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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우리문화엿보기

김현식 그의 인생(펌)

 

1990년 11월 1일 김현식은 세상을 등졌다. 58년 개띠니 딱 32해만을 살다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김현식은 유복한 집안의 아이였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던 분이었고 할아버지 역시 충남 홍성에서는 알아주는 유지였다. 또 외할아버지 역시 만석꾼의 아들로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영문학자였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외가 (충북 옥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의 사업이 안정되던 국민학교 4학년에 다시 서울로 이사온다. 머리가 좋았던 그는 명문인 보성 중학교를 4등으로 입학했을 만큼 수재였지만, 노래와 스포츠 (아이스하키)에 빠지면서 성적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즈음해서 아버지의 사업은 기울기 시작하였고, 김현식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전기(경기고)에는 낙방, 후기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지고에 진학한다.

밴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명지고에 입학한 그는 밴드생활을 하지만, 뭐 선배들의 갈굼으로 결국 사고를 치고 학교를 자퇴하고 만다.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면서 음악에 다시 빠져든 그는 음악다방의 오디션에 합격,  명동의 '쉘부르','썸씽'그리고 당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국제호텔 나이트클럽 등에 출연하면서 다운타운가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 후, 이장희氏의 친동생 이승희와의 듀엣생활, 그리고 김동환과의 듀엣생활 등을 통해 인정받기 시작했으나, 대마초에 손을 대 구속되고 만다.

그후 다시 밤업소와 음악다방을 전전하다 음악선배인 이장희의 권유로 서라벌레코드에서 작업을 하지만, 대마초 관련 사건 덕분에 녹음이 끝난 후 2년만인  80년에야 비로소 데뷔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 즈음해서 결혼을 하고 3년후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후 김현식은 한국의 모타운이라 불릴만한 동아기획으로 들어가 2집 준비를 하게 되는데, 2집의 앨범 10곡중 9곡을 그의 노래로 채워 넣으면서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어쨌든 이 앨범에서 '사랑했어요'가 대 히트 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게 된다.

2집의 성공 후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실험을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결성된 그룹이 그 유명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다. 그 그룹의 멤버를 살펴보면 대단하다. 현재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전태관과 '빛과 소금'의 박성식,장기호,그리고 <지난날>,<사랑했기 때문에>라는 명곡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유재하였다.
그러나 이 그룹은 각자 멤버들의 하고 싶었던 음악이 달랐기 때문에 오랜 시간 지탱되지는 않았다.

그 즈음해서,  김현식은 엄인호, 한영애등과 친하게 되는데, 잼형식의 공연을 갖기로 한다

어쨌든 이 멤버중 김종진과 전태관은 김현식과 함께 3집 앨범을 작업했고, 가장 김현식 다운 곡 중 하나인 '비처럼 음악처럼'이 수록된 이 앨범은 30만장이라는 대 성공을 거두며, 그는 그이 음악생애 중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호사 다마라고 할까?

그의 인생에는 흐린 날이었다.  같이 활동했던 후배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났고, 어머니와 누이는 캐나다로 이민, 아내와의 결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어 그는 다시한번 마약사건에 연루된다.

다시 돌아온 김현식은 절치부심하고 4집을 내 놓는데, 예전에 보여 주었던 세련된 팝발라드와 블루스와 조화로 인한 감각적인 사운드는 간데 없고, 외로움이 짙게 뭍은 음울한 느낌의 곡들로 채워졌 있었다. 이때 부터 김현식은 세련된 음악을 하는 가수에서 호소력있는 음악을 하는 가수라는 이미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4집을 내 놓은 이듬해인 89년에 전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신촌 블루스와 같이 앨범을 내게 되고 음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신촌블루스와의 활동 후 다시 솔로로 돌아온 김현식은 자신의 음악생활, 그리고 삶을 되돌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5집 넋두리를 발표한다.

이때 이미 김현식은 얼굴색이 완전히 상해있었고 몸의 붓기가 빠지지 않는 등 이미 심각한 상태로 절대안정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6집 앨범을 준비하고 결국은 음반 녹음 도중 세상을 뜨고 만다.  

그의 음반은 미완성 음반으로 세상에 선 보였으며, '내사랑 내곁에'는 그해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였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김현식, 그의 거칠고 반항적인 성격 이면에는 외롭고 연약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

<Moveon21까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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