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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 운동의 정의


소공동체 운동의 정의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공동체 운동의 정의


1. 소공동체 운동의 정의

2. 무엇이 문제인가?

3. 이제까지의 노력들

4. 미래를 위한 제안

5. 마치면서


소공동체 운동은 교회 쇄신 운동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이론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본당에서 실천해 보자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소공동체 운동을 본당 운영에 필요한 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한다거나 혹은 잘 조직된 사도직의 한 형태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소공동체 운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새롭게 이해된 교회의 본질과 이상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쇄신 운동이기에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모두의 노력과 변화에 의해서만이 성공할 수 있는 교회의 미래가 달린 참으로 중요한 운동인 것이다.

왜 그런 운동이 지금 이 시대에 요청되는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왜 개최하려 하는가라고 물은 그 시대 사람들과 같은 의미의 질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한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사실 한국 교회는 공의회의 정신을 별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차라리 점점 보수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보수화의 물결이 개방과 현실 적응을 외친 공의회의 정신과 부합하는가를 묻는다면 아무도 그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공의회는 교회의 비전을 제시한 회의이다. 우리들은 그 제시된 비전에 따라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가야 할 중요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소공동체 운동은 우리가 지금 선택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따라가야 할 교회의 새로운 비전이다.


1. 소공동체 운동의 정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과학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욕심에 의해 앞으로의 시대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변할 것이다. 만약 교회가 그런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고 그 변화의 상황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이 세상으로부터 도태되고 말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듯이 교회는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현시대의 구성원들과 동일화해 가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바로 교회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시대적인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가? 물론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그 구시대적인 모습도 구시대를 위해서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구시대적인 모습의 대표성을 말해본다면 그것은 트리엔트공의회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2. 무엇이 문제인가?


1)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함께 가는 교회로


트리엔트공의회는 개신교회들의 거센 저항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재확립해야 할 강한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구조를 중앙집권화 해 놓았고, 획일성과 체계화를 강조하였었다. 지역교회의 중심은 교구장이 되며, 본당의 중심은 본당신부가 되었으며, 본당신부는 자기 구역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책임을 지고 임무를 수행하는 관리자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평신도들은 성직자가 사도직을 잘 수행하기 위한 협조자로만 인식이 되었으며 모든 일은 본당신부가 고민하고 본당신부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리고 본당신부의 명령에 의해서 평신도들의 손을 통해 실천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런 교회의 구조가 더이상 이 시대 상황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사목자는 평신도들과 함께 상의하고 함께 결정해야 하며, 함께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아무런 구분이 없으며 다만 자신들에게 맡겨진 분담된 역할에 따라 교회의 한 구성요소로 교회 발전을 위해 기여한다고 말한다. 공의회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화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으며 다양화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적인 운영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 본당신부 혼자서 본당의 모든 일들을 수행하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해져 간다. 이제는 신부만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나서서 그들의 삶의 자리 속에서 크리스챤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이 이 세상 속에서 성사인 교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신부님께서는 평신도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실 수 있고 그것은 사실이다. 이제껏 평신도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제부터라도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며,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봐 줘야 할 것이다. 이제는 카리스마를 가진 한 신부에 의해 본당이 운영되는 시대가 아니라 서로간의 뛰어난 협력과 역할 분담이라는 조직에 의해 본당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시대이다. 이 시대는 절대적인 지도자, 지배적인 지도자의 시대가 아니라 비지배적이며 영감을 주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만약 교회가 이런 새로운 지도력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이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며, 교회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닌 자신들만을 위한 못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평신도 단체들과의 관계도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모든 평신도 단체들은 그들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나, 교회는 이제껏 그들을 본당신부를 도와줄 수 있는 보조자로서의 역할에만 국한시켜 왔다. 그래서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단체는 육성되어졌으며, 그렇지 못한 단체들은 도태되었다. 한국 교회에 레지오 마리애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해서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성직자들은 레지오 마리애가 가지고 있는 조직력을 자신의 사도직 수행의 한 도구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획일화된 조직, 명령에 의한 실천, 명확한 상 하 관계. 사실 그런 구조들은 구시대적인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들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대인들의 심성에 맞지 않는 구조를 계속 고집한다면 그 구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 빈 껍데기뿐인 구조가 되고 말 것이다.


2) 성사 중심에서 말씀을 통해 성사로


트리엔트공의회는 개신교회와의 차별성을 위해 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그 결정은 그 시대에서는 최상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4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성사적인 형식만이 남아 있을 뿐 그 정신은 아주 퇴색된 듯 하다. 천주교회의 전례가 개신교회의 전례보다 수동적이거나 활기가 없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전례는 모든 경신례의 마지막 정점인데, 사실은 그 마지막 정점에로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중간 과정을 생략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의미가 없어져 버린 성사는 성사 자체로는 유효할지 몰라도 아무런 감동을 전해 줄 수 없다. 의미가 없어진 성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어떤 마술사가 부리는 마술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성사는 말씀에서 나왔다. 우리의 신앙도 말씀에서 나온 것이며, 그 말씀이 전통이 되었고 또 그 말씀이 성서가 되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성사의 의미를 더욱더 깊이 알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며, 말씀을 통해 신자들은 성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말씀을 통해 자신들과 함께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다면, 그들은 전례 속에서 그 기쁨을 더욱 깊게 체험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혹자는 또 다른 개신교적 경향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시대착오적인 염려일 것이다. 만약 개개의 신자들이 자신의 집에서 이웃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들의 주일 전례는 더욱더 활기찰 것이며, 살아있는 전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부정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성사를 강조하는 교회는 자연히 신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일종의 악순환인 것이다.

신자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그들의 삶은 신앙으로부터 분리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성사 중심은 본당 중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성당에 와야 하고 성당은 자연히 화려하고 장엄해져야 하며, 성당이 그들 신앙의 중심이 되면 될수록, 그들의 실제적인 삶은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을 그들의 삶 속으로 돌려줘야 한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체험한 하느님을 전례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며, 자신들의 개인적인 하느님 체험을 공식적인 교회의 전례를 통해 공동체화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복음화하고 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을 통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3) 신심 중심에서 복음화의 주역으로


불행히도 우리 신자들의 신심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 기복적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특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하느님에 대한 욕구만을 나열하고 있다. 아주 미성숙한 신앙 형태이다. 예로부터 교회는 자신만이 유일한 세상의 피난처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배에 비유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배가 바다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버리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신자들은 그 뱃속에서 제발 풍랑이 멈춰지기를 기도만 하고 있다. 사실, 기도는 우리들의 신앙을 더욱더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어 간다. 그런 개인적인 신심 위주의 신앙 형태가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로 교회와 연결되게 만들었으며, 본당신부와도 개인적인 관계만을 강조하게 했다. 개인적인 신심은 주위의 형제를 무시한 채 신앙형태를 극단적인 모습으로 만들어간다. 그들은 이 사회 속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되기를 요구하며, 그런 분리된 모습이 자랑스러운 것으로까지 생각한다. 개인적이고 기복적인 신심은 기적을 요구하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기적을 쫓아 여기저기 방황한다. 이런 개인적인 신앙행위는 신앙인의 삶과 신앙을 더욱더 분리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제는 그 기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에너지로 바뀌어져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 그것이야말로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요구이며, 복음화의 노력 속에서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삶 속에 함께 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들에게 우리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려줘야 한다. 그들의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며, 그들을 지속적으로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복음화를 위한 노력은 공동 협력을 요구한다. 신자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복음화 작업을 통해 하느님께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신앙도 실제적인 삶 속에서 성숙되어가게 될 것이다. 교회는 무엇을 끊임없이 청하기만 하는 철없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하느님의 성사이다.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성사인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세상과의 유대이며,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일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교회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노력들은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우리들은 이제 그 일을 함께 할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3. 이제까지의 노력들


대구교구는 1993년에 처음으로 소공동체 운동을 소개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 주로 반장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제 1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러나 그 10년이라는 세월이 우리들에게는 별다른 성장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 같다. 이제 그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또 그 10년을 한 번쯤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1) 무엇이 문제였던가?


① 비전을 공유하지 못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교구민 전체와 함께 소공동체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제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7단계 교육을 했었고, 또 반장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교육을 실시했으며, 교구 시노드를 통해 소공동체 운동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과 본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런 노력과 인정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진지하게 토론되어지지는 않았었다.

과연 모두의 공감대 없이 소공동체 운동이 가능할까?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월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과연 그렇게 될까?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 없이 어느 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을 따로 모아서 교육한다고 해서, 예를 들면 반장 따로, 본당신부 따로, 전교 수녀 따로 등, 그 교육과 노력들이 저절로 훌륭한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을까?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함께 모여서 스스로 반성할 부분은 반성을 하고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스스로 인정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새로이 인식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역할들을 다시 찾아가야 할 것이다. 공동체 운동은 어느 한 직책도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지 못하면 발전할 수가 없다. 함께 다 참여해서 함께 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동체다운 모습일 것이다.


② 즉흥적인 교육이었다.


공동의 비전을 갖지 못했기에 임무를 맡은 신부마다 자기의 편견에 따라 교육을 진행했었다. 그 결과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아니라 즉흥적인 교육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자들의 의식 수준과 교육 여건에 따라 미리 정해진 교육 계획에 의한 단계적 교육을 실시하지 못하여 많은 반장들로 하여금 중복 교육을 받게 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이 소공동체 운동에 싫증을 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③ 부서간 대화와 협동이 부족했다.


사실 공동체 운동은 어느 한 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교구청 내에 있는 모든 부서들이 함께 의논하고 같은 길로 가야 할 그런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 왜냐하면 공동체 운동의 기본 정신은 교회 쇄신이며 쇄신을 위해서는 모두가 같은 비전을 공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 초점이 흐려져 힘을 한 곳으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자기 부서만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본당 사목자들이나 신자들에게 때로는 중복된 모습으로 또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2) 무엇을 해야 하나?


① 의식화 교육

소공동체 운동의 정착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본당 신자들의 신앙 의식을 쇄신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소공동체 운동은 교회 쇄신 운동이다. 본당 신자들의 의식을 쇄신하기 위한 의식화 교육(의식화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그리고 효과적으로 많이 실시했느냐가 소공동체 운동의 정착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현재 많은 본당에서는 본당 사목자의 의도에 따라 본당의 모든 구역을 행정적으로 구분하여 소위 반모임이라는 것을 하고 있고 또 대부분의 본당들은 그 반모임이 소공동체로 발전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부정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반 모임의 특성과 소공동체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발성이다. 많은 본당들이 소공동체 모임이 안 된다라고 말을 하는데, - 사실은 소공동체 모임이 아니라 반모임이다 - 그 모임이 잘 진행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누가 그 모임을 원하고 있는가? 본당 교우들은 본당신부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것이지 그들 스스로가 필요성을 느껴서 참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요된 모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모여야 하기에 인간적인 친교의 자리가 강조될 수 밖에 없고 우리들의 진정한 음식인 예수님의 말씀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소공동체 운동의 주체는 본당신부가 아니라 본당 신자들이다. 신자들이 그 운동을 하고자 하는 의욕과 당위성을 가질 때만이 그 운동이 성공할 수가 있다. 사목은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 시대에 '명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만든다. 사목은 설득하는 것이다. 신자들을 교육하고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서 공동체 운동을 시작한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사목자가 얼마나 큰 비전을 보여주느냐가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될 것이며 신자들로 하여금 신부와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자신들의 신앙을 쇄신하고자 하는 그런 용기를 갖게 만들어 줄 것이다.


② 새로운 지도자 상(leadership)


21세기의 영적 지도자는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전에 따라 정확한 전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지도자는 강요(persuade)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감(inspire)을 주는 사람이며 관리(control)하는 사람이 아니라 격려(enable)하는 사람이며 결정하는(assign) 사람이 아니라 결정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consult) 사람이어야 한다. 이 시대는 지배적인 지도자, 독재자,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할 줄 알고 조정할 줄 알고 그리고 영감을 주는 지도자를 원한다. 본당 사목자뿐만 아니라 본당의 모든 봉사자들과 그리고 본당 교우들까지도 이 새로운 지도자 상을 익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단시간에 될 일은 아니다. 이제껏 사목자들은 명령만 해왔다. 반대로 신자들은 시키는 대로만 했다. 그래서 그들의 의식은 지극히 소극적으로 변했으며 수동적으로 바뀌어져 무엇하나도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마마보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사목자는 신자들의 미성숙한 모습을 불평하고 또 신자들은 사목자의 완고함만을 탓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우리 모두의 허물이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지도자 프로그램). 이 또한 많은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인내를 가지고 본당 교우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돌봐주고 격려해 주고 키워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목자의 일이다.


③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대부분의 신자들은 복음화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들의 신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는 할지 몰라도 자신과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과 희생에는 지극히 인색하다. 그들의 신앙이 자신의 개인적 소망이라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야 할 것이고 그 길은 복음서에 있다. 우리는 먼저 복음서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담아 둘 줄 알아야 할 것이고 그것을 실천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복음화는 나 자신의 복음화와 함께 진행된다. 내가 복음을 듣고 묵상하고 그것을 이웃들함께 나누고 또 나 자신을 복음의 정신에 따라 변화시키려 노력할 때 이 세상도 변하게 될 것이다. 이제껏 우리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많이 소홀히 대해 왔다. 하느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우리들의 개인적인 이익과 관심만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했었다. 이제는 올바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복음을 듣고, 나누는 일(복음나누기)은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목자는 신자들이 복음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을 교육하고 인도해야 할 것이다.


4. 미래를 위한 제안


1) 사목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소공동체 운동이 우리 교구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사목자들이 모여서 그 운동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작업들을 시도해 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아니라 원하는 사람부터, 단 몇 명이라도 정말 자신의 본당에 소공동체 운동을 시작해 볼 그런 원의를 가진 사목자부터 같이 모여서 이 과제를 함께 연구하고, 사례들을 보고, 어떻게 자신의 본당에 적용해 갈 것이며 또 그 과정 중에서 생길 수 있는 어려움과 시련들을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지를 연구할 수 있다면 그 모임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사목자들만 아니라 사목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 연구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더 좋겠다.


- 1년에 두 차례 정도 사목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한다.

- 1, 2년에 한 번 공동체 운동의 발전 과정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개설한다.

- 사목자를 위한 단계적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2) 반장(공동체 대표)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반장들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본당 신자 전부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지만 반장의 역할도 중요하기에 그들을 위한 교육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반장이 자주 교체된다는 점이고 이제까지의 교육이 그런 현실성들을 잘 반영하지 못했었다. 좋은 반장은 공동체 운동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자기 반원들을 그 목표에로 인도하기 위해 비지배적인 지도력으로 그들을 도와주고 또 그들과 함께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한 활동들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아 지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훌륭한 반장도 사실은 여러 사람들의 수고와 인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양성 장소는 본당이다. 반장 교육은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사목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나름의 계획과 목표에 의해 반장들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 반장 교육의 내용을 보다 세분화하여 기초 단계에서부터 고급 단계까지 다양화한다.

- 매달 실시하는 반장 교육을 집중적인 교육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3) 교육내용은?


우리 나라의 소공동체 운동은 사실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다. 외국의 좋은 모범들을 보고 그것을 적용(adoption)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는 불행히도 그런 전문적인 연구기관이나 노력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사용되는 소공동체 운동의 기본 개념이나 교육 내용들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룸코연구소(Lumko Institute)에서 발행한 것이다. 룸코연구소는 오랜 기간 동안 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해 많은 노력과 연구들을 해왔고 신자들을 의식화시키고 교육시키기 위해 많은 교재들을 발행했다. 그런 교재들이 우리 나라의 실정과 문화에 적합한 것은 아닐지라도 근본 정신과 기본 개념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교재의 내용들을 중심으로 단계별 교육 계획안을 아래와 같이 만들어 보았다.

단계별 소공동체 교육 계획안


1. 소공동체 1단계 교육

  : 소공동체를 위한 의식화 교육(복음화 교재 3권, 4권), 2박 3일 총 15시간


1) 현실 분석(180분) : 현재 본당의 문제점 진단

2) 교회의 사명·복음화 (90분) : 복음화의 의미 설명

3)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하는(Vision) 새로운 교회의 모습(90분)

역사적 배경

성서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4) 소공동체란 무엇인가?(120분)


코이노니따 공동체 이야기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에서 소공동체 모습을 발견한다.

소공동체의 4가지 특징

비대화된 교회에서 소공동체로

소공동체로 되어 있는 본당과 안되어 있는 본당과의 비교

개인주의로 있는 본당과 소공동체로 있는 본당과의 비교5) 복음나누기를 통한 삶의 일치(60분)


6) 복음나누기 7단계 교육 및 실습(교육 120분, 실습 240분)

7) 아침 저녁기도 때 복음나누기 7단계 및 공동 응답 실습


※ 1단계 교육의 목표 : 현재 본당의 실정을 분석하고, 쇄신을 위한 대안으로 소공동체 운동을 제시하면서 소공동체 운동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같이 연구 하는 데 있다.2. 소공동체 교육 2단계


  : 참여하는 교회(복음화 교재 4권, 13권) 1박 2일 총 10시간


1)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일을 나누도록 부르심을 받았다(90분).

2) 초대교회와 우리 공동체의 비교(80분)

3) 우리는 세례를 통해 부르심을 받았고 동시에 파견된다(90분).

4) 우리 모두가 각자의 달란트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120분).

5)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90분).

6) 공동 응답 및 실습(120분)

7) 아침 저녁기도 때 복음나누기 7단계 및 공동 응답 실습


※ 2단계 교육의 목표 : 본당 교우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바로 교회임을 알고 교회의 모든 일들 에 참여함으로써 '역할 분담'의 의미를 자각하도록 하는 데 있다.

3. 소공동체 교육 3단계


  : 지도자의 리더십(복음화 교재 5권, 6권, 교본), 1박 2일 총 10시간


1) 본당 발전 5단계(60분)

2) 새로운 형태의 지도력이 필요하다(180분).

3)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60분).

4) 너희는 나를 본받아 형제들을 섬기어라(60분).

5) 너희는 주인이 아니라 형제들이다(60분).

6) 나 자신을 여러분에게 묶는다(60분).

7) 혼자 봉사할 것인가? 함께 봉사할 것인가?(60분)

8) 지도자 직분은 한 사람이 계속 맡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도 넘겨야 하는가?(60분)

9) 아침 저녁기도 때 복음나누기 7단계 및 공동 응답 실습


※ 3단계 교육의 목표 : 소공동체 운동은 새로운 지도력을 요구한다. 소공동체는 비지배적인 지 도자의 봉사에 의해 성장될 수 있다. 4. 소공동체 교육 4단계


  : 세상의 복음화(복음화 교재 3, 4, 교본, 14), 1박 2일 총 10시간


1) 아모스 프로그램(90분)

2)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90분).

3) 소공동체는 복음을 세상의 문제와 연결시킨다(90분).

4) 시대의 징표를 본다(90분)

5) 공동체의 선교(90분)

6) 본당의 단체와 소공동체(60분)

7) 소공동체의 임무, 활동(60분)

8) 아침 저녁기도 때 복음나누기 7단계 및 아모스 프로그램, 공동 응답 실습


※ 4단계 교육의 목표 : 내적인 체계를 정비한 공동체는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제 각 공동체는 이 세상을 복음의 정신에 맞는 하느님의 나라로 개혁 하기 위한 힘든 노력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5. 마치면서


오늘날의 세계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이며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대이다. 그런 다양성과 빠른 변화를 하나의 획일적인 틀과 전통만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다. 당연히 교회도 다양한 모습을 가져야 하고 빠른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보편 교회와의 연결성을 절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 교회와의 관계성 속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들이 크리스챤임을 증거할 수 있는, 또 시대적 징표를 잘 읽고 그 시대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실제적인 삶의 모습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소공동체 운동은 그런 시대적 요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물론 많은 시간이 요구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소공동체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소공동체 운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하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다. 산고(産苦)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새 생명의 기쁨과 의미를 참으로 체험할 수 있듯이 어떤 의미에서 소공동체 운동은 우리들에게 빠스카 신비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을 경험한 사람만이 부활의 기쁨을 알 수 있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