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신 예수, 그리고 지장보살
[하느님은 여러 종교를 이렇게 보실꺼야 - 성서와 이웃종교 ]
지옥으로 가신 예수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전 세계 많은 교회에서 여전히 바쳐지는 대표적인 신앙고백문이 사도신경이다. 이 가운데 한국 개신교에서 누구인가 언제인가 슬쩍 빼버린 구절이 있는데, 바로 예수께서 “지옥에 가셨다”(He descended into Hell)는 표현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구절을 담아 신앙고백을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뒤 땅에 묻혔고, 저승 즉 지옥으로 갔다는 것이다. 예수는 왜, 어쩌다가 지옥으로 갔을까?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1베드 3,19) 성서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갇혀 있는 영혼들”이란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하느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던 자들”이다(20). 이른바 구원의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식구들만 구원받았고, 다른 이들은 저주받아 영원히 죽어버렸다고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예수는 그들을 영원한 죄인으로 두려 하지 않았고, 그들을 지옥에 남겨두고자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엄청난 의미가 담긴 말이다.
지장보살
불교전통에 지장보살이라는 분이 계시다. 그 보살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서원을 세웠다: “지옥에 중생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결단코 성불하지 않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극락 왕생하려 기도하고 수행하고 매달리지만, 원치 않게도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중생이 단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을 어찌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내 어찌 극락에서 홀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는가 하는 반성 속에서 스스로 지옥에 남아있기를 자청한 보살이다. 그의 서원은 중생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니, 그 고통을 해결하기 전에는 절대로 열반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마음 자세와 같은 맥락이다. 대단한 자비심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지옥에 남아 괴로움을 당하는 그 누군가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를 두고 어찌 자기만 천국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타인의 괴로움을 상상하는 그곳 역시 지옥이 아닐 수 없으리라. 예수가 정말 훌륭하다면 그것은 개인의 인생살이에 삶의 뜻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1디모 2,4)의 뜻을 확신하고 실천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은 피조물들이 모두 당신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살 것을 보고자 하시는 분이다. 지옥에까지 내려간 예수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이다.”(1베드 4,6a) 지금의 처지가 어떻더라도 최종적인 구원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구절은 죽음 이후에도 인생이 바뀔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하느님이 바로 그와 같은 분이시니,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고 살면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우회적 의미가 들어있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줍니다.”(1베드 4,8)
자장보살
죄인은 없다
사람은 죄를 주지만, 하느님은 용서하신다. 하느님 앞에 죄인은 없다. 그것을 믿고 실천한 이가 바로 예수이다. 그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쳤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러한 모습에 감동한 제자의 제자들은 예수야말로 지옥갈 죄인까지도 구원하실 분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지옥에까지 가신 예수”가 등장하게 되었다. 불자들에게는 지장보살을 연상시켜주는 이 구절은 우주 어느 구석이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진리를 담고 있다. 종파나 신분을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도 최종적인 구원의 가능성을 닫아둘 수 없는 그리스도교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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