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리더십(본당 사목 구조)
‘교회의 새로운 길과 새 지도력’에 대한 논찬
윤일순 수녀(거룩한 말씀의 회)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의 현실에서 새로운 지도력은 교회와 개인을 살리는 시대의 요구이다. 이런 절심함에서 좋은 논문을 발표해 주신 신부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본 논문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5차 총회의 결정된 사항을 중점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도력을 상보적으로 이해하고자 제안하고 있다. 제가 이해한 바대로 강윤철 신부님의 논문의 요지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교회론과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 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교회 그리고 성령의 성전으로서의 교회를 제시하고 있다. 오늘의 사회의 구조는 정보 사회, 그물망 사회, 의사소통의 사회로, 이에 이루어야 할 사회 제도로는 통합적 속성, 평등한 인간 관계 그리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모색이다. 여기에 요구되는 교회의 지도력으로는 참가와 공동 책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탈권위주적이고 평등한 인간 관계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게 하는 지도력이다.
2. 교회의 새로운 길에서 소공동체는 작은 신앙 생활 공동체이며 현장 교회이다. 이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운동’이며, 소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기와 세상을 복음으로 새롭게 하고자 하는 ‘복음화 운동’으로 모든 신자들이 참여하는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교회를 이루고자 한다. 또한 참여하는 교회로 그리스도와의 친교와 사명에 참여하고, 공동책임의 동료 일꾼으로,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 안에서 참여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버려야 할 교회의 모습으로 지배적이고 독단적인 지도력, 수동적이고 수혜자의 자세,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있는 모습, 신자들이 사제의 단순한 협력자라는 인식 그리고 일부 신자만 참여하는 것이다.
3. 새로운 양식의 지도력에서 아시파에서 제시하는 용기와 영감과 힘을 주고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지도력으로 안내하는 지도력에서 지도자는 안내자이며 촉진자여야 한다. 활기를 주는 지도력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고, 함께 일하고, 공동체 전체가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지도자를 지적하는 일이 허용된 초대 교회의 모습이다. 섬김/봉사로써 이해되는 지도력이다. 참여시키는 지도력으로 함께 하는 지도자로 성직자와 일반 신자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공동 책임을 지는 지도력이다.
4. 새로운 지도력의 시도들로 기초 공동체의 추대로 사목 협의회 구성은 사목 회장을 사목 협의회 총회에서 선출하거나 본당 신부가 지명하여 임명하고, 회장이 회장단을 구성하고, 각 위원장을 추천하여 인준 받고, 위원장이 같이 일할 위원들을 구성한다. 이렇게 하여 소공동체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사목회를 구성함으로 사목회와 소공동체가 긴밀히 연결된다. 가정 교리 운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 의식을 높이고, 신앙 생활 교육이 되고, 소속감과 유대감을 갖게 되고, 냉담자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
5. 새로운 지도력의 시도들로 지도력의 나눔과 분산으로 지도력과 업무 나눔, 결정 기능 분산과 권한 나눔, 그리고 일인 일 직책 갖기이다. 참여의 장과 위원회 강화로 자기 소공동체에 우선적 참여, 사목회 각 위원회별 활동의 강화 그리고 평신도 예비 신자 교리 교사에 깊이 참여하고, 소공동체와 구역 안에서 직책을 나누어 일을 분담하여야 한다.
그래서 저는 신부님께서 주장하고 계시는 논리 즉 오랜 전통 안에서 교회는 지배적이고, 통치적이며, 먹여 주는 지도자에서 사람들을 촉진하고, 안내하는 지도력으로 활기를 주고, 사람들을 공동체와 봉사직에 많이 참여케 하는 섬김의 지도력으로 변화되어야 함에 대해서도 많이 공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시각에 대하여 의문점도 있기에 몇 가지 질문도 드리고 저의 소견도 덧붙여 보고자 한다.
1) 사제에 대해 지도자라는 말은 일반적 의미의 지도자와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또 달라야 되지 않을까?
발제자의 글 각주 1)에서 사제의 지도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도날드 메서1)에 의하면, 예언적인 주제에서 본다면, 사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에서의 지도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독재자도, 카리스마적인 인물도, 공상가도 그리고 완전한 인간의 모범도 아니다. 그의 역할은 파생된 것, 즉 보다 높은 실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케 하는 자’로서도 그는 자기 자신도 이보다 높은 실재에 의해 능력을 부여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부정에도 불구하고 사제는 지도자이다. 그렇지만 그의 지도력이 세상 사람들이 설명하는 식의 그런 지도력이 아니다. 우리가 예배 의식에서 사제의 지도력의 이런 독특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제단에 선 사제의 이렇듯 역설적인 관계 안에서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지도력은 자기 회중에게 어떻게 그들이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께 말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요즘 교회의 현실에서 사제의 지도력은 남이 어떤 일을 하도록 가능케 하는 사람(enabler)이나, 공급자(equipper) 그리고 갈등 관리자(conflict manager)로 자리매김을 해 오고 있다. 주된 역할로서의 촉진자, 가능케 하는 자, 그리고 갈등 관리자의 효과는 모든 통일적이고, 활력에 찬 비전을 희생하는 대가로 부드럽고 잠정적인 평화를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 가능케 하는 자 그리고 갈등 관리자의 역할은 사목자로부터 어떤 예언자적 입력을 약화시킨다. 갈등 관리자는 논쟁적인 견해를 가지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교회에 평화와 통일성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지도자로서의 사목자의 소명은 교인들의 삶에 파트너로서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비전을 제시하고,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고, 필요한 권위를 행사하는 것에서, 사제는 일반적 지도자와 달라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섬기는 교회에서 종된 지도력이어야 되지 않을까?
발제문 207, 208 쪽에서 제시하고 있는 새 지도력을 위한 세 가지 제안으로 이는 섬김의 지도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크리스챤 역사의 대부분을 통하여 나타난 지배적인 교회상은 섬기는 기구로서 보다는 섬김을 받기를 기대하는 기구로서의 교회였다. 교회 구조들 그것이 웅장한 유럽의 성당들이든 혹은 아담한 하얀 건물이든 종종 그 자체가 목적인 양 여겨져 왔다. 사람들과 돈이 교회 안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은 거의 없었다. 교회가 구원에 필수적인 성사를 베푸는 자로 혹은 지역 사회의 도덕이나 관습을 위한 기준을 정하는 권력자로 간주될 때, 성직자 지배의 포로가 되는 일이 종종 있어 왔으며, 이 권위주의적 스타일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옥죄어 왔다. 교회가 위신과 사회적 지위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때, 우리 교회는 주도적으로, 교인은 헌 옷가지들을 말없이 자발적으로 수집하고 수선하여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나 학대당하는 아이들과 배우자들을 돕고 보호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은행의 총재나 대기업의 이사와 다를 바 없다.
교황 요한 23세가 불러일으킨 위대한 혁명 중의 하나는 종된 교회가 되는 것에 대한 가톨릭 내에서의 새로운 자기 이해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된 ‘현대 세계에서의 사목 헌장’의 문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교회도 전체 인류의 형제 자매됨을 촉진시키는 일을 통하여 이 세상을 섬기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을 분명한 어조로 가르쳐 준다. 공의회의 이러한 이해는 섬기는 교회에서 종된 지도자(Servant leadership)로서의 교회의 이해이다. 첫째 종된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사도직 안에서 하나의 지위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봉사로서 이해한다. 교회 안에서 사제, 주교, 학교 총장과 같은 직책으로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 그런 전문화된 직책에 부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종들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이다(Servus Servorum Dei). 즉 진정한 돌봄과 헌신에 기초한 참된 관계성을 수립하는 자이다. 예를 들면 종된 지도자는 지위에 대한 염려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종된 지도자는 근본적으로 권위는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힘이란 선거나 임명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랑 넘치는 섬김에 의해 얻어진다. 셋째 종된 지도자는 모든 인간의 삶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고 진리는 종종 역설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모든 인간적 조건에 공감할 줄 안다. 그들은 섣부른 비난이나 거절의 정신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의 정신을 갖고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그들은 죄가 아니라 죄인을 사랑한다. 파괴된 인간적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시각을 갖는다. 넷째는 종된 지도자는 단순한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길을 여는 개척자가 되는 것이다. 개척자는 얽히고설킨 쟁점들을 분류하고 그 반응을 조직화 하고 차이점을 풀어갈 줄 아는 문제 해결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척자는 평범한 문제 해결자 그 이상이다. 개척자는 교회의 미래가 어떤 모양을 가져야 할 것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가, 조직이나 기구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들이 필요한가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을 준다. 또한 교황님께서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 자기를 이해한 점에서도 섬기는 교회에서 종된 지도력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저의 입장과 다른 것 같다.
3) 지도력은 파트너십이어야 하지 않을까?
발제자의 요구되는 지도력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시하는 ‘참가와 공동 책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력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도력의 나눔의 형태로 결정 기능 분산과 권한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일인 일 직책 갖기를 권하고 있다.
소공동체는 하느님 안에서 보이는 이웃과의 친교적 관계를 맺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지도력은 파트너십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트너십2)이라는 말은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말로 표현되는 말이다. 또한 이 말은 Koinonos(동반자, partner)와 Koinoneo(참여하다, to take part)가 있다. 이들은 koinos(공통적, common)에서 나온 말이다. 신약 성서에서는 흔히 누구와 무엇인가를 나눈다는 의미로 쓰인다. 어떤 상호 관련적 관계로 형성된 공동체 안에서 공동적 결합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고, 쌍방적 관계, 주고받는 상호 참여의 관계를 지니는 그런 의미이다. 이것은 또한 어느 한쪽만이 주체가 되고 다른 한쪽은 대상이 되거나 종속적 관계에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의식하는 것이며, 자신이 선택하고 행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파트너의 주체성을 긍정하고 뒷받침해 주는 덕목으로는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섬김(servanthood)이라는 것이 있다. 남을 섬긴다는 이 말은 “diakonia"(봉사)라는 말에 관련된 말로서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과제를 자기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런 개념은 어떤 공동의 과제를 함께 풀어 나간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공동의 과제를 같이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서로 파트너십으로서 그 일에 참여하는 관계를 나타낸다. 공동의 과제란 하느님의 선교 과업(Missio Dei)이다. 하느님의 선교는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인류와 함께 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공의회에서 말하고 있는 친교와 공동 책임은 파트너십 안에서만이 가능한 지도력일 것이라 생각된다.
4) 여성의 리더십을 키워야 되지 않을까?
발제자가 언급했듯이 전통적으로 지도력은 통제적이고 지배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 관계성 안에서 볼 때 교회는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발제문 안에서도 신부님께서는 교회를 보고, 사회의 구조를 보셨다. 예를 들면 사회를 올바로 알아야 교회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사회의 빠른 움직임에 교회의 감지와 그에 대한 대응 안에서 볼 때 지도력은 상호 의존적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직관적 인식은 여성이 탁월하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교회 구성원의 60%이상이 여성인데 여성 리더십을 키워야 되지 않을까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끝으로 좋은 공부의 기회를 주신 점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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