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야 할 소공동체
빛두레 <제739호>에 실린 글입니다.
박영대(우리신학연구소장)
한국 소공동체 사목의 역사는 10년이 넘는다. 10년 동안의 추진 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해온 나는 최근 들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왜 10년의 노력에도 뚜렷한 성과나 모범 사례 하나 없는가? 과연 지금의 구역·반모임이 소공동체인가? 아직 아니라면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소모임에는 개인이, 소공동체에는 가족이 참여한다. 즉 소모임은 개인이 모여서 이룬다면, 소공동체는 가족이 모여서 이룬다. 현재 도시 본당의 구역·반모임은 대부분 최소 월 1회, 최대 주 1회 모여서 복음 나누기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모임에는 주로 40대 이상의 여성 신자들이 참여한다. 부부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청소년들은 주일학교에 간다. 남성 신자들은 따로 남성 구역 모임에 모인다. 반 단위로 모이기에는 참여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의 구역·반모임은 가족이 참여하는 작은 교회로서의 소공동체가 아니라 주로 40대 이상의 여성이 참여하는 소모임(소그룹)일뿐이다. 지난 아시파 총회에 참석했던 외국 참가자들이 한국 교회의 반모임 현장을 돌아보고 난 다음에 내린 평가도 그랬다.
그렇다면 과연 극심한 가정 해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참여하는 소공동체가 가능한가? 일단 외짝 교우가 많고, 부부 중 한 쪽이 냉담 신자인 경우도 많다. 신자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바빠서 가족끼리 모여서 밥을 먹기도 힘들다. 같은 식구도 모이기 어렵다고 난리인데, 한 가족도 아니고 여러 가족이 모여서 소공동체를 한다는 것은 우리 실정으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지금의 반모임처럼 무조건 본당 관할 지역을 일정 규모로 나누어서 함께 모이라고 하면, 서로 삶의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더더욱 소공동체로 모이기 어렵다.
지난 10년 동안 반모임을 소공동체로 만들고자 많은 교육과 투자가 있었다. 그 결과 반모임이 소공동체가 된 것은 아니지만 반모임 활성화와 구역·반장의 양성이라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지역적으로 신자들을 조직하는 반모임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교회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사목적 의미도 크다. 하지만 반모임이 소공동체가 아니고 전환되기도 어려우므로, 반모임을 소공동체라고 규정하며 본당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는 이제 포기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 소공동체운동 또는 기초공동체운동이 성공을 거둔 지역은 대체로 농촌이나 도시빈민지역이었다. 이들은 여건상 삶을 공유하고 있었기때문에 소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비교적 쉬웠다. 한국 교회에서도 의미 있는 공동체 사례는 도시빈민사목(예: 서울교구의 선교본당 등), 농촌 사목 현장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 본당에서의 소공동체는 전혀 불가능한 것인가? 막연하게 이웃에 산다고 함께 모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 관심사별로 모인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공동의 취미나 기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산악회 등의 동호회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같은 삶의 문제, 즉 공동 육아, 자녀 교육, 통합 교육, 생태적 삶 등의 문제에 공동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소공동체로 성숙되어갈 가능성이 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동의 제한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소공동체를 이루려면 가깝게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교회 밖에서 이러한 공동체 시도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소공동체가 가족이 참여한다고 해서 늘 모든 가족이 하나의 모임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소공동체의 성격과 지향에 맞게 다양한 방식의 모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필리핀 농촌지역의 한 소공동체는 공동체의 날에 모든 가족들이 모였지만 어른들이 모임 하는 사이에, 청소년들은 자신들 중의 최연장 지도자와 함께 별도의 모임을 가졌다. 내가 실험하고 있는 소공동체는 다섯 가족이 모인다. 부모는 매주 1회의 생활 나눔과 친교, 아이들은 격주 1회의 체험 학습으로 정기 모임을 갖고, 매달 1회 정도 함께 모임을 갖고 있다. 여름에는 가족 캠프를, 봄과 가을은 소풍을, 겨울에는 가족 피정을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목 정책 입안자들이 반모임을 소공동체로 전면 개조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각 사목 영역에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소공동체를 실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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