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토니오의 생각~/우리문화엿보기

사과와 끈

                         사과와 끈

                                                                                            안명수

 

  4개의 사과가 서양문화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그 첫 번째 사과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이다. 이 사과를 먹고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니 종교적인 사과이다. 두 번째 사과는 철학자 뉴턴에게 만류인력을 깨닫게 해준 과학의 사과이다. 세 번째 사과는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화살을 쏘아 맞춘 윌리엄 텔의 저항권을 대변하는 사과이고, 마지막 네 번째 사과는 문학과 예술의 모태가 되는 파리스의 황금사과이다. 이 사과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미의 여신 아플로디테와 제우스 대신의 부인 헬라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서로 더 미인이라고 다투다가 마지막에 파리스에게 판정을 요청하였는데 그때 한 여신이 파리스에게 몰래 뇌물로 갖다바친 황금사과를 두고 일컫는 사과이다. 그러니 이 사과는 문학과 예술의 사과라 하겠다. 이 4개의 사과들을 두고 서양 문화의 상징물이라 주장하였다.

 

  우리문화를 상징하는 유형물로 <끈>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탯줄이란 끈을 달고 나온다. 한 평생 끈과 더불어 살다가 끈으로 꽁꽁 묶여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국어 사전에 실려있는 끈의 풀이를 보면 (1) 물건을 묶는 노나 줄 따위 (2) 옷이나 보자기 같은 데 달려 그 자체를 잡아매는 데 사용하는 부속물 (3) 의지할 만한 힘이나 연줄 (4) 벌잇줄 등으로 되어있다.

  네 번째 풀이인 벌잇줄은 벼릿줄과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 벌잇줄은 돈벌이하는 줄이니 살아가는 방도를 의미하고, 벼릿줄은 그물의 벼리에 달려있는 줄이다.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잡아당기도록 되어 있는 줄이니, 어부들에게는 벼릿줄이 바로 벌잇줄이 되는 셈이다.

  끈의 세 번째 해석은 친인척을 뜻한다. 6. 25 사변 때 힘(권력)있는 친척이 없어서 전쟁터에 끌려가서 총알을 맞은 병사가 <빽>하고 죽었다는 그 빽이란 단어가 이에 꼭 어울리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서방 잃은 청상을 두고 <끈 떨어진 새댁>이라 할 때의 끈은 남편이 된다. 이순(耳順)이 지난 노인네들이 모여 앉아 “자네, 끈 다 붙였나?”라고 할 때의 끈은 결혼을 의미하는 상징어라 할 수 있다.

  <월하노인(月下老人)의 끈>이란 말이 있다. 어떤 노인이 달밤에 데이트하는 처녀 총각을 끈으로 묶어서 부부로 만들었던 노인의 끈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월하노인은 오늘날의 매파나 마담 뚜에 해당하는 고사숙어이다. 갑돌이 녀석 나무 판 돈으로 얼굴을 붉히며 남 몰래 장만한 분홍 댕기를 갑순이에게 건너 줄 때, 사랑은 핑크 색으로 뜨거웠을 것이다. 이 댕기 끈보다 더한 사랑의 상징물이 어디 있을까. 서낭(城隍)에 형형색색으로 달려있는 끈은 종교의 끈이라 할 수 있다. 감방에서 만난 사돈의 얘기에 “새끼 끈 한 토막을 주워온 죄 밖에 없소. 소가 딸려온 줄은 전혀 몰랐어요.”라는 소도둑의 능청스런 변명은 한국적인 유머이다. 이 때의 끈은 법률적. 사회학적인 끈이라 하겠다. 옛날의 청백리가 부정한 유혹을 받은 다음, 맑은 강으로 가서 갓끈을 씻었다는 고사는 윤리의 끈이다.

  매듭 문화는 예술의 끈이라 할 수 있다. 황녀들이나 사대부 가문의 귀부인들이 애지중지하던 노리개에는 매듭으로 엮은 끈이 달려 있었다. 이 매듭 끈이야말로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농악의 상모나 리듬체조의 끈은 얼마나 멋진 예술의 끈인가.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를 끈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어느 모임에서 강의를 끝내고 “가장 튼튼하고 질긴 끈은 어떤 끈일까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음악교사는 피아노 줄이라 하였고, 수산회사 총무는 속담까지 인용하며 고래심줄이라고 역설하였다. 농촌지도소 총무는 삼으로 닿은 밧줄이 제일이라 주장하였으며, 섬유회사 과장은 나일론 끈을 양보하지 않았다.

  구조조정으로 40대에 직장에서 쫓겨난 한백회(*한국백수회) 회장님이 얼굴을 붉히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뭐니 뭐니해도 코드의 끈이 가장 질깁니다.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잖아요. 어떤 코드의 끈을 잡고있느냐에 따라 <오륙도><사오정><삼일절><十五夜>가 결정되니 IMF 뺨치는 시절 아닙니까. 말씀 마이소, 괴롭심더.” 명답이었던지 만장의 박수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안토니오의 생각~ > 우리문화엿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설 (설날)  (0) 2007.12.31
솟대  (0) 2007.11.09
과대포장이 불러온 불신  (0) 2007.10.05
장인의 대중적 작품  (0) 2007.10.05
종묘와 사직?  (0) 2007.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