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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생각~/우리문화엿보기

과대포장이 불러온 불신

 

과대포장이 불러온 불신

 

<한겨레 블로그 청석 님의 기사가 된 글입니다>
 

며칠 전, 아는 이의 문상을 다녀왔다. 사람의 일이란  태어나는 때가 따로 없듯이  죽는일도   때가 없어서 푹푹 찌는 폭염 중 부음을 받고 다녀온 것이다. 영안실은 다행히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지만  가고 오는 길은 정장차림인지라 고역이었다. 장례식장은  상제 입장이 아니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어디 옛날 같으면  상상이나 할 시설인가.


 

고인은 미안했는지 영정사진 속에서  겸연쩍게 웃고 있었다. 사람의 생사유명이란 참으로 철저히  절대자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안실은 한산했다. 아마도 문상객이 더운 한낮을 피해 야간 조문을 하려는 듯 보였다. 그런 중에서 영안실은  반입되는 조화로 채워지고 있었다. 


 

조화란 참 묘한 것이다. 마치  상여 앞에 늘어선 만장(輓章)만큼이나 고인의 유덕과 상주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한다. 그런 까닭에  어느 상가를 가나 눈에 띄는 건 조화로 뒤덮여진 전경들이다. 이를  두고  호사를 좀 부리기로서니  굳이 잘 못된 일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도를 넘는 치장을 보면  왠지 과시나 허풍으로 비춰져서  씁쓸한 마음을 지을 수 없다.


 

이런 상가 풍경은  대도시나  중도도시나  별로 차이가 없다. 활동범위나 생활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진열된 조화 개수로만 보면 구별이 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소도시가 더 많은 경우를 종종 본다.


 

어제였다. 화초에 줄 거름을 사려 화원을 들렀었다. 그런데 그 집 사장은 눈 코 뜰 새없이 바빴다. 만들어 놓은 조화 네 개에 매달  리본에 글씨를 쓰느라 사람이 들고 나는 줄도  몰랐다. 한데, 그 주문이  한곳에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아스러워 내가,

 “그럼 한 사람으로부터 주문을 받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참으로  괴이하다 싶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개개인이 주문한 거라면  한사람이 하나씩 따로 주문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선의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썰렁한 빈소를 치장하기 위해서일 거라고.  그런데 그게 자꾸만 과시를 하기 위해서 그런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다소  야박한 추리지만 그렇게 여긴 이유가 있다.  전에 어느 분의 고희연이 열린 뒤끝을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뒤처리과정을 보고 나는 그만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그날 식장을 장식한  일층에서부터 이층까지 이어진  분재와 화분들이 모두 선물로 들어온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누가 보내왔다는 리본이 달린 그것들은 눈속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화원 차가 와서 다시 싣고가자 들통이 나버렸다. 그것을 보니 행사를 치룬   장본인이 그렇게 기만적이고  좀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최근에 빚어지고 있는 사회병리현상도 이런  눈속임이 쌓이고 쌓여 층생첩출(層生疊出)한 것이 아닌가 한다.  비가 오려면 먼저 먹구름의 전조가 있지 않던가. 그것을 간과해온 결과가 아닐까.


 

뭔가를  부풀리고 꾸미지 않으면 도무지 성이 차지 않고, 남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이 결국은  가짜박사, 가짜 학벌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물론 여기에는 학벌주의로  견고한 카르텔이 되어있는 현실도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편견속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가 말이다. 하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남을 속이는 건 속물근성의  전형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눈에 보이 것,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진실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자꾸만 그 진정성이 의심이 되어 진다. 그만큼 불신이 쌓인 증거라 할까. 신뢰사회 구축 차원에서라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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