번 침 |
으로써 끝남을 알린다. 또 농악에서 꽹과리는 잔가락을 치고 징은 매 장단 첫 박에 많이 친다. 꽹과리는 아무 것도 감지 않은 나무채로 치고, 징은 채 끝에 헝겊을 많이 감아서 치기 때문에, 웅장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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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꽹과리 |
꽹과리와 소금(小金)은 동일한 악기이다. 징처럼 용도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종묘제례악에 사용될 때에는 소금으로 기록되어 있고 농악에 사용될 때에는 꽹과리라고 부른다. 제향에 쓰는 소금은 끈에 용두를 새긴 채색한 손잡이가 있고, 붉은 칠을 한 망치로 치나, 농악에 쓰는 꽹과리는 징과 같이 홍사(紅絲) 끈으로 손잡이를 만든다. 종묘제례악에서는 정대업(定大業) 매박(每拍) 처음에 치고 특히 분웅에서는 매박 처음에 진고와 대금(大金)을 친 다음 소금을 계속해서 3번 친다. 농악에서는 상쇠는 땡땡한 음색에 높은 소리가 나는 것을 쓰고 부쇠는 이보다 부드러운 음색에 소리가 낮은 것을 즐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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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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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은 국악기 중에서 유일한 금속 관악기이다. 나각처럼 한가지 음만을 길게 불어 낼 뿐이고, 선율은 없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세 토막으로 구분된 관을 밀어 넣어 짧게 간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헌이 없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지금은 태평소, 나각, 자바라, 징, 용고와 함께 대취타에 쓰이며 농악에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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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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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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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경(編磬)은 단단한 경석(磬石)으로 만든 16개의 꺾어진 모양의 돌을 매단 것으로, 편종(編鐘)과 짝을 이룬다. 각퇴(角槌:뿔망치)로 경의 긴 쪽 끝을 친다. 고려 예종 11년에 송(宋)에서 편종과 함께 등가에 정성(正聲)과 중성(中聲) 각 한 틀, 헌가에 각 아홉 틀씩 들어왔고, 공민왕 때와 태종 때도 편종과 같이 명에서 들어 왔다. 조선왕조 세종 때 박연이 개량하여 많이 제작했고, 지금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낙양춘(洛陽春), 보허자(步虛子) 등에 사용 |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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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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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경(特磬)은 경 하나를 매단 악기인데 편경(編磬)처럼 각퇴로 친다. 합주를 그치려면, 절고를세 번 치고 그 절고 소리에 따라 어를 세 번 드르륵 긁는데, 절고의 첫 소리와 끝 소리에 특경을 각각 한 번씩 치고 나서 합주를 그친다. 그러므로 특종은 음악을 시작할 때에만 사용되고 특경은 음악을 그칠 때에만 쓰인다. 조선왕조 세종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악기는 지금도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 |
****************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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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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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처음 진(晋)나라 사람이 7현금(絃琴)을 고구려에 보내 왔는데, 왕산악이 원형은 그대로 두고 많이 고쳐 만들고, 백여곡을 지어 연주하매 검은 학(鶴)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다. 그래서 악기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 하였는데, 뒤에 현금(玄琴)이라 불리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문고는 울림통 위에 6현(絃)이 얹어져 있다. 제 2, 3, 4현은 16개의 괘위에 걸쳐져 있고 제 1, 5, 6현은 안족(雁足: 기러기발)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은 위에는 |
오동나무, 밑에는 단단한 밤나무를 많이 쓴다. 줄은 명주실을 꼬아서 만들며 술대는 해죽(海竹)으로 만든다. 왼손으로 괘를 짚고 오른손 식지(食指)와 장지(長指) 사이에 술대를 끼우고, 줄을 내려 치거나 올려 뜯는다. 거문고는 그 소리가 그윽하여 예로부터 백악지장 (百樂之丈)으로 일컬어 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 사이에 많이 숭상되어 왔는데 지금은 줄풍류, 가곡의 반주 등에 많이 쓰이며 최근에는 거문고 산조에도 출중한 멋을 나타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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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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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은 울림통 위에 12현이 안족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과 현을 만드는 재료는 거문고와 같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면서 오른손으로 뜯거나 퉁겨 소리를 낸다. 가야금의 모양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원래 것으로, 정악(正樂)에 쓰이는 풍류(風流) 가야금(법금)이고, 또 하나는 산조(散調)에 쓰이는 산조 가야금이다. 풍류 가야금은 줄과 줄 사이가 넓으나 산조 가야금은 줄과 줄 사이가 좁아서 빠른 곡을 타기에 편하다. 이 악기는 6세기 경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어 신라 진흥 |
왕 때에 신라에 전해졌다. 일본 나라(奈良) 정창원(正倉院)에 전하여져 오는 신라금(新羅琴)과 경주(慶州) 부근에서 발견된 토우(土偶)는 현재의 풍류 가야금과 같은 것이다. 가야금은 거문고와 같이 줄풍류, 가곡의 반주 등에 많이 쓰이며 산조가 생기면서부터 독주 악기로도 각광을 받아 우리 나라 악기 중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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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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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은 울림통에 연결된 2현 사이에 말총 활대가 끼어 있다. 울림통은 대(竹), 현은 명주실을 꼬아 만든다. 활대의 말총으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낸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정악과 민속악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해금은 현악기이지만 관악에 반드시 편성되는 점이 특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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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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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은 울림통 위에 7현이 안족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과 현을 만드는 재료는 거문고와 같다. 개나리 나무로 만든 활대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낸다. 음색은 거칠은 편이나 웅장하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지금도 정악과 민속악에 널리 쓰이고 있다. 산조를 포함한 민속악을 위해 만들어진 아쟁을 산조 아쟁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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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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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쟁은 울림통 위에 15현이 안족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과 현을 만드는 재료는 거문고와 같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면서 오른손으로 뜯거나 퉁겨 소리를 낸다. 고려 때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당악에만 쓰이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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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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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琴)은 울림통 위에 7현이 올려져 있다. 줄이 일곱이어서 칠현금(七絃琴)이라고도 부른다. 줄을 떠받치는 안족이 없어 줄이 느슨하고 소리가 미약하다. 안족이 없는 대신 금에는 검은 복판 한편에 흰 자개 13개가 박혀 있는데, 이것을 휘(徽)라고 한다. 왼손으로 줄을 짚을 때에는 이 휘가 있는 곳을 따라 잡는다. 금의 음악은 예로부터 통속적이 아니고, 사대부에 의하여 간사함을 버리고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한 수양으로써 연주 되었다. 고려 때부터 조선왕조 초기까지 문묘제례 |
악에 사용되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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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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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은 울림통 위에 25현이 안족으로 받쳐져 있다. 울림통 위에 나는 학과 구름 등이 그려져 있어 호화롭다. 울림통은 위에 오동나무, 밑에 계엄나무를 쓴다. 가운데 줄 즉, 제 13현에 의하여 양쪽으로 12줄씩 갈라져 있는데 가운데 줄은 사용하지 않는다. 슬은 언제나 금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사이 좋은 부부를 가리켜 "금슬이 좋다"고 하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다. 고려 때부터 문묘제례악에 사용되어 오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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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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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비파는 거문고, 가야금과 함께 신라 삼현(三絃)의 하나이다. 곧은 목으로 되어 있어 직경비파(直頸琵琶)라고도 한다. 5현이 울림통 위의 10개의 괘에 걸쳐져 있다. 울림통과 현을 만드는 재료는 거문고와 같다. 거문고와 같이 술대로 타는 악기이다. 비파(琵琶)란 명칭은 밖으로 쳐내고 안으로 당겨 타는데서 유래된 것 같다. 향비파는 삼국 시대부터 구한말 까지 향악에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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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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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파는 목이 굽어 있어 곡경비파(曲頸琵琶)라고도 한다. 향비파와 비슷하나 4현과 11괘이다. 울림통은 위에 계엄나무, 밑에는 느티나무나 뽕나무를 쓰고 현은 명주실을 꼬아 만든다. 당악을 연주할 때는 나무채로 타며, 향악을 연주할 때는 맨 손가락이나 골무를 끼고 탔다고 전한다. 삼국 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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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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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금은 일명 완함(阮咸)이라고도 한다. 4현이 13개의 괘 위에 걸쳐져 있다. 악기를 만드는 재료는 당비파와 같다. 뒤에 끈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월금은 고구려 고분(통구 소재 삼실총: 通溝 所在 三室塚)의 벽화에 보이지만, 고려사(高麗史)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조선왕조 때의 문헌에는 향악에만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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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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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공후는 굽은 모양이 봉황(鳳凰)의 형상과 같다하여 봉수공후라고도 한다. 13현이 울림통에 비스듬히 연결되어 있다. 울림통은 화류나무나 느티나무, 현은 명주실로 되어 있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때에 사용되었으나 그 후에는 사용된 기록이 없어 어떤 음악에 쓰였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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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후는 13현으로 된 가장 작은 것이다. 악기를 만드는 재료는 와공후와 같다. 휘어진 부분이 울림통으로 되어 있다. 서기 725년 신라 때에 만든 상원사(上院寺) 종(鍾)에 소공후를 연주하는 조각이 있는데 그 악기를 보면 지금의 소공후와 같이 생겼고 손잡이를 허리에 꽂고 두손으로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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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후는 20현이 울림통에 수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악기를 만드는 재료는 와공후와 같다. 이 악기는 와공후와 함께 고구려 때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이후에는 쓰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수공후는 이집트, 유태, 희랍 등지에서 유행하던 것이 그후 페르샤, 인도에 전하고 여기서 동서로 전파되어 중국으로 들어간 것은 공후라 불리워지고 유럽으로 들어간 것은 서양 악기의 하프가 된다. | |
*********************죽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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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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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의 3종이 있는데 모두 8개의 지공(指孔)을 가진 죽관(竹管)에 겹으로 된 서(舌)를 꽂아 분다. 서는 대를 깎아서 만든다. 향피리는 고구려 때부터 사용되었고, 당피리는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세피리는 조선왕조 후기부터 사용되고 있다. 세피리는 향피리나 당피리 보다 죽관이 가늘어서 입김이 통하는 내경(內徑)이 좁고 서가 작기 때문에 불기 힘든 악기이다. 따라서 당피리를 먼저 공부하여 힘을 얻고 향피리로 훈련을 쌓은 다음에 비로소 세피리 |
를 부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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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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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은 중금, 소금과 함께 신라 삼죽(三竹)의 하나이다. 젓대라고도 부르며, 정악(正樂) 대금과 산조(散調) 대금이 있다. 여러 해 묵은 황죽(黃竹)이나 살이 두텁고 단단한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다. 취공(吹孔) 1개, 청공(淸孔) 1개, 지공(指孔) 6개가 있으며, 칠성공(七星孔)은 하나 또는 두 개가 있다. 삼국 시대부터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 사용해 왔으며 영산회상, 여민락, 보허자, 낙양춘, 본령 등 정악에 사용되고, 시나위, 민요, 산조 등 민속악에도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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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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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은 대금보다 작고 취공 1개, 지공 6개, 수개의 칠성공이 있으나 청공이 없는 것이 대금과 다르다. 중금을 만드는 재료는 여러 해 묵은 황죽을 쓰고, 쌍골죽은 쓰지 않는다. 중금은 청공이 없으므로 대금보다 음색의 변화가 적으나 맑고 고운 소리가 난다. 원래는 노래와 춤의 반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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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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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중금보다 좀 작고 지공이 6개여서 중금과 비슷하다. 취공 1개, 지공 6개, 모두 7공이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정악에 널리 쓰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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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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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소는 퉁소보다 작고 지공이 뒤에 1개, 앞에 4개가 있다. 단소는 양금과 함께 악학궤범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 후기에 생긴 듯하며 영산회상(靈山會相)과 자진한잎 같은 관현합주에 사용되고 관현합주외에 생황과의 이중주나 양금, 해금과의 삼중주 또는 독주에도 애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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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퉁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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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용되고 있는 퉁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지공이 뒤에 1개, 앞에 5개가 있고, 청공이 없는 것과 또 하나는 지공이 뒤에 1개, 앞에 4개가 있고 청공에 갈대청을 붙인 것인데 후자를 일명 퉁애라고도 한다. 전자는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성악 반주 등에 사용되며 후자는 민요나 시나위 등의 반주에 쓰인다. 악학궤범에 "퉁소에 갈대청을 붙여 소리를 맑게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퉁애는 조선왕조에 들어와서 청공을 첨가, 개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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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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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대금, 중금, 소금, 당적과 함께 횡적에 속하는 죽관 악기이다. 취공에다 따로 취구를 박고, 접(接)한 부분을 공기가 새지 않게 밀로 때웠다. 지공이 옆에 1개, 위에 4개, 모두 5개가 있고 왼쪽 끝마디 중앙에 십자공(十字孔)이 있다. 수서(隋書)의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백제악(百濟樂)에 벌써 지가 있었고, 지금도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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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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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지공이 3개밖에 없다. 3개의 지공으로 12율을 내기 때문에 연주법이 까다롭다. 고대의 약은 갈대로 만들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대(竹)로 만든다. 그 모양은 크기와 굵기가 적과 비슷하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지금도 문묘제례악의 연주와 일무(佾舞)의 무구(舞具)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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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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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원래 지공이 4개였으나 점차 개량되어 지금은 뒤에 1개, 앞에 5개, 모두 6개가 있고 아래 끝에 2개의 허공(虛孔)이 있다. 그리고 죽관(竹管) 밑의 끝마디 중앙에는 지처럼 십자공(十字孔)이 있었으나 지금은 십자공을 뚫지 않는다. 적은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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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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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16개의 죽관(竹管)을 나무 틀에 꽂고 관의 끝을 밀로 막았다. 관의 길이는 양쪽 끝이 가장 길고 가운데로 갈수록 점차 짧아진다. 모양이 봉황(鳳凰)의 날개 같아서 일명 봉소(鳳簫)라고도 한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소의 그림이 보이나 문헌상으로는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고 지금은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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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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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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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는 생(笙)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박통 속에 죽관(竹管)을 나란히 꽂은 것이다. 죽관의 아래쪽 외면에 있는 구멍을 막으면 소리가 나고, 열면 안난다. 죽관 하단에 금속청(金 : 금엽)이 달려있어서, 하모니카와 같은 원리로 숨을 내쉬고 들여 마실 때 소리를 낸다.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백제에 생황이 있었고 서기 725년에 만들어진 상원사(上院寺) 종(鍾)에 그 모양이 새겨져 있다. 생황을 포부(匏部)에 넣는 이유는 입김을 불어 넣는 통을 옛날에는 박통을 썼기 때문이며, 지 |
금은 그것을 나무로 만든다. 우리 나라 악기 중 유일한 화음 악기인 생황은 단소나 양금과의 병주 또는 세악에 쓰인다. | |
**********************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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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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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은 훈(壎)이라고도 쓴다. 점토를 구워서 만들기도 하고, 백면화(白綿花)를 점토와 섞어서 만들기도 한다. 훈의 취구는 위에 있으며, 지공은 앞에 3개, 뒤에 2개가 있다. 훈은 정확한 음정을 내기 어렵고, 음색은 비교적 어두운 편이며 낮고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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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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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점토로 화로같이 만들어 구은 것이다. 9갈래로 쪼개진 대나무 채(四杖)로 부의 윗쪽 가장자리를 쳐서 소리를 낸다. 소리는 두꺼우면 높고 얇으면 낮아지며 잘 구워야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중국 고대 아악기의 하나이지만 우리 나라에 수입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문헌에 의하면 조선왕조 세종 때에 박연이 당시에 사용하던 부가 좋지 않아 마포 강가에서 완전한 부 10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부는 문묘제례악에 쓰이는데, 부를 치는 방법은 한 음이 규칙적으 |
로 4박씩 계속되는 경우 제 1박에서는 쉬고, 제 2박에서는 한번, 제 3박에서는 두 번, 제 4박에서는 굴려서 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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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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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의 뾰족한 끝에 구멍을 뚫고, 그리로 불어 소리를 낸다. 소라에 따라 그 소리가 저마다 다르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군례(軍禮)에 사용된 예는 많이 보이고, 종묘제례악에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태평소, 나발, 징, 자바라, 용고와 함께 대취타에 쓰이고 있다. | |
**********************혁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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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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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杖鼓)는 그 허리가 가늘어서 세요고(細腰鼓)라고도 한다. 장고통은 나무로 만드는 것이 좋으나 금속도 사용한다. 왼편 가죽은 두꺼워 소리가 눅고, 오른편 가죽은 얇아 소리가 높다. 음을 더 높이거나 눅이려면, 굴레를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조절한다. 왼편 가죽은 왼손 바닥으로 치고, 오른편 가죽은 채로 친다. 장고는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에 쓰이고, 농악과 굿음악에서도 사용된다. 농악과 굿음악에서는 양 손에 채를 쥐고 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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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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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고(座鼓)는 북 하나를 틀에 매달았다. 좌고는 고려사(高麗史)에도 악학궤범(樂學軌範)에도 보이지 않고, 단원(檀園)의 무악도(舞樂圖)에 보인다. 이 무악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춤 반주에 쓰이기도 하고 관악합주에 사용되며, 현악에는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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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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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고(龍鼓)는 북통에 용을 그리고 고리를 달았다. 북 가죽이 상하로 되게 허리 높이에 매어 달고 양손에 북채를 쥐고 친다. 사용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용고는 태평소, 나발, 징, 자바라, 나각 등과 함께 대취타(大吹打)에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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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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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는 크기와 모양에 있어서 장고와 비슷하나, 양쪽 가죽이 얇고, 양 손에 채를 잡고 치며, 굴레가 양쪽에 있는 점이 장고와 다르다. 갈고는 영조 이후의 진연의궤(進宴儀軌)에 보이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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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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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고(節鼓)는 방대 위에 비스듬히 얹혀 있는 북이다. 조선왕조 때부터 아악(雅樂)에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음악을 시작할 때에는 특종(特鐘)을 한 번 친 다음 축 세 번, 절고 한 번 치는 것을 세차례 반복한 다음 다시 특종을 한 번 치면 합주가 시작된다. 음악을 그칠 때에는 절고를 세 번 치고 어를 그 북소리에 따라 세 번 긁고 특경을 침으로써 음악을 그친다. 음악 중간에 칠 때에는 현행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은 4자 1구(四子一句) 즉 2분의4 한 |
소절 끝 박마다 두 번씩 치고,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보태평(保太平)과 풍안지악(豊安之樂)은 대개 매 악절의 첫 박자에 한 번씩 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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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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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통에 붉은 칠을 한 진고는 북 중에서 제일 크다.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사용되고 있다. 축 세 번과 진고 한 번 치는 것을 세차레 반복하고 합주가 시작되며, 진고와 뇌고를 세 번 치고 어를 긁고 나서 음악을 그친다. 음악 중간에서는 절고(節鼓)와 같이 매 구절 끝마다 두 번씩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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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방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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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부터 사용된 교방고는 관악합주와 궁중 무용에 쓰였는데 지금은 무고춤과 승전무를 출 때 이 북을 사용한다. 문헌에 의하면 행악(行樂)에서는 북틀 횡목(橫木)에 긴 장대 둘을 끼고 네사람이 메고 걸어가면서 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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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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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는 교방고와 비슷하나 다만 그 북통이 크다. 중고는 용고와 함께 군중악(軍中樂)에 사용되던 북이다. 문헌에 의하면 조선왕조 정조 때 관왕묘(關王廟)에 악사들이 개주(介胄)를 입고 중고 1, 장고 2, 피리 2, 젓대 2, 태평소 2, 대금(大金) 2, 소금(小金) 2, 가(歌) 2, 해금(奚琴) 2의 편성에 의하여 연주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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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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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형(十字形)의 발 가운데에 기둥이 꽂혀있고, 그 기둥이 큰 북을 꿰어 버티고, 북 위에는 방개(方蓋)가 2층으로 올려졌다. 방개에는 각각 홍색과 녹색의 비단 휘장이 둘려있고 아래층 방개의 네 모퉁이에서는 용간(龍竿)이 각각 하나씩 내다 보고 있고 그 입에는 색실유소(色薩流蘇)를 물어 내려뜨리고 있다. 위층 방개 위에는 날으는 모양의 백로(白鷺)가 올려져 있다. 조선왕조 세종 때 만들어진 이 화려한 건고는 그 좌우에 그보다 작은 삭고와 응고를 끼고 조회(朝會)와 연향(宴享 |
)때 합주의 시작과 끝에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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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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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고도 긴 통같이 생긴 북을 틀에다 매어 단 것이다. 응고와 비슷하나 약간 크고 틀 위에 해 모양을 그리고 흰 칠을 하였다. 삭고는 조회와 연향 때의 주악에 쓰였는데, 음악을 시작할 때 삭고를 먼저 한번 치면 응고가 이에 잇달아 쳤다. 삭고는 고려 때부터 쓰였으며, 세종 때 많이 제작하여 써 오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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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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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는 긴 통같이 생긴 북을 틀에다 매어 단 것이다. 삭고와 비슷하나 약간 작고 틀위에 달 모양을 그리고 붉은 칠을 하였다. 응고는 조회와 연향 때의 주악에 쓰였다. 응고는 고려 때부터 쓰였으며, 세종 때 많이 제작하여 써 오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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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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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고는 뇌도와 같이 천신의 제향에 사용되었다. 원추형의 작은 북 6개를 매달아 놓았는데 뇌도와 같이 북통은 검은색이 칠해져 있다. 뇌고는 진고를 따라 같이 쳤었다. 뇌도, 뇌고가 쓰인 천신의 제향은 환단 또는 풍운뇌우(風雲雷雨), 산천성황(山川城隍)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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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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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도는 한자(尺)가 채 못되는 작은 북 세 개를 엇갈리게 겹쳐 나무 자루에 꿰어 북통에 검은색을 칠했다. 뇌고와 같이 천신의 제향에 사용되었다. 뇌도와 뇌고의 북면이 6면인 것은 천신 제사의 강신악(降神樂)이 같은 곡을 6번 반복하는 것과 일치한다. 뇌도는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세 번을 흔드는데 북통 양쪽에 달린 가죽 끈이 북면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 뇌도는 뇌고와 함께 조선왕조 세종 때부터 사용되었으나 천신제가 폐지된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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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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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고는 뇌고와 같으나 다만 북면이 8면인 것과 북통의 색깔이 노란색인 것만이 다르다. 영고도 뇌고처럼 진고를 따라 같이 쳤다. 영도, 영고가 쓰인 지신의 제향은 사직(社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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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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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는 작은 황색 북 4개를 엇갈리게 꿰어 놓았다. 뇌도, 뇌고가 천신의 제향에 사용된데 대하여 영도, 영고는 지신의 제향에 사용되었다. 북면이 8면인 것은 지신 제사의 강신악이 같은 곡을 여덟 번 반복하는 것과 일치한다. 영도도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세 번을 흔드는데 북통 양쪽에 달린 가죽 끈이 북면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 영도와 영고도 조선왕조 세종 때부터 사용되었으나 지신의 제향이 폐지된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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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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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북 두 개를 서로 엇갈리게 고정시키고 북통에 붉은 칠을 하였다. 뇌고(雷鼓)와 영고(靈鼓)는 한쪽에만 가죽을 댄 원추형 북을 매단 것이지만 노고는 양쪽에 가죽을 댄 보다 크고 긴 북 두 개를 엇갈리게 꿰어 매단 것이다. 뇌고나 영고처럼 진고(晋鼓)를 따라 같이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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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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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두 개를 서로 엇갈리게 꿰어 북통에 붉은 칠을 하였다. 뇌도, 뇌고가 천신제향에 쓰이고 영도, 영고가 지신 제향에 쓰인데 대하여 노도, 노고는 북면이 4면이고 인신 제향에 쓰였다. 인신의 제향은 선농(先農), 선잠(先蠶), 문묘(文宣王: 孔子) 등의 제향인데 선농.선잠은 없어지고 지금은 문묘의 제향에 쓰인다. 노도와 노고도 조선왕조 세종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노도도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세 번 흔들어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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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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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는 딴 이름으로 매구북이라고도 한다. 매굿 즉 지금의 농악에 쓰이는 작은 북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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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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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6개의 판자쪽을 사슴 가죽끈으로 꿰어 만든 타악기이다. 한쪽을 가죽끈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반대쪽을 잡고 부챗살처럼 벌렸다가 급히 모으면서 치면 큰 소리가 난다. 대개 음악을 시작할 때와 그칠 때 치며 연주를 시작할 때는 한번을 치며 끝날 때는 세 번 이상 쳐서 연주를 마쳤으나 오늘날에는 세 번만 쳐서 음악을 끝낸다. 악절이 바뀌거나 모음곡을 연주할 경우 한 곡이 끝날 때 마다 한번씩 치고, 무용 반주에서는 춤사위가 달라질 때마다 박을 친다. 그러므로 박은 지휘 |
자의 역할을 담당하며 실제 연주에서는 음악의 내용과 진행을 잘 아는 원로 악사가 담당한다. 또한 궁중 음악의 연주시 박을 치는 악사의 의상은 초록색으로 일반 연주자의 붉은 색과 구별되며 무대 한쪽에 서서 지휘역을 담당하며 이를 집박(執拍)이라고 한다. 또한 상아나 동물의 뼈로 만든 작은 모양의 박도 있는데 이것의 이름은 아박(牙拍)이라 하여 춤을 출 때 손에 들고 손에 들고치면서 춤을 추는데 이 춤을 아박무(牙拍舞)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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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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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상자 중앙에 방망이가 꽂혀 있고, 상자는 대(臺) 위에 올려져 있다. 축은 어와 함께 종묘와 문묘의 제례악에 사용된다. 축은 음악의 시작을 신호하는 악기로서 동쪽에 놓고, 그치는 것을 신호하는 어는 서쪽에 놓는다. 음악을 시작할 때 먼저 특종을 한 번 친 다음 축 세 번, 절고 한 번 치는 것을 세차례 반복한 다음, 다시 특종을 한 번 치고서 합주가 시작된다. 어와 함께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지금도 문묘와 종묘의 제례악에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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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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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는 나무로 만든 호랑이의 등 위에 27개의 톱니가 있다. 문묘와 종묘의 제례악에 쓰이는데 음악을 마칠 때 9갈래로 쪼개진 대나무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세 번 치고 등 위의 톱니를 한 번 긁는 것을 세 번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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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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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소(太平簫)는 쇄납, 호적(胡笛), 날라리라고도 한다. 피리보다 서(舌)가 작고, 관은 원추형이다. 지공은 8개이며, 제 2공은 뒤에 있다. 고려 말부터 사용해 온 태평소는 음이 강하고 높아서 군중(軍中)에서 쓰였다. 지금은 대취타, 정대업, 시나위, 농악 등에 |
위자료는 팔공국악사대표 신양호님이 정리한것을 옮긴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